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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찻길을 횡단할 수 있을 만큼 떼를 짓자」

  • 작성일 2008-01-10
  • 조회수 4,275



홍은택「찻길을 횡단할 수 있을 만큼 떼를 짓자」

 

  떼잔차질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92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 라이더들이 자신들도 도로 이용자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시작했다. 처음에 45명이 참여한 이 월례 행사는 지금은 평균 1500명이 참여하는 축제로 발전했다. 많을 때는 5천 명도 참석한다고 한다. 이 운동에 붙인 이름은 다소 추상적인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 핵물리학에서 임  계질량으로 번역된다. 핵분열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량. 그러니까 자전거가 차도의 정당한 이용자로 인정받을 때까지 대중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운동이다.
  계기는 테드 화이트 감독의 <폭주족의 귀환(Return of the scorcher)>이라는 자전거 기록 영화였다. 내연기관이 나오기 전 자전거가 속도를 지배했다. 그래서 영화에서 말하는 폭주족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 영화에는 중국 어느 도시의 찻길이 나온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찻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자동차들은 쌩쌩 달리고 신호등이 없다. 라이더들 한두 명이 길가에서 망설이고 있다. 몇 명이 더 모여든다. 여전히 무리다. 열 명 가까이 모이자 선두에 선 사람이 결단을 내려 찻길을 가로지르고 우르르 뒤를 따른다. 찻길을 횡단할 수 있을 만큼의 숫자, 이 숫자가 바로 크리티컬 매스다.
  한 사람은 차도 중간에 멈춰 뒤에 처진 라이더들이 다 건널 때까지 기다린 뒤 자신도 잽싸게 그 뒤를 따라 차도를 건넜다. 무슨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서로 안면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게 그들의 일상인 것이다. 특별할 게 하나 없어 보이는 이 장면을 보고 샌프란시스코의 라이더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길을 건너는 데 담력과 연대가 필요한 상황. 미국 라이더들이 처한 상황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중국 라이더들이 함께 힘을 합쳐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모임을 시작했다.

 

 

● 출전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 한겨레출판사 2007

 

● 작가 - 홍은택 :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과 이라크전 종군기자로 활동했음. 저서로『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나를 부르는 숲』『천천히 달려라』『리틀 비트와 함께한 여섯 번의 여름』등이 있음.

 

● 낭독 : 이남희- 배우. 연극 <이> <미친키스> <남자충동> <아트>, 영화 <서울에 비타> <7인의 새벽> <라듸오 데이즈> 등에 출연.

 

 

떼잔차질은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운행하는 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전거를 무시하는 운전자들이 지배하는 차도를 건너가는 자전거 탄 사람들(라이더) 사이, 차도 중간에 멈춰 뒤에 처진 라이더들이 다 건널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덕은 어떤 물질적인 보답을 바라고 베풀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천연스러운 사람다움이 사람 사이에서 우연히 드러날 때 감동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감동도 세상에 베푸는 덕이겠지요. 감동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퍼져 나갑니다.

 

2008. 1. 10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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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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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도쿄에 가면 폭이 3m이상만 되면 건널목엔 어김없이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다.서울의 왠만한 큰 거리에는 신호등이 제법 서있다북경에 가서 놀란 것은 우리로 따지면 두셩먼 시외버스 정류장 근처의 대로에 신호등이 거의 없었고 사람들이 교통상황을 임의적으로 판단하여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표면적으로 임의적으로 횡단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고 이를 집단적으로 보이는 것은중국만의 특수성에 기인한 문화형태로 보인다.단. 이를 해석하는 미국 라이더들은 아마 예술가적 상상력을 가졌을 지 모른다.

    • 2008-01-10 15:36:0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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