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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도둑의 교훈」

  • 작성일 2008-02-07
  • 조회수 5,934



강희맹「도둑의 교훈」  

 

  도둑질을 전문으로 하는 자가 일찍이 그 기술을 아들에게 모두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스스로 자기 기술이 아버지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였다. (…)
  어느 날 밤 도둑 부자는 함께 도둑질을 하러 어느 부잣집에 숨어 들어갔다. 곧 이어 아들은 보물이 가득 차 있는 창고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아들이 들어간 창고의 문을 잠그고 그 문을 덜컹덜컹 흔들었다. 곤히 잠을 자던 주인이 놀라 일어나서 달려 나왔다. 그리고 도망치는 아버지 도둑을 따라가다가 붙잡을 수 없게 되자 돌아와서 창고를 살펴보았다. 그는 그곳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그 때 창고 안에 갇혀 있던 아들 도둑이 빠져나올 궁리를 하다가 손톱으로 창고 문짝을 박박 긁으며 “찍찍” 하고 늙은 쥐의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방에 들어갔던 주인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쥐가 창고에 들어가서 곡식을 다 축내는구나.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지.’
  그는 초롱불을 들고 와서 자물쇠를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때 아들 도둑이 문을 밀치고 도망쳐 나왔다. 그러자 주인은 도둑이 들었다고 소리쳤고,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몰려 나와서 그의 뒤를 바싹 따라왔다. 도둑은 거의 붙잡힐 지경이 되었다. 그는 그 집 마당 안에 파놓은 연못 둑을 타고 도망치다가 큰 돌을 하나 집어 물속으로 던지고는 몸을 날려 둑 밑으로 숨었다. 뒤따르던 사람들은 도둑이 물속으로 몸을 던진 줄 알고 모두 연못만 들여다보았다. 이 틈을 타서 도둑은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를 원망하며 말했다.
  “나는 새나 기는 짐승도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할 줄을 아는데 아버지는 어찌하여 자식이 붙잡히도록 일부러 자물쇠를 잠갔습니까?”
  아버지가 대견하다는 듯이 그를 보며 대답하였다.
  “이제부터는 네가 이 세상에서 도둑으로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은 한정이 있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것을 무한히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내가 이번에 너를 위험한 경지에 빠뜨린 것은 너를 곤란한 처지에 빠뜨림으로써 장래에 편안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

 

 

 

● 출전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 외』, 현암사 2001

 

● 작가- 강희맹  :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1424∼1483). 문장가로서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하였으며 농촌에서 널리 전승되고 있던 민요나 설화에도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문집으로『금양잡록(衿陽雜錄)』『촌담해이(村談解?)』『사숙재집(私淑齋集)』(17권) 등이 있다.

 

● 낭독-
박웅 : 연극배우. 연극 <금의환향> <그 여자 황진이>, TV드라마 <용의 눈물> <여인천하> 등에 출연.
정상철 : 연극배우. 연극 <혈맥> <아Q정전> <카페 신파> <꿈 꿔서 미안해>, 영화 <야수> <거미숲> 등에 출연.
권지숙 : 연극배우. 연극 <경숙이, 경숙이아버지> <루나자에서 춤을> <새벽부인> 등에 출연.
안성헌 : 연극배우. 연극 <카페신파> <유령> <기차길 옆 오막살이> <코리아 환타지> 등에 출연.

사자가 절벽에서 새끼를 떨어뜨려서 살아남는 새끼만 키운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버지 도둑은 그 방식을 사용한 것일까요? 도둑들의 말에도 배울 점이 있으니 마지막 부분을 주목해 보십시오. 어쩌면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터득하게 하는 길을 안내해주는 게 아닐까요?
주의사항 : 사자나 도둑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마십시오, 특히 어린이에게는. 어린이들도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2008. 2. 7.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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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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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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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LOVE최논버이띠용차긍우LOVE

    아버지의 교훈은 정말 본받고 기억해야 할 말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도둑질은 어디까지나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지만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 2018-05-28 01:52:01
    LOVE최논버이띠용차긍우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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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살아남은자의 슬픔이었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몇구절을 거의 그대로 옮겨쓴 대목으로 소설을 구성해 한동안 표절에 대한 이슈를 불러 일으켰던...남의 것을 빌려오거나 흉내내는 것 또한 한정적 Tact에 불과하지만스스로 터득한 기술은 활용도가 무궁무진하겠죠

    • 2008-02-11 07: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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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역활은 혼자서기까지 뒷받침해주다 놔주어야하는데과잉보호, 간섭, 기대, 노파심에서 잘 벋어나질 못하니...자식에게 굳은 믿음을 선사하는것이 부모들의 최대과제 같습니다.

    • 2008-02-09 15: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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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의 아들에게 고기를 잔뜩 잡아다 주는 것 보다 ,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맥락이 같네~~~

    • 2008-02-08 15: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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