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봄이 온다

  • 작성일 2017-12-01
  • 조회수 1,590

[글틴스페셜-에세이]
2017년 아르코 청소년 창작시대회 ‘너의 시를 보여줘’



봄이 온다



김보배







2017 아르코 청소년 창시대회 '너의 시를 보여줘' 예선




2017 아르코 청소년 창작시대회 '너의 시를 보여줘' 본선



푸른 조명이 홀을 훑는다. 긴장한 얼굴들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땅속에 갇힌 씨앗처럼 불완전하고도 투명한 모습으로. 그러나 언제든 튀어나가 잎을 틔울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허희 평론가의 사회로 ‘너의 시를 보여줘’ 본선 무대가 시작 되었다. 열다섯 팀이 본선에 올랐고 모두가 수상의 기회를 얻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 위해 몸을 비틀고 움직이는 모습에서 힘이 느껴졌다. 객석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내내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을 한동안 지울 수 없었다.


십대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야기도 흔히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로 시작해서 ‘친구’와 ‘사회’로까지 이어진다. ‘너의 시를 보여줘’ 본선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고독으로부터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고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달은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더 나아가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도 있었다. 아이들이 가진 고민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더 넓고 풍성하다는 점을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중 최우수상을 수상한 최수빈 학생의 작품(「2014.04.16.」)과 대상을 수상한 김다빈 학생의 작품(「가시」)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두 작품을 통해 어쩐지 십대 친구들에게 자꾸만 미안해지는 이상한 기분을 경험한 것 같다. 그건 자신의 고독과 아픔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기에도 부족할 십대친구들에게 우리가 사회문제‘까지’ 던져준 것만 같아서, 그러니까 얼마간의 편안함에 편승해 살아온 지금 이십대의 나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직시해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고마운 시간이었다.


작품「2014.04.16.」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을 살아가는 ‘남아있는’ 십대들이, 더 나아가 국민들이, 어떤 후유증을 앓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강한 이야기였다. “우리를 데려간 그 곳이/ 적막하고 차가운 그 곳이/ 노랗게 따스해지기를”바라는 강렬한 염원이 최수빈 학생의 몸짓을 통해 춤으로 재현되었다. 짧은 춤이었지만 길게 느껴졌다. 자꾸만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대상을 받은 작품 「가시」는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역시나 무대는 시작부터 강렬했다. 컴퓨터 명령 프롬프트를 활용해 소통이 되지 않는 현실을 영상으로 표현하려 노력한 점이 좋았다. “왜 너의 몸에 눈물이 박혀 있느냐/ 본래 내 것이었던 눈물이/ 왜 네게 닦아내고자 하는 추방의 대상으로 폄하되었느냐/ 너는 그것을 닦아낼 생각 말아라” 라는 구절처럼 김다빈 학생의 시는 다소 과격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프게 찔러오는 힘이 있었다. 김다빈 학생은 자신의 시를 연극을 통해 몸짓으로 표현했는데,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가슴속에 박힌 가시를 빼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처럼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입상한 아홉 팀의 작품과 우수상을 받은 네 팀의 작품도 대단했다. 내면의 고독과 슬퍼하는 친구를 위한 위로, 부모님의 희생적 사랑에 대한 깨달음 등을 열심히 고민해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대를 보면서 나의 십대에 대해 생각하며 웃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고 속상한 마음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홀을 나오며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애인에게 말했다. 사랑스럽다는 말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어 보인다고. 전화를 끊곤 아이들이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해 겨울이면 이벤트처럼 혼자 찾아가는 식당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헤매면서도 조금 오래 웃었던 것 같다.


본선에 진출한 열다섯 팀의 작품 모두 사람들에게 주목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앞으로도 재능을 갈고 닦아 자신의 이야기를 지금처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래든 랩이든 연극이든 춤이든 어떤 식으로든, 시를 그리고 문학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무대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면 잎을 움트려 발버둥치는 씨앗 같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푸른 조명 사이로 보이던 웃음들과 몸짓들이 생각난다. 봄을 부르는 목소리를 나는 오랫동안 되새길 것이다.













작가소개 / 김보배

1991. 4. 5
소설 쓰는 김보배입니다.


《문장웹진 2017년 12월호》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