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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무릎」

  • 작성일 2007-10-04
  • 조회수 4,724



「무릎」  윤성희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주 두 눈을 찌푸렸다. 휴게소에서 큰형은 동생들을 불러놓고 주머니에 든 돈을 모두 내놓으라고 말했다. 막내를 제외한 여섯 남매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의 썬글라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결국은 큰누나가 고른 썬글라스를 샀다. 썬글라스를 낀 아버지는 오른쪽 다리를 흔들며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여기저기에 쏘아댔다. 그러고는 콜라 여섯 병을 사서 자식들에게 나눠주었다. 돼지를 실은 트럭이 옆차선에서 달리는 것을 보면서 그는 콜라를 빨대로 빨아먹었다. 불그스름한 기운이 서서히 하늘을 덮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돼지의 온몸을 물들였다. 다른 돼지들과 반대반향으로 몸을 틀고 있던 돼지가 고개를 몇번 흔들었다. 트럭이 속력을 내어 아버지의 차를 추월하는 순간, 마주오는 차가 헤드라이트를 켜는 순간, 돼지 한마리가 트럭에서 튀어올랐다. 돼지가 날아. 남동생이 말했다.
  승합차는 앞이 완전히 우그러졌다. 그는 차에서 내려, 도로 한 가운데 누워 있는 돼지를 보며 남은 콜라를 마저 마셨다. 돼지는 도살장으로 실려가는 중이었다. 그는 도살장으로 실려가던 돼지에 치여죽으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변비에 걸린 코끼리를 치료하다가 코끼리 똥에 깔려죽은 수의사의 죽음보다 더 우습고 더 슬픈 죽음이었다. 누워 있던 돼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도로 아래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트럭 운전기사가 돼지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고, 차를 세워놓고 구경하던 몇사람이 그 뒤를 따라갔다. 

 

● 출전 :『감기』, 창비 2007

 

● 작가 : 윤성희- 1973년 경기 수원에서 태어나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   소설집으로『레고로 만든 집』『거기, 당신』『감기』가 있으며, 현대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독 : 홍성춘- 연극배우. 연극 <루나자에서 춤을> <추파> <주머니 속의 돌> 등에 출연.

휴가를 다녀오는 대가족, 특히 여섯 남매들은 어쩐지 동화 ‘아기돼지의 소풍’을 연상시키네요. 소풍 가는 아기돼지들에게는 아버지가 없지만요. 아버지가 남매들에게 콜라를 사주려면 숫자가 맞는지 세어 봐야 했겠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자신은 빼고요.
그런데 현실의 도로 위에서는 진짜 돼지가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돼지와 좀 다른, 어쩌면 반대방향인 돼지가 하늘을 나는 풍경을 보는 것, 그건 경이롭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고가 됩니다. 특별한 돼지 때문에 일가족이 타고 있던 차가 우그러지고 하마터면 우습고 슬픈 죽음을 맞을 뻔 하는데요. 정말 우스운 것은 돼지를 뒤따라가는 구경꾼들입니다. 트럭 운전기사는 좀 슬퍼 보일 것 같습니다. 죽었다 살아나 뛰어야 하는 돼지는 물론.

 

2007. 10. 4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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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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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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