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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의「전화와 편지」

  • 작성일 2007-07-05
  • 조회수 5,403



「전화와 편지」 김화영

  “여보세요? 거기 김화영 교수 연구실입니까?”
  “네, 그런데요.”
  “김화영 교수 계십니까?”  “전데요. 말씀하십시오.”
  “네, 저 여기는 거시기 주식회사 사장실인데요. 김머시기 사장님 전홥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종종 이런 전화를 받게 된다. 비서인 듯한 앳되고 직업적으로 반들반들하게 닦인 여자 목소리가 많다. 이렇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이쪽이 하염없이 수화기를 든 채 문제의 사장님 목소리를 간절해하도록 만든다.
(……)
  그런데 문제는 이쪽이 그런 전화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는 대개가 글을 쓰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는 때이다. 이처럼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에 파묻혀 있을 때 전화벨 소리란, 좀 과장해 표현하면 파티가 무르익어가는 중에 들리는 권총 소리 같은 것이다. 또 더러는 대학원 강의 도중에 이런 식의 전화가 걸려오는 수도 있다. 상대방이야 이쪽 사정을 알 턱이 없다. 본래 전화란 것은 그렇다.    그러나 어쨌든 이쪽은 강의를 중단해놓은 채 사장님의 여비서와 전화줄을 한끝씩 마주 붙잡고 이제나저제나 사장님이 그의 바쁜 목소리를 가지고 나타나주시기만 간절히 기다리는 꼴이다.
  비서실을 갖추어놓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못한 대학교수인 나는 날이 갈수록 전화의 고마움보다는 해독에 더 민감해져가고 있다. 특히 유들유들한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서 내겐 거저 주어도 반갑지 않을 물건이나 책을 한사코 팔아보겠노라고, 그 물건이 기필코 내겐 없어서 안 되는 것이라고 설득하려 들 때는 더군다나 그렇다. 그래서 나는 가끔 대문 앞을 서성거리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지를 기다리던 저녁 나절을, 그렇게도 고즈넉하게, 그렇게도 천천히 살던 시절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대화도 그리움과 함께 기억한다.
  “빨리 가세요.”
  “왜요?”
  “가야 편지를 쓰지요.”
  그렇다. 서로 떨어져 있어야 쓰는 게 편지다. “우리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있어야 하네”라고 시인은 노래했다. 요즘은 사람들이 모두 서로서로 전화줄로 연결되어 있다보니 편지 쓸 일이 없다. 그야말로 이별 없는 시대가 와버렸다. 편지는 부재 속으로 찾아드는 침묵의 목소리다. 그래서 전화와는 달리 편지는 길어져도 수다스럽지 않아 좋다. 그리고 그리운 이의 손길이 쓸고 지나간 그 육필(肉筆)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그리움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재치, 혹은 순정이 가득히 고인 그 종이와 글씨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우리의 서랍 속에 귀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 출전 :『바람을 담는 집』, 문학동네 1996

  

● 작가-김화영 :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전문 번역가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음. 저서『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전화와 편지』등이 있고, 역서로는 『이방인』『앙드레 말로』등이 있음.

 

● 낭독

최일화 - 배우. 영화 <우아한 세계> <한반도>, TV <히트> <패션70s>, 연극 <삼류배우> <서안화차> 등에 출연.

 

박남희 - 배우. 연극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날보러 와요> <김치국씨 환장했네> <한씨 연대기> 등에 출연.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물건을 고안하고 만들고 삽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것들에 포위되어 간섭 받고 그쪽의 일정과 스타일에 맞춰 쫓겨다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편리를 가져다주는 물건을 몽땅 버릴 수는 없겠지요.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 가운데 우리와 아주 가깝고 우리를 사람답게 하고 우리에게 추억과 느낌을 주던 것들을 되살려 보는 것으로 우리가 입고 있는 독을 어느 정도는 해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달 혹 어디로 여행을 가신다면, 엽서를 한 번 사보시지요. 그늘에 앉아서 넌지시 엽서를 보낼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겁니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2007.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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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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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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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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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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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7-05 09:14:1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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