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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베토벤, 불멸의 편지」

  • 작성일 2008-02-21
  • 조회수 5,512



베토벤「베토벤, 불멸의 편지」

 

친애하는 베티나!
왕과 군주들은 교수나 추밀관을 만들 수 있소. 자기들이 만들어낸 직책에 훈장을 잔뜩 내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들은 위대한 인간, 군중 사이로 치솟아오르는 위대한 정신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오. 따라서 왕보다 우월한 그런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하오. 그러니 나와 괴테 같은 사람이 함께 있으면 군주들도 우리의 위대함을 느낄 것이 틀림없소.
  어제 괴테와 함께 산책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황실의 행렬이 지나갔다오. 우리는 멀리서 그 행렬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괴테는 내 곁에서 떠나 길가에 비켜 서지 뭐겠소. 내가 말려도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을 거요. 그래서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외투 단추를 채우고는 팔짱을 끼고 법석대는 군중 속으로 들어갔소. 왕자와 중신들이 늘어선 가운데 황후께서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고 그 다음에야 나는 루돌프 대공을 향해 모자를 벗었소. 그들은 다 나를 알아보았소. 행렬이 괴테의 앞을 지날 때 그가 어떻게 하나 굉장히 궁금했지. 글쎄 그는 길가에서 모자를 손에 들고 황송한 듯 몸을 굽히고 서 있지 않겠소.
나는 이 일로 그를 맹렬히 비난했소. (…)
내일은 궁전에 간다오. 오늘은 공연이 한 번 더 있어요. 황후는 괴테와 함께 연주할 부분을 연습했소. 그와 대공은 내가 직접 연주하기 원했지만 거절했소. 그들은 중국 도자기에 미쳐 이성을 잃었다오. 이런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연주하지 않을 게요.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낭비하는 바보 같은 군주를 위한 작품을 쓰지도 않을 거요. 안녕히, 안녕히, 사랑하는 당신, 지난번 당신의 편지는 밤새 내 가슴 위에서 나를 위로해주었소. 음악가에겐 모든 것이 허용된다오. 세상에,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는지!
- 그대의 충실한 친구이며 귀먼 형제

 

 

 

● 출전 :『베토벤, 불멸의 편지』, 예담 2000

 

● 작가- 루드비히 판 베토벤 : 독일의 본에서 태어남(1770~1827) 고전주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시대정신과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추구하던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좇았다. 중요한 작품 중 일부는 그가 완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마지막 10년 동안에 작곡되었다. 귀족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기 내면의 부름에 응한 작곡만으로 보수를 받았던 최초의 음악가였다.

 

● 낭독- 정상철 : 연극배우. 연극 <혈맥> <아Q정전> <카페 신파> <꿈 꿔서 미안해>, 영화 <야수> <거미숲> 등에 출연.

베토벤이 가진 예술가로서의 자각, 긍지가 괴테보다 강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바이마르공화국의 재상까지 지낸 괴테의 처신과 정치적 감각이 베토벤에 비해 우월했던 것일까요? 옳고 그른 것은 두 사람의 가치기준에 따라 다르겠지요. 어떻든 두 위대한 예술가의 만남이 두 사람 모두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실은 제 관심은 밤새 한 사람의 가슴에 얹혀서 가슴의 소유자를 위로해 줄 편지랍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써보니 세상에, 사랑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써보시기를.

 

2008.2.21.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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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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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베토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편지군요.. 그의 3번 교향곡 2악장.. 장송 행진곡을 특히 좋아 합니다.. 정말 영웅적 죽음이 느껴지지요.. 지금 낭독해 주신 편지 내용과 일맥 상통..!!

    • 2008-02-23 12:54:3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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