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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국가의 사생활」

  • 작성일 2009-06-25
  • 조회수 3,554




「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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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존재가 강하고 아름다워진다는 이야기였다. 작은 알이 거대한 물고기가 됐다가 또 거대한 새가 되는 변화. 거대한 새란 자기를 초월해 위대한 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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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굉장한 변화가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야. 거대한 새는 해일과 폭풍을 타고 날아오르는 법이거든. 그리고 거대한 물고기와 거대한 새는 겉으로는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그것들도 본래는 하나의 알이었다는 거지.---알쏭달쏭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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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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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강은 할아버지가 그날 대동강변에서 어떠한 심경이었는지 비로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지금 리강이 그런 것처럼 답답하고 슬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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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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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장면들로 가득한 소설을 만들면서 나는 질문했다. 무엇이 죄인가? 살인? 누가 악인인가? 살인자? 혼돈 속에서도 제 정체성을 회의해 보지 않는 것이 죄이고 그러한 그가 악인이다. 혼돈 속에 살면서도 그 혼돈 자체를 부인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는 죄. 혼돈을 치장해 장사하며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척하는 죄. 그러다가 스스로 더 무지막지한 혼돈이 되는 죄. 나는 누구인가를 왜곡하는 이런 식의 저 모든 뻔뻔함들이 처세를 신념으로 위조하고 위선을 격조로 착각하게 한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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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은 그래서 때로 필요하다.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변화해 치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가 슬프면 마음이 열리고 몸이 아프면 시가 잘 써진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령 그 비슷한 것들이 아닐까? 나는 아무리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인해 고통의 비등점에 서 있지 않다면, 그를 좋아할 수는 있어도 결코 그를 존경할 수가 없다. 죄인인 내가 왜 아무나 존경해야 하는가? 상처와 후회를 거절하는 영혼에게서 뭘 배우겠는가?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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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가의 사생활』, 민음사 2009(212~260쪽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 :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 『문학과 비평』시를, 1994년 『상상』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함. 시집『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소설집『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전갈자리에서 생긴 일』『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등이 있음.

낭독 : 김남진 - 배우. 『오구』『대대손손』『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등에 출연.

박민규 - 배우. 『청춘예찬』『삼총사』『백무동에서』 등에 출연.

최광일 - 배우. 『오필리어』『프루프』『빨간 도깨비』 등에 출연.

● 음악 : 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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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작가의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것을 쓴 작가의 실험적 자아라고 하니까요. 둘 다 죄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면서, 변화를 열망하고 있군요. 그런데 그 변화는 고통의 비등점을 통과해야만 이룰 수 있다고 하네요. 이런 대목도 나옵니다.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요?" "우리? 어떤 우리?" "누구든." "인간에게 기대를 걸지 마라. 다친다." 이응준의 '노래가 슬프'고 '몸이 아팠'던 덕에 만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이 소설에 따르면, 순수한 사람이란 타인이 자신처럼 행동해야 옳다며 화내는 부류라고 합니다. '죄인인 내가 왜 아무나 존경해야 하는가?' 흠---아프네요.

 

2009. 6. 25. 문학집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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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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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0
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說囊)라고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 간절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그치니 사람들은 뒷얘기가 너무 궁금하여 다투어 돈을 그의 발아래 내던졌다. 이신통은 당시에 한양 패거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단출한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던 박돌이 막걸리 잔이나 사면서 동무가 되었다. 신통은 다시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이를테면 장터 어구의 버드나무 아래라든가 다리 앞에라든가에서 다른 이야기로 판을 벌였다. 새 손님이 많았지만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지나가다 다시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박돌이 자기네 패와 동행하기를 권하여 함께 다니다가 이신통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다시 도방 대처에서 만나기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신통이가 광대물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주에서 엄마의 색주가에 들렀을 때에 이신통은 광대물주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글쎄 그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독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지도라구 들어봤나? 신통이가 그 패거리에 들게 되었거든.  저 머신가, 나라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는 미신인데 그것이……  그러면 예전 천주학 같은 거 말예요?  이전에는 모두 죽였다만 시방 천주학은 양귀들 때문에 묵인된 셈이고, 천지도는 처음 시작했다는 교주를 국법으로 처단을 했다 그 말여.    박돌이 이신통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나는 뜸을 들였다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던 때에 슬며시 묻게 되었다.   엄마, 천지도가 뭔지 알우?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뜬금없이 천지도는 왜...... 한번 믿어볼라구?   관에서 금한다며?   양반 것들이 저희 자리 내노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게지. 천지도에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다 그런다는구나. 그 말본새 하난 마음에 들더만. 나두 주문 외우는 소린 여러 번 들었다. 우리 집에 묵어가는 길손들 중에 겉으로 말은 안 해두 내가 대강 눈치를 채는데 하나둘이 아녀. 천지도인들 점잖은 사람들이더라. 소문에 듣자 허니 촌에는 동네마다 모여서 기도하구 그런다대.   하면 엄마는 왜 안 믿었어?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nb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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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 익명

    누군가 좋아하는 말이 생각나네요상처가 없는 독수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독수리 뿐이라는 -

    • 2009-08-30 13:48:2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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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계속 되풀이되는 사회의 악계속 되풀이되는 인간의 이기심또는 혼란무엇이 정답인지도 모르면서 이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은????무지 쉬운듯하면서도 어려워 고개가 절로 내저어지네요.

    • 2009-08-26 13:02:3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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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이 책에 관심이 가서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강렬한 끌림이 있었거든요. 리강은 답답하고 슬프다는데 무슨 이유일까요?빨리 책부터 받아봐야겠어요.

    • 2009-08-19 13:10:2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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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답답하고 슬펐던 것이다에서 끝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위선을 격조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작가가 주인공과 이야기를 한다. 신기한다

    • 2009-07-16 11:55:5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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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슬픈노래속에서 마음이 열린다~ 참 공감이 갑니다. ... 그만큼의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주는듯한 상황에서 아무래도 편안해지며 마음을 열듯하니까요. '죄~ 죄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 2009-07-12 20:57:5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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