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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나도 그들처럼」

  • 작성일 2008-11-24
  • 조회수 8,115




나도 그들처럼


???백무산


나는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계산이 되기 전에는

나는 비의 말을 새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측량이 되기 전에는

나는 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해석이 되기 전에는

나는 대지의 말을 받아 적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동산이 되기 전에는

나는 숲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시계가 되기 전에는

이제 이들은 까닭 없이 심오해졌습니다
그들의 말은 난해하여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내가 측량된 다음 삶은 터무니없이
난해해졌습니다

내가 계산되기 전엔 바람의 이웃이었습니다
내가 해석되기 전엔 물과 별의 동무였습니다
그들과 말 놓고 살았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소용돌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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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거대한 일상』,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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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 백무산- 195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84년 『민중시』 1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인간의 시간』『길은 광야의 것이다』『거대한 일상』 등이 있음.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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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송 : 김근- 시인. 1973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1998년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으로 『뱀소년의 외출』『구름극장에서 만나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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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의 말은 시에 가까웠다고 해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울림을 지녔던  말. 그 시절 사람들은 바람의 말, 비의 말, 별의 말, 대지의 말, 숲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지요. 사람과 자연이 서로 이웃이고 동무였으니까요. 이치를 따지고 계산과 측량과 해석을 하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에요. 근대 이후 우리의 말과 사유는 주술성에서 벗어나는 대신 합리성이라는 새로운 재갈을 물게 되었지요. 말과 말 사이에 딱딱한 벽 같은 게 생겨나고 우리는 서로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그 재갈을 내려놓고 잃어버린 말의 길을 끊임없이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시인들이에요. 한번 들어보세요. 한 편의 시 속에는 아직 바람과 비와 별과 대지와 숲의 말이 일렁이고 있어요.

 

2008. 11. 24. 문학집배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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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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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숲길달림이

    1980년대 백무산 시인의 들불 같고 활화산 같던 시심을 기억합니다. 그 시대를 지나 자본주의가 더욱 공고화된 시간 속에서 측량되고 계산되고 값으로 매겨지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고 계신 듯 합니다.

    • 2019-05-29 15:27:56
    숲길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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