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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 「논두렁」

  • 작성일 2011-04-11
  • 조회수 3,915




 
이덕규, 「논두렁」
 
 
 
 
찰방찰방 물을 넣고
간들간들 어린모를 넣고 바글바글 올챙이 우렁이 소금쟁이 물거미 미꾸라지 풀뱀을 넣고
온갖 잡초를 넣고 푸드덕, 물닭이며 논병아리며 뜸부기 알을 넣고
햇빛과 바람도 열댓 마씩 너울너울 끊어 넣고
무뚝뚝이 아버지를 넣고 올망졸망 온 동네 어른 아이 모다 복닥복닥 밀어 넣고
 
첨벙첨벙 휘휘 저어서 마시면,
 
맨땅에 절하듯
누대에 걸쳐 넙죽넙죽 무릎 꿇고 낮게 엎드린 생각들 길게 이어 붙인
저 순하게 굽은 등짝에 걸터앉아
미끈유월, 그 물텀벙이 한 대접씩 후르륵 뚝딱 들이켜면
허옇게 부르튼 맨발들 갈퀴손가락들 건더기째 꿀떡꿀떡 넘어가겠다
 
 
 
시_ 이덕규 - 1961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 등이 있음. 현대시학 작품상, 시작문학상을 수상함.
 
낭송_ 최광덕 - 배우. <만다라의 노래>, <맥베드21> 등 출연.
출전: 『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
음악_ 유리밥그릇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모내기는 모를 논에 꽂는 일인 줄만 알았지 이렇게 많은 사람과 생명과 자연이 함께 참여하는 풍요로운 축제인 줄은 몰랐네요. 모내기는 "굽은 등짝"과 "허옇게 부르튼 맨발"과 "갈퀴손가락들"이 하는 힘든 노동인 줄만 알았지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즐거움이 넘치는 놀이인 줄은 몰랐네요. 벼는 심어놓기만 하면 물과 흙의 양분을 먹으며 저 혼자 자라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많은 이웃들이 함께 하면서 도와주고 튼튼하게 길러주는 줄은 몰랐네요. 우리가 매일 먹는 쌀에 이렇게 다양한 자연과 흥겨운 노래와 드넓은 세계가 들어 있는 줄도 몰랐네요.
쓸모없는 것들, 소외된 것들, 아무 힘도 없는 것들이 모여서 장엄한 아름다움과 살가운 온기를 만들어내는 백석의 시 「모닥불」의 모내기 버전을 보는 듯합니다.
 
문학집배원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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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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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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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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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조재희11021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지금까지 살았고, 조부모님들의 댁들이 모두 서울에 있기에 시골의 정취를 체험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시에서라도 시골을 느끼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시골에 있을 듯한 요소들을 다 섞어서 국처럼 만든 후 마시겠다는 표현이 참신했습니다. 보통 '먹는다' 혹은 '마신다' 라는 단어는 결국에는 생성이 아닌 소멸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미지를 형성할 때 쓰는 것을 잘 보지 못하여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요소들이 아주 대단한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또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들인데, 그러한 것들이 모여서 시골이라는 하나의 큰 요소를 만든다는 발상이 민중적이고 대중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 2018-10-29 11:43:50
    조재희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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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목소리가 흥겨워요. 막 논두렁에서 나온듯한 흥성거림이라니, 어쩌면 이런 멋을 많은 이들이 잃고 사네요, 살아있음의 신명을 느끼게 하는 시

    • 2011-04-12 09:45:3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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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
  • 로뎀비누

    찰방찰방,복닥복닥,후르륵 뚝딱.논두렁 도깨비에 홀린 듯 시에 홀딱 빠져들고 말았네요.

    • 2011-04-11 18:09:07
    로뎀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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