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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환, 「삶의 무게」

  • 작성일 2012-07-09
  • 조회수 2,784




 
 설정환, 「삶의 무게」 
 
 
파지 1kg  50원
신문 1kg  100원
고철 1kg 70원
구리 1kg 1400원
상자 1kg 100원
양은 1kg 800원
스텐 1kg 400원
각종 깡통 1kg 50원
    -고물상 주인 백
삶이 얼마나 무거워져야 가벼워지는지 모르는
허리 굽은 이가 저울 위에 그의 전부를 올려 놓는다
먼저 무게를 다 달고 난 이가 멀찍이서
그, 저울눈을 슬쩍슬쩍 훔쳐보며 견줘보고는 배식배식 웃는다
햇빛 환한 마당에는 좀 더 무거워야 가벼워지는
삶이 순해진다.
 
 
  시_ 설정환 - 1970년 전북 순창 출생. 시집 『나 걸어가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 비서관.
 
  낭송_ 정란희 - 배우. 연극 <노부인의 방문>, <겨울 이야기> 등에 출연.
  출전_ 『나 걸어가고 있다』 (시와 사람)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송승리
  프로듀서_ 김태형
 
 

 
  그 동네 다른 집들보다 더 허름하달 것도 없을 고물상. 거기 문짝이나 담벼락에 붙은 종잇장 앞까지 다다른 시인의 걸음을 생각해 본다. 재활용 폐품 수매 가격을 알리는 그 종잇장을 들여다보며 시인이 토해내거나 삼켰을 “허!” 소리 들릴 듯하다. 시인은 폐품을 수거해 근근이 살아가는 ‘허리 굽은 이’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어린애만큼이나 달리 돈을 만들 방도를 모르는, 방도가 없는 노인들. 나도 그이들을 알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내가 가장 자주 마주치는 이들이다. 뙤약볕 아래서 비바람 속에서, 깊은 밤에 때로는 신새벽에 그이들과 마주치면 반갑기도 하고, 그이들의 무사함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파지 1kg 50원/신문 1kg 100원/고철 1kg 70원/(…)/ 각종 깡통 1kg 50원”
  인유로만 이루어진, 글자 뭉치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만으로 시가 된, 첫 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분노와 무력감과 슬픔이 오가며 가슴이 욱신거린다.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오브제가 있다. 그것을 발견한 설정환 시인의 힘!
고물은 그렇게나 무겁고 그 값은 그렇게나 가볍고. 그래서 그이들이 개미처럼 쉴 새 없이 헤매 다니는 것이다. 생활력이 없어도 생활비는 있어야 하는 삶의 무게…….
  고양이밥 깡통 빈 것을 모아 이웃할머니 댁에 갖다 드리는데, 한 번에 대략 백 개쯤 된다.
  잘해야 2kg 나갈 ‘각종 깡통’이다. 겨우 100원어치! 무거운 마음으로 깡통 겉에 붙은 라벨을 벗겨낸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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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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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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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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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 곽태원11201

    나도 길을 가며 폐지를 줍고 재활용 쓰레기를 가져가시는 분들을 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소에는 그렇게 큰 생각없이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를 읽으면서 그분들의 삶이 어떨지,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삶이 얼마나 무거워져야 가벼워지는지 모르는'이다. 나에게는 이 문장이 '얼마나 더 열심히 일 해야 편하게 삶을 살 수 있을까' 라는 폐지,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분들의 한탄 소리로 들려왔다. 앞으로 길을 가다가 그런 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2018-05-31 14:09:53
    곽태원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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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무거울수록 가벼워지는.. 잘 봤어요.

    • 2012-07-11 01:10:2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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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우리 골목길에도 재활용수거해 가시는 분들이 대여섯분이 계시다. 다들 표정이 어둡고 지친 모습이 역력하시다.내가 아느 한 분은 언젠가 추운 겨울날 친정아버님 제사 지내고 새벽2시에서야 집에 오는데 하얀 눈길에 기득 싷은 리어커를 끌고 가지 않는가! 그닥 아는채 하고 싶지않아 외면하며 지니치곤 했던 나는 그날 이후로 그 분께 재활용을 한가득 모아두었다가 할머니께 드렸다. 날 보면 고맙다고 아이들까지 인사를 잘한다며 몇번이고 고개숙여 인사를 하셨다. 헌책을 수레에 가득 실어 두 수레를 드렸던 일을 지금도 옆집사람들에게 자랑하신다.

    • 2012-07-10 01:21:3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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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미영

    첫줄부터 마음이 무겁고 아파왔는데...그냥 눈감고 지나쳐지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되었어요..황인숙 시인님 덕분에 가만히 위로 받고... 또 위로해 드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답니다...허리 굽으신 그 분들도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 2012-07-09 22:38:54
    윤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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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진짜 마음 아프네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인 것은, 어려운 이들의 사연을 알아주는 좋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 때문이겠지요. 무게가 많이 나갈 수록 삶이 가벼워지는 이들의 짐이 조금만 더 무겁기를 빕니다. 그들의 삶이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빕니다.

    • 2012-07-09 14:08:4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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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