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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지나 소불라, 「0-800 휴대폰 무료 정보 서비스」 중에서

  • 작성일 2010-02-11
  • 조회수 3,085




카타르지나 소불라, 「0-800 휴대폰 무료 정보 서비스」 중에서 

 

 

나는 늘 입버릇처럼 말해 왔어요. 낙하산을 사주는 남자와 결혼할 거라고. 어릴 적부터 날아오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열심히 궁리했고, 기도 중에 땅에서 몸을 붕 띄운 채 공중부양을 하는 위대한 성인들처럼 되고 싶어 몸살을 앓았지요, 산 파콘도의 요한 성인은 밤새도록 공중에 떠 있곤 했다잖아요. 하늘을 나는 양탄자건, 스카이다이빙이건, 아니면 황홀한 엑스터시건, 황당무계한 ‘수리수리 마수리’건 어린아이에게는 아무 상관없었죠. 중요한 건 높이였어요.

내게 낙하산을 준 사람, 그가 바로 다렉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스카이다이빙이 섹스보다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요. 다렉은 정말 뛰어난 아드레날린 공급자였고, 그와 함께 있으면 키스할 때부터 벌써 온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곤 했거든요. 그런데 레섹과는 단 한 번도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기본적으로 내 몸을 어루만지는 법을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무의식중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남자였거든요. 레섹의 손톱에는 먼지 한 톨 끼어 있지 않았어요. 이 사이에 낀 찌꺼기들을 제거할 때는 프랑스에서 수입한 특제 치실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테크닉을 발휘하곤 했죠. 저녁마다 행해지는 그의 정화의식은 항상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규칙대로 진행되었어요. 처음에는 귀. 그리고 또 다른 자기만의 비법.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조심스럽게 귓속을 청소했죠. 겨드랑이 털은 언제나 말끔히 면도했고, 나쁜 냄새를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자연적인 요소들은 일찌감치 제거했어요. 그렇게 그는 오 년 동안 철저하게 살균된 자신만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했죠. 레섹의 애무는 항상 똑같았지만, 끊임없이 기분이 어떠냐고 캐묻는 통에 나는 만족스러운 척 그를 기만하고 거짓말을 해야만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결국 모든 것이 들통나고 말았어요. 다들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라고 여기는 그 찰나에 하필이면 내가 ‘이산화탄소!’라고 소리를 질렀거든요. 내 입에서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그 말이 튀어나온 지 불과 몇 초 후 레섹의 눈빛을 보고서야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죠. 나도 모르게 아래층 남자가 열심히 시청하고 있던 TV 퀴즈 프로그램의 정답을 말해버린 것이었으니까요. 그 남자가 항상 베란다 문을 열어놓은 채 그 따분한 퀴즈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통에 우리는 끊임없이 소음 공해에 시달리곤 했어요. 바로 그 순간 나와 레섹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을 수 있었죠. 물론 그 전에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알잖아요, 변두리 작은 읍내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 친구를 사귀다 보면, 어느 틈에 그 관계에 익숙해져 버리고, 그러다 보니 그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게 된 거죠. 우리 엄마는 레섹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어요. 왜냐하면 레섹은 검소한 데다 책임감이 강했고, 전통적인 결혼식과 아이를 원했거든요. 아무하고나 함부로 자고, 매주 쾌락을 위해 목숨을 거는 다렉과는 영 딴판이었죠. 우리 엄마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란 죽음을 유발하는 모든 요소를 미리 철저하게 피해 가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었어요.

 

 

작가 / 카타르지나 소불라 - 1977년 폴란드 투후프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첫 소설 『사진 치료』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폴란드 문화부 상 등을 수상함.

낭독 / 윤은주 - 방송 리포터로 활동 중.

출전 / 『유럽, 소설에 빠지다 2』(민음사)

음악 / 권재욱

애니메이션 / 이지오

프로듀서 / 김태형

 

낯선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풍경과 사람과 음식과 습속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그 다음 단계로는 그들의 문학이 궁금해져요. 더구나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들, 가령 라트비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그곳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또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요. EU 27개국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책이 흥미를 끌었던 이유입니다. 우리와 아주 다르지는 않네요. 그렇지만 분명 다르긴 해요. 그 다름이 우리 독자의 문학적 감각을 더 섬세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겠죠. 퀴즈 하나, 나는 레섹과 헤어져야 할까? 잊지 마세요. 정답은 이산화탄소입니다.

 

문학집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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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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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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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說囊)라고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 간절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그치니 사람들은 뒷얘기가 너무 궁금하여 다투어 돈을 그의 발아래 내던졌다. 이신통은 당시에 한양 패거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단출한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던 박돌이 막걸리 잔이나 사면서 동무가 되었다. 신통은 다시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이를테면 장터 어구의 버드나무 아래라든가 다리 앞에라든가에서 다른 이야기로 판을 벌였다. 새 손님이 많았지만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지나가다 다시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박돌이 자기네 패와 동행하기를 권하여 함께 다니다가 이신통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다시 도방 대처에서 만나기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신통이가 광대물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주에서 엄마의 색주가에 들렀을 때에 이신통은 광대물주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글쎄 그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독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지도라구 들어봤나? 신통이가 그 패거리에 들게 되었거든.  저 머신가, 나라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는 미신인데 그것이……  그러면 예전 천주학 같은 거 말예요?  이전에는 모두 죽였다만 시방 천주학은 양귀들 때문에 묵인된 셈이고, 천지도는 처음 시작했다는 교주를 국법으로 처단을 했다 그 말여.    박돌이 이신통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나는 뜸을 들였다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던 때에 슬며시 묻게 되었다.   엄마, 천지도가 뭔지 알우?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뜬금없이 천지도는 왜...... 한번 믿어볼라구?   관에서 금한다며?   양반 것들이 저희 자리 내노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게지. 천지도에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다 그런다는구나. 그 말본새 하난 마음에 들더만. 나두 주문 외우는 소린 여러 번 들었다. 우리 집에 묵어가는 길손들 중에 겉으로 말은 안 해두 내가 대강 눈치를 채는데 하나둘이 아녀. 천지도인들 점잖은 사람들이더라. 소문에 듣자 허니 촌에는 동네마다 모여서 기도하구 그런다대.   하면 엄마는 왜 안 믿었어?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nb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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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 바로 그 순간 나와 레섹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을 수 있었죠. 물론 그 전에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알잖아요, 변두리 작은 읍내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 친구를 사귀다 보면, 어느 틈에 그 관계에 익숙해져 버리고, 그러다 보니 그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게 된 거죠. >라는 구절! 마음 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 2010-02-15 20:01:4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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