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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늑대가 나타났다」

  • 작성일 2007-11-29
  • 조회수 3,948



이혜경「늑대가 나타났다」

  네가 이 먼데까지 웬일이냐. 그것도 혼자.
  눈물이 글썽 맺혔지만, 그가 ‘이 먼데까지’라고 한 것을 놓칠 정도로 설운 것은 아니었다. ‘이 먼데’까지 늑대에게 잡혀가지 않고 와봤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을에 있을 땐 다른 데를 그리워하게 만들던 어스름이 짙어졌다. 마을 밖의 어스름은 매몰차게 떠나온 마을과 집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는 더 묻지 않고 나를 담쏙 안아올려서 자전거 짐받이에 앉히고 내 가방을 자전거 앞의 손잡이에 걸었다.
  아저씨가 집에 데려다주마. 아저씨 등 꼭 붙들어야 한다.
  우물에 빠졌다가 동아줄을 잡은 심정이었지만, 그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
  아저씨 못 만났으면 어쩔 뻔했냐. 아이 혼자 돌아다니다간 큰일난다.
  그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말했다. 늑대와 친척인 그가 늑대 이야기를 하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마을 어른들이 그를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스름녘, 들판을 혼자 걸어가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은 마을 안에서 늑대 취급을 받던 그뿐이었다.  먹빛으로 더 짙어진 가로수들이 이제 무섭지 않았다. 나는 슬그머니 그의 허리춤을 잡으며 그의 등에 몸을 기댔다. 그의 몸에선지 아니면 저녁공기에선지, 비 맞은 개에게서 나는 축축한 냄새가 맡아졌다.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게 늑대냄새인지도 몰랐다. 어느새 나도 어린 늑대가 된 것일까. 그 냄새를 맡자 눈꺼풀이 자꾸만 감겨왔다. 자울자울 졸았다. 걸을 땐 그토록 먼 길이었는데, 자전거로 오니 금세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어슬렁거리던 동물이 자전거를 보고 컹, 짖었다. 늑대인지 개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
  자전거가 공터 어귀로 들어설 때, 우어허엉, 멋쟁이의 울부짖음이 어둑한 허공을 울리며 나를 맞았다. 으허엉, 내 몸에서 알지 못할 소리가 울려나오는 듯했다. 아무래도 어둠이 나를 늑대로 바꿔치기한 것만 같아서, 내가 나 아닌 아기늑대인 것 같아서, 나는 눈을 홉떴다.

 

 

 

● 출전 :『틈새』, 창비 2006

 

● 작가 : 이혜경- 196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1982년『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을 발표하며 등단. 소설『그 집 앞』『꽃그늘 아래』『틈새』『길 위의 집』등이 있음.
 
● 낭독 :

최정우 - 배우. 연극 <필로우맨> <대대손손>, 영화 <친절한 금자씨> 등에 출연.
박미현 - 배우. 연극 <매혹> <키스>, 영화 <은하해방전선> 등에 출연.

 

저는 어릴 때, 한밤중에 늑대가 뒤란 위에 있는 숲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기울음 소리처럼 들렸는데 그 울음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아기를 찾으러 가면 기다리고 있던 늑대가 어머니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누가 이 엄청난 이야기를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설마 아기들이? 아기들도 어머니가 늑대에 잡아먹히면 살아가기가 어려워지지요.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누나? 형? 고모? 아무도 아닌 것 같은데요. 어머니가 늑대에게 잡아 먹혀서 이익을 볼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사실처럼 전해져서 한밤중에 혼자 밖으로 나가는 행동을 원천봉쇄했습니다.
이 작품 속의 ‘나’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했군요. 늑대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늑대 같은’ 아저씨에게 말이지요. 그리고 스스로가 아기늑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네요. 그렇습니다. 늑대들이 어슬렁거리며 활보하는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늑대가 되는 겁니다. 착한 늑대도 있다는데 착한 아이들이 눈 딱 감고 늑대가 된 거겠지요?

 

2007. 11. 29.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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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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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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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說囊)라고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 간절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그치니 사람들은 뒷얘기가 너무 궁금하여 다투어 돈을 그의 발아래 내던졌다. 이신통은 당시에 한양 패거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단출한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던 박돌이 막걸리 잔이나 사면서 동무가 되었다. 신통은 다시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이를테면 장터 어구의 버드나무 아래라든가 다리 앞에라든가에서 다른 이야기로 판을 벌였다. 새 손님이 많았지만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지나가다 다시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박돌이 자기네 패와 동행하기를 권하여 함께 다니다가 이신통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다시 도방 대처에서 만나기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신통이가 광대물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주에서 엄마의 색주가에 들렀을 때에 이신통은 광대물주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글쎄 그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독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지도라구 들어봤나? 신통이가 그 패거리에 들게 되었거든.  저 머신가, 나라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는 미신인데 그것이……  그러면 예전 천주학 같은 거 말예요?  이전에는 모두 죽였다만 시방 천주학은 양귀들 때문에 묵인된 셈이고, 천지도는 처음 시작했다는 교주를 국법으로 처단을 했다 그 말여.    박돌이 이신통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나는 뜸을 들였다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던 때에 슬며시 묻게 되었다.   엄마, 천지도가 뭔지 알우?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뜬금없이 천지도는 왜...... 한번 믿어볼라구?   관에서 금한다며?   양반 것들이 저희 자리 내노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게지. 천지도에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다 그런다는구나. 그 말본새 하난 마음에 들더만. 나두 주문 외우는 소린 여러 번 들었다. 우리 집에 묵어가는 길손들 중에 겉으로 말은 안 해두 내가 대강 눈치를 채는데 하나둘이 아녀. 천지도인들 점잖은 사람들이더라. 소문에 듣자 허니 촌에는 동네마다 모여서 기도하구 그런다대.   하면 엄마는 왜 안 믿었어?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nb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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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양치기 소년이 생각난다. 장난기가 많은 양치기소년은 거짓말을 자주했다. 막상 늑대가 나타났을때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 남자들보고 여자들은 늑대들이라 한다. 왜 그랬을까 이해가 안된다. 요즘 남자들은 모두들 꽃미남 뿐인데 옛날에는 남자들이 다들 못 생겼었나 아니 늑대가 그렇게 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조금은 교활하게는 생겼지. 남자들이 능청스러워서일까 늑대가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니잖아 먹이를 찾으려고......,

    • 2007-11-30 18:35:0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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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이글 왜 올렸는지요? 나눠먹기인가요

    • 2007-11-28 16:37:1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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