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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 「빈 들판」

  • 작성일 2012-05-07
  • 조회수 2,948




 
 
 이제하, 「빈 들판」
 
 
 
  빈 들판으로
  바람이 가네 아아
 
  빈 하늘로
  별이 지네 아아
 
  빈 가슴으로 우는 사람
  거기 서서
 
  소리 없이
  나를 부르네
 
  어쩌나 어쩌나
  귀를 기울여도
 
  마음속의 님
  떠날 줄 모르네
 
  빈 바다로
  달이 뜨네 아아
 
  빈 산 위로
  밤이 내리네 아아
 
  빈 가슴으로 우는 사람
  거기 서서
 
  소리 없이
  나를 반기네
 
 
 
 
  시_ 이제하 - 1937년 밀양 출생. 소설집 『초식』, 『기차, 기선』, 『용』, 『어느 낯선 별에서』, 장편소설 『열망』, 『소녀 유자』, 『진눈깨비 결혼』, 『독충』, 『능라도에서 생긴 일』, 시집 『저 어둠 속 등빛들을 느끼듯이』, 『빈 들판』, 소묘집 『바다』, CD 〈이제하 노래모음〉 등이 있음. 현재 카페 〈마리안느〉를 운영하며 개인전시회 그림 작업 중.
 
  낭송_ 김근 - 시인. 1973년 전라북도 고창 출생.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이월」 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가 있음.
  출전_ 『빈 들판』(나무생각)
  음악_ 이제하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감히 말하건대 나는 이제하 선생님의 친구다. 시나 삶이나 허심탄회, 천의무봉인 그 어질고 아름다운 음유시인과 같은 시대에 살며 가까이 뵙고 지내니 고마운 일이고 영광이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어쩌면 다들 그렇게 짧은 시간을 살다 갈 거면서 저마다 그토록 영겁 같은 고통과 고독을 안고 있는지.
  서릿발 같은 맥놀이 속에서 얼어붙어 갈 때 「빈 들판」이 먼 하늘 햇살처럼 나려왔다. 노래 「빈 들판」의 선율에 실려.
  “빈 들판으로/바람이 가네 아아//빈 하늘로/별이 지네 아아”
  글자로 보니 ‘아아’가 탄식하는 간투사일 뿐 아니라 바람이 가고 별이 지면서 짓는 의태어다. 탄식의 모양을 붓질하듯 그린 의태어.
  나는 자잘한 일상사에 마음이 매여 있고 이사도 여행도 질색이어서 몸은 붙박여 있다. 고통은 사람을 크게 한다지만 편협한 사람은 더 움츠러들 따름이다. 그런 내게 「빈 들판」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삶과 풍상의 아름다움을 흘긋 보여준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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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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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익명

    다 거두고, 다 소용에 다하고 난 빈 들판이 되어, 바람과 별빛, 지난 기억으로 가득한 빈 들판이 되어,,,허허롭고 싶다.

    • 2012-06-11 12:03:0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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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어쩌나 어쩌나 바람은 심하게 불고 풀 배는 사내는 돌아도 안 보는데 바람에 풀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져 한라산을 넘고 또 넘어가네.

    • 2012-05-09 23:33:0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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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07 21: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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