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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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다.
달빛이 가장 널리 전개되고 있다.
사람의 참 작은 몸에서 이렇듯 무진장,
진장한 마음이 흘러나와 번지다니
막막하게 번진 이 달빛 사막에
우듬지를 잘라낸 히말라야시다의 캄캄한 그림자가
캄캄하지만 순하게 엎드리고 있다. 있는 힘껏
이별을 하고
내가 올라타는 것은 전부 낙타인 것 같다.
저 갈 길 이미 눈물로 다 잡아먹은 뒤
배밀이, 배밀이 하는 배 같다.
그러니까 운동장엔 둥근 트랙,
흰 궤도가 있다.
한쪽 얼굴이 자꾸 삐딱하게 닳는 달,
저 수척한 달이
너에게로 하염없이 건너갈 수 있는 데가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다.
  
  
  
시_ 문인수 –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으며, 1985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뿔』『동강의 높은 새』『쉬!』『배꼽』 등이 있음. 김달진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속_ 정우영 – 19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민중시』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 에세이집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 등이 있음.
출전 : 『쉬!』 (문학동네)
음악_ 박세준
애니메이션_ 정정화
프로듀서_ 김태형
  
  
 
  
시간과 돈을 들여 멀리 가지 않아도 하늘만한 넓이와 깊이를 가진 곳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요. 집 근처에 있어서 가끔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했던 맨손 체조도 해보는 학교운동장 같은 곳.
넓은 곳으로 오니 작은 몸도 저절로 학교운동장 넓이만큼 확장되네요. 몸이 넓어지니 달빛이 제 몸에서 흘러나와 무진장 번지기도 하고, 온갖 풍파를 다 겪은 후에 겸손해져서 망망대해를 아기처럼 배밀이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둥근 트랙이 한 눈에 보이기도 하네요.
그러니 벽으로 막힌 좁은 공간에서 나와 사방이 탁 트인 곳으로 가 볼 일입니다. 그동안 함부로 막 대했던 마음을 넓은 곳으로 데리고 나와 한 번도 막힌 적이 없는 바람도 쏘여주고 하늘까지 기지개도 켜게 해주고 달과 눈도 맞춰줄 일입니다.
  
문학집배원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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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년 4 개월 전

저도 딸이랑 달밤에 운동장에서 운동을 한적이 있는데 그 때가 생각이 나네요. ^^

10918 이유강
3 개월 25 일 전

그리운, 또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시이다. 삶에서 느껴지는 부담에 짓눌려 빈대떡이 되기 직전, 탁 트인 곳으로 나와 그 너덜너덜한 마음을 환기시키는 상황이 너무도 익숙하고, 나를 보는 것만 같아 동정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넓게 트인 곳에서, 쌓여온 울분을 맘껏 소리치고, 몸을 움직이고, 지나온 길,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모습을 눈물과 배밀이, 둥근 트랙이란 표현을 통해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오늘 지친 내 마음에게 달빛이나 비춰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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