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양귀자「한계령」

  • 작성일 2007-08-23
  • 조회수 6,019



「한계령」

 

  양귀자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은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토요일이었다. 이제 오늘밤과 내일밤뿐이었다. 은자도 그것을 강조하였다.
“설마 안 올 작정은 아니겠지? 고향 친구 한번 만나보려니까 되게 힘드네. 야, 작가 선생이 밤무대 가수 신세인 옛 친구 만나려니까 체면이 안 서대? 그러지 마라. 네 보기엔 한심할지 몰라도 오늘의 미나 박이 되기까지 참 숱하게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했으니까.”
  그렇게 말할 만도 하였다. 고상한 말만 골라서 신문에 내고 이렇게 해야 할 것 아니냐, 저렇게 되면 곤란하다, 라고 말하는 게 능사인 작가에게 밤무대 가수 친구가 웬말이냐고 볼멘소리를 해볼 만도 하였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박은자에서 미나 박이 되기까지 그애는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진 모양이었다.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부천으로 옮겨와 살게 되면서 나는 그런 삶들의 윤기 없는 목소리를 많이 듣고 있었다. 딱히 부천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부천 사람이어서 그랬을 것이었다. 창가에 붙어 앉아 귀를 모으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넘어져 상처입은 원미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지는 실패의 되풀이 속에서도 그들은 정상을 향해 열심히 고개를 넘고 있었다. 정상의 면적은 좁디좁아서 아무나 디딜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엄연한 현실도 그들에게는 단지 속임수로밖에 납득되지 않았다. 설령 있는 힘을 다해 기어올랐다 하더라도 결국은 내리막길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수긍하지 않았다. 부딪치고, 아등바등 연명하며 기어나가는 삶의 주인들에게는 다른 이름의 진리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이란 탐구하고 사색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몸으로 밀어가며 안간힘으로 두들겨야 하는 굳건한 쇠문이었다. 혹은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였다.
  은자는 마침내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노래로는 도저히 먹고살수 없어서 노래를 그만둔 적도 있었다고 했다. 처음의 전화 이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허겁지겁 달려나오지 않으리란 것을 그애가 눈치챈 이후 은자는 하나씩 둘씩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곤 했었다. 싸구려 흥행단에 끼여 일본 공연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마지막 공연날, 단체에서 이탈해 무작정 낯선 타국땅을 헤맨 경험도 있다는 말은 두 번째 전화에서 들었던가. 그런데 오늘은 더욱 비참한 과거 하나를 털어놓았다. 악단 연주자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살림을 차린 뒤 극장식 스탠드바의 코너를 하나 분양 받았다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은자는 주안·부평·부천 등을 뛰어다니며 겹치기를 하고 남편 역시 전속으로 묶여 새벽까지 기타줄을 튕겨야 했다고 하였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부른 배를 내민 채 술집 무대에 설 수가 없었다. 코르셋으로, 헝겊으로 배를 한껏 조이고서야 허리가 쑥 들어간 무대 의상을 입을 수 있었다. 한 달쯤 그렇게 하고났더니 뱃속에서 들려오던 태동이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져버렸다. 이상하긴 했지만 그런 대로 또 보름가량 배를 묶어놓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고나서야 병원에 갔다가 아이가 이미 오래전에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은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유명하신 작가한테는 소설 같은 이야기로밖에 안 들리겠지? 아무리 슬픈 소설을 읽어봐도 내가 살아온 만큼 기막힌 이야기는 없더라. 안 그러면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못 알아먹을 소설뿐이고. 너도 읽으면 잠만 오는 소설을 쓰는 작가야? 하긴 네 소설은 아직 못 읽어봤지만 말야. 인제 읽어야지. 근데, 너 돈 좀 벌었니?”
  은자가 내 소설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바로 어젯밤에도 나는 ‘읽으면 잠만 오는’ 소설을 쓰느라 밤새 진을 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놓고도 대단한 일을 한 사람처럼 이 아침 나는 잠잘 궁리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은자 또한 이제부터 몇 시간 더 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귀가시간은 언제나 새벽이 다 되어서라고 했다. 그애나 나나 밤일을 한다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나는 씁쓰레하게 웃어버렸다.

 

 

● 출전 :『원미동 사람들』, 살림 2004

 

 

● 작가 : 양귀자- 1955년 전주에서 태어나 1978년『문학사상』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원미동 사람들』『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모순』『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등이 있으며, 유주현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21세기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독:
박지아- 연극배우. 영화 <숨>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연극 <이발사 박봉구> <날보러와요>등에 출연.

문형주- 연극배우. 영화 <홀리데이>, 연극 <파우스트> <햄릿1999> <모든 것을 가진 여자> <서른 두살 원혜> 등에 출연. 

 

‘유명하신 작가’ 정도가 아니라 ‘국민작가’, ‘세계적 작가’라고 한들 밤무대 가수로 신산한 삶을 살아온 사람만한 진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오히려 작가를 밤무대 가수인 친구가 돈은 좀 벌었는가 걱정해 주고 있군요. 그것도 읽으면 잠만 오는 ‘대단한’ 소설을 써서 어디 먹고 살 만 할까 싶은지. 고생을 많이 해본 사람의 관점은 현실적이기도 하네요.
어떤 분야든 산봉우리는 있는 법이겠지요. 한 산봉우리에 올라서면 다른 산봉우리에 올라선 사람들이 보인다고들 합니다. 그 사람들이 친구처럼 여겨진다나요? 제가 일반 산에 올라간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정상에서는 산봉우리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이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포기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더군요.
참, 산에 올라갈 때는 밤에 올라가면 덜 힘든 것처럼 느껴지긴 하더군요.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럴까요? 성능 좋은 헤드랜턴을 비추고 가도 그렇던데…

 

문학집배원 성석제. 2007. 8. 23.

추천 콘텐츠

정우영,「그 가녀린 것들의 외로운 떨림」중에서

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 2013-01-17
모옌,「인생은 고달파」중에서

 모옌,「인생은 고달파」중에서       아버지 눈에 눈물이 비쳤다.“우리가 가진 땅이 3무 2푼이니 너한테 1무 6푼을 주마. 가지고 가서 입사해라. 저 파종기는 토지개혁 때 우리집에 ‘승리의 선물’로 나누어준 것이니, 같이 지고 가거라. 저 방도 네가 가져라. 가져갈 만한 것은 다 가져가라. 입사하고, 네 어머니하고 합치고 싶으면 합치고, 합치고 싶지 않으면 너 혼자 살아라. 아비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이 소하고 저 외양간만 있으면 된다……”“아버지, 왜요,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나는 우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혼자 개인농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 의미 없다.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 그런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싶어 그런다. 다른 사람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단 말이다.”(……)“어쩌면 자네들이 전부 옳고 나만 틀린 건지도 몰라. 하지만 난 맹세했어. 이것이 틀린 것이라도 끝까지 틀리자고.”“얘아버지, 보봉마저 시집가고 나면 내가 인민공사에서 퇴사하여 당신 동무가 되어드릴게요”“아냐, 개인농을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해, 나 혼자 말이야. 누구도 필요없어. 나는 공산당을 반대하지도 않고 모주석은 더더욱 반대하지 않아. 인민공사도 반대하지 않고, 집단화도 반대하지 않아. 그저 나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야. 세상 새와 까마귀 들이 다 까맣다고 해도 어찌 하얀 것이 하나도 없겠어? 내가 바로 그 하얀 새와 까마귀야!”(……)모든 사람들이 태양을 찬송하는 그 시절에, 한사람이 달과 이렇게 깊은 정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모주석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울지 않는 또 한사람은 바로 남검이었다. 서문저택 앞마당을 둘러싸고 모두 비통한 울부짖음을 토해낼 때에도 그는 서쪽 행랑채 문틀에 앉아 청색 숫돌에 녹이 시퍼렇게 슨 낫을 갈고 있었다. ‘슥삭슥삭’ 하는 숫돌 소리가 크게 사람들 귀에 거슬리면서 오싹한 마음조차 들게 했다. 이는 상황과 맞아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많은 것을 암시해주고 있었다. 더이상 분노를 참지 못한 금룡이 라디오를 아내인 황호조 품에 넘기고는 온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남검에게 달려가 숫돌을 빼앗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숫돌이 두 동강이 나자 금룡이 꽉 다문 이 사이로 외쳤다.“이러고도 당신이 사람입니까!”남검이 가늘게 뜬 실눈으로 분노로 몸을 바들바들 떠는 금룡을 훑어보며 낫을 들고 천천히 일어나면서 말했다.“주석님이 돌아가셨어도 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저기 저 벼들도 다 베야 하고.”(……)   “이봐, 남검, 말을 어찌 그리하나?”남검의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쏟아져 흘렀다. 그가 두 다리를 굽힌 채 땅에 무릎 꿇고 앉아 비통하게 울부짖었다.“이 세상에서 모주석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네들이 아니라 바로 저예요!”사람들은 잠시 할말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남검이 손으로 땅바닥을 치며 통곡했다.“모주

  • 웹관리자
  • 2013-01-10
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說囊)라고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 간절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그치니 사람들은 뒷얘기가 너무 궁금하여 다투어 돈을 그의 발아래 내던졌다. 이신통은 당시에 한양 패거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단출한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던 박돌이 막걸리 잔이나 사면서 동무가 되었다. 신통은 다시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이를테면 장터 어구의 버드나무 아래라든가 다리 앞에라든가에서 다른 이야기로 판을 벌였다. 새 손님이 많았지만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지나가다 다시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박돌이 자기네 패와 동행하기를 권하여 함께 다니다가 이신통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다시 도방 대처에서 만나기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신통이가 광대물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주에서 엄마의 색주가에 들렀을 때에 이신통은 광대물주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글쎄 그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독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지도라구 들어봤나? 신통이가 그 패거리에 들게 되었거든.  저 머신가, 나라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는 미신인데 그것이……  그러면 예전 천주학 같은 거 말예요?  이전에는 모두 죽였다만 시방 천주학은 양귀들 때문에 묵인된 셈이고, 천지도는 처음 시작했다는 교주를 국법으로 처단을 했다 그 말여.    박돌이 이신통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나는 뜸을 들였다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던 때에 슬며시 묻게 되었다.   엄마, 천지도가 뭔지 알우?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뜬금없이 천지도는 왜...... 한번 믿어볼라구?   관에서 금한다며?   양반 것들이 저희 자리 내노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게지. 천지도에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다 그런다는구나. 그 말본새 하난 마음에 들더만. 나두 주문 외우는 소린 여러 번 들었다. 우리 집에 묵어가는 길손들 중에 겉으로 말은 안 해두 내가 대강 눈치를 채는데 하나둘이 아녀. 천지도인들 점잖은 사람들이더라. 소문에 듣자 허니 촌에는 동네마다 모여서 기도하구 그런다대.   하면 엄마는 왜 안 믿었어?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nb

  • 웹관리자
  • 2013-01-03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1건

  • 익명

    안녕하세요^^ 좋은 자료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플래시 메일 보내기가 왜 되지 않나요? 방법 좀 꼭 알려 주세요~ 여러 번 해 보았는데도 안되네요..

    • 2007-09-30 20:11:39
    익명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