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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추억」

  • 작성일 2008-04-17
  • 조회수 11,504



파블로 네루다 「추억」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마르 비뇰레라는 괴벽스러운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비뇰레씨는 아르헨티나의 농경학자였는데, 떨어질 수 없는 친구인 암소를 끌고 다녔다.(…) 그 당시 그는 <암소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암소와 나> 등등의 괴상한 책을 출판하였다. 국제 펜클럽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첫 대회를 열었을 때, 빅토리아 오캄포를 비롯한 작가들은 비뇰레가 암소를 끌고 나타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경찰에 경호를 요청, 회의가 열리고 있는 플라자호텔 주변의 거리를 차단하여 이 엉뚱한 사람이 자기 친구를 호화스러운 장소에 끌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축제가 한창 열이 올라 작가들이 그리스 고전문학의 세계와 그 현대적 의미를 토론하고 있을 때, 이 위대한 비뇰레가 돌연히 암소를 끌고 나타나 그 소가 토론에 참여하고 싶은 듯이 음매 하고 울어젖히자 모든 것이 끝장났다. 그는 암소를 거대한 수하물 마차에 몰래 싣고 도심에 들어옴으로써 경찰의 경계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한번은 비뇰레가 레슬링 선수에게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프로선수에게 호언장담을 하고 시합하는 날, 정시에 루나 공원에 소를 몰고 도착했다. 소를 구석에 매어두고 요란스러운 윗도리를 벗고 캘커다 스트랭글러와 대전했다.(…)직업적인 레슬러는 비뇰레에게 느닷없이 덮쳐 순식간에 시합장 바닥에 그를 때려 눕히고 한 발로 문학계의 황소의 목을 찍어 눌렀다. 둘러싼 군중은 시합을 계속하라고 휘파람과 야유를 퍼부어댔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비뇰레가 신간서적을 하나 냈다. 제목은 <암소와의 대화>. 나는 그 첫 페이지에 나와 있던 독특한 헌사(獻辭)를 잊을 수가 없다. 기억하는 대로는 ‘이 명상적인 작품을 2월24일 밤 루나 공원에서 내 피를 요구하며 울부짖던 4만 마리의 개새끼들에게 바친다’라는 것이었다.

 

 

● 출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1990~1996』, 현대문학사 2008 

 

 

● 작가 - 파블로 네루다: Neruda(1904~1973). 칠레의 시인이며 외교관.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10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함. 작품으로『지상의 거처』『모든 이들의 노래』1971년 노벨문학상 받음.

 

● 낭독- 전국환: 연극배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아큐정전> <말광량이 길들이기>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기 전, 저는 서울 신림동의 헌책방에서 네루다의 자서전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미완으로 끝난 그 자서전을 덮으면서 저는 이 시인이 제 인생에서 아궁이와 등대 속의 불꽃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치열하고 낙천적으로 살며 곳곳에 이야기를 만들어 뿌리고 또한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방랑자로서.
그의 시는 더없이 매혹적이지만 저는 자서전의 저자로서 파블로 네루다를 더욱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 존경의 근원이 제게 소설을 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위대한 이야기꾼의 솜씨를 살짝 맛보십시오. 
     
2008. 4. 17.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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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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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익명

    즐감했습니다.

    • 2009-02-12 07:37:1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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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그의 시는 철학보다 죽음에 더 가깝고 지성보다 고통에 더 가까우며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깝다."라고한 사람은 누구였더라. 아마도 f페데리꼬 가르시아 로르까였던 것 같은데... 그는 또 말했지요. 숱한 가짜 시인들이 지니고 있는 증오와 아이러니가 네루다에겐 부족하다고.

    • 2009-01-04 15:58:5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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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한참 웃다가도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파블로 네루다 시집 중에서 이 시가 실린 시집이 어느 것인지 한번 알아봐야겠습니다. 읽고 싶은 마음이 쑥쑥!!!

    • 2008-04-20 23:05:5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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