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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섭의「원자(原子) 마티니1」

  • 작성일 2007-06-21
  • 조회수 4,982



「원자(原子) 마티니1」 심연섭

 

 

칵테일 종류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고 하지만, 일반 주객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것을 따져보면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 베스트 텐 가운데 1위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상위권에 드는 것이 마티니다. 알코올 함량 42%의 진에다 포도주를 바탕으로 초근목피의 약미藥味를 가한 20도가량의 베르무트 약간을 섞어 셰이크한 다음, 올리브 열매 하나 또는 레몬 껍질 한 가닥을 넣은 것 말이다.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는 아페리티프로, 마티니 한두 잔을 들지 않는 미국 사람은 금주주의禁酒主義의 맹신자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이 칵테일은 아주 보편적인 술이다.
이 술을 주문할 때 보면, 마시는 사람이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노련하고 가락이 있는 바텐더라면 그것을 주문한 손님에게 이렇게 반문하게 마련이다.
 "How do you like it?"
이 질문을 "왜 그것을 좋아하세요?" 라고 알아들어 "I like it." 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주객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을 어떻게 해서 마시겠느냐는 질문에, "그냥 보통으로!"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주객이기는 하나 풋내기이므로 바텐더로부터 존경받을 생각일랑 말아야 할 것이다. "Make it dry!" 라고 명한 다음, 한참 뜸을 들였다가 엄숙한 목소리로 "엑스트라 드라이!" 라도 한마디 덧붙이면, 바텐더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Yes, Sir!"라고 화답할 것이다.
바텐더도 프로가 왔다는 것을 그 주문 한마디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보통 아마추어들의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이 3대 1 정도다. 프로의 경지에 접근할수록 5 대 1, 10 대 1, 100 대 1로 변하게 마련이다. "엑스트라 드라이" 라고 하면 100 대 1 정도라고 할 수 있다.
(……)
그럴 바에야 베르무트를 한 방울도 섞지 말고 진만 알몸으로 마시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신사의 체면이 없어도 유분수지, 어찌 벌거숭이 마티니를 마실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섬이라는 맨해튼의 어느 바에서 외국인 기자 몇 명과 어울렸을 때의 일이다. 어떻게 하면 가장 드라이한 마티니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 화제에 올랐다.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옛날 만년필에 잉크를 넣었던 스포이트 생각나나?"
 "그 스포이트로 베르무트 한 방울을 떨어뜨리니까 마티니 맛이 되더군."
 "그것보다는 주사기가 낫지. 가장 가느다란 바늘인 25호 정도면 베르무트 방울을 훨씬 작게 만들 수 있지."
또 한 친구의 이 비법에 다른 친구가 이의를 제기했다.
 "아내가 향수 뿌리는 분무기 알지? 그걸 빌리는 거야."
이번에는 듣고만 있던 바텐더가 한마디 거들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어떤 바에 가면 원자原字 마티니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자폭탄 과학자 중에 마티니 애호가가 있어서 네바다 사막에서 폭발 실험을 할 때 그 폭탄 속에다 베르무트 한 방울을 주입해두었다는 것이다. 원자탄이 폭발할 때, 그 한 방울이 같이 폭발하면서 대기 중에 퍼진다. 그래서 마티니 만들 때 셰이커 뚜껑을 열고 창밖으로 1초 동안 노출시키면 대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베르무트의 기가 내려앉는다는 설명이었다. 이름 하여, 그것이 바로 '원자 마티니' . 

 

 

● 출전 :『건배』, 중앙M&B 2006

 

● 작가 : 심연섭-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합동통신 외신부장, 동양통신 외신부장, 국제부장 이사를 지냈음. 한국 최초로 ‘칼럼니스트’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글을 썼으며, 1977년 3월 작고했음.   

● 낭독 :
손진환- 연극배우. 연극 <갈매기> <곱추 리처드 3세> <아가멤논> <애니깽> 외 출연.
이찬영- 연극배우. 연극 <죄와벌> <이상의 날개> <무진기행>과 영화 <아나키스트> <스캔들> <청연> 외 출연.
황정라- 연극배우. 연극 <흉가에 볕들어라> <세기초기괴기전기> <파행> <아으다롱디리> 외 출연.

 

심연섭 선생의 글을 읽은 것은 1982년, 군인 신분으로 휴가를 나왔다 헌책방에서 산 <술, 멋, 맛 - 주유만방기>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군대 동료들에게 잡학을 자랑하려고 책을 샀는데 읽어보고서는 혼자만 읽기에는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빌려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돌려받지 못하고 말았는데, 헌책방에서 산 책이었던 까닭에 다시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근래에 다시 이 책이 출간되었다길래 반가운 마음에 사보고는 그 중에서도 군대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내용을 골라 보았습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말고 다음 이야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2007.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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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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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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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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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너무나 재미있게 듣다가 회원가입까지 하게 됬어요 ^^

    • 2007-06-29 04:47:3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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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밥바라기

    시험출제하느라 며칠 고생을 하고 피로도 풀 겸 문장배달을 보았습니다. 마타니에 대한 천박한 저의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원자 마타니의 향에 잠시 취해 갑니다.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행복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문장 배달 아끼겠습니다. ^^

    • 2007-06-21 10:58:01
    개밥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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