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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바타이유「다다를 수 없는 나라」

  • 작성일 2009-01-22
  • 조회수 4,285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저녁에 도미니크와 카트린느는 기도를 하는 둥 마는 둥했다. 그들은 서로 말을 나누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들은 프랑스말을 했고 지내온 삶과 추억들을 이야기했다. 도미니크는 책을 몇 권 지니고 왔었다. 그는 큰 소리로 페트라르카의 14행 시들과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곤 했다. 겨울의 추위 속에 하루하루가 이어져 흘러갔다. 1월이 되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안개비가 고원을 뒤덮었다. 영원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허연 구름들이 가까운 산들을 밑바닥부터 끊어놓고 있었다. 어느것 하나 습기에 젖지 않은 것이 없었다. 습기는 그들의 고독한 몸을 적셨다.

 

겨울은 여러 달 동안 계속되었다. 오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가 났다. 낮게 떠 있던 구름은 걷혔다. 하늘이 푸르러지면서 대지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산들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더위는 사이공에서보다는 덜 지독했다. 미풍이 불어 공기가 맑게 씻기었다. 안남에는 절대로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는 법이 없었다. 회오리는 산 위에서 허물어지고 소란스럽게 바람으로 풀려서 고개와 골짜기들로 몰려들어갔다. 그럴 때면 하늘이 어두워졌다.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가눌 수 없었다. 농부들은 자기네 오막살이 마을들에 따로 떨어져들 있어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큰비가 오려고 할 때는 어둡고 초록빛 나는 산의 면이 불안감을 자아냈다. 모두들 숲가에나 짚과 진흙으로 지은 헛간 속으로 몸을 피했다.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왔다. 새로운 계절들은 카트린느와 도미니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자연은 싱싱했다. 골짜기들은 코끼리떼와 엄청나게 큰 풀들이 들어차서 아주 이상야릇한 풍경으로 변했다. 밝은 빛이 되살아났다.

 

● 출처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문학동네 2006

 

 

● 작가 :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프랑스에서 태어나 근원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소설을 쓰기 시작함. 소설 『압생트』『나는 바보들을 칭찬해주고 싶다』 등이 있음. 처녀작 상, 되마고 상, 보카시옹 상 등을 수상함.

● 낭독- 이혜경 : 배우. 『유령』『늙은 부부 이야기』『스페인 연극』 등에 출연.

 

● 음악- 문소연

어떤 날은 그냥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도 않아요. 오늘이 그날이네요. 그냥 음악만 계속 들읍시다.

 

2009년 1월 22일. 문학집배원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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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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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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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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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악보를 그려서;;;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았답니다. 곡명은, J.P. Martini - Plaisir d'amour (사랑의 기쁨) 이네요. 아름다운 글, 아름다운 선율, 잘 보고, 잘 들었답니다...* 행복한 나날 기원드리며...

    • 2009-01-25 22:43:3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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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음악 선율이 매우 귀에 익는데, 곡명을 알 수 있을까요? 답변하여 주시는 님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모든 회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09-01-25 15:58:5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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