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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노동의 목격」(200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 작성일 2009-11-05
  • 조회수 4,667




편혜영, 「노동의 목격」

">- 200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아버지가 노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공사 중인 동물원에서였다. 넷이나 되는 아버지의 자식들 중 하나는 일찌감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하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하나는 막 중학생이 되었으며 막내인 나는 초등학교 오학년이었다. 그러니 나를 제외하고는 다 큰 것이나 다름없는 자식들이. 어쩌면 나 역시 다 큰 것이나 다름없는 자식이었는데, 새삼스럽게 동물원이나 유원지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을 리 없었다. 만약 졸랐다면 나이로 보나 서열로 보나 내가 그랬어야 마땅하지만, 나는 무뚝뚝한 아버지에게도 낯을 가리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동물원이라면 아이들이나 가는 곳이고 가족끼리 몰려다니는 것은 명절이면 족하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버지가 일하는 동물원에 갔다.

공사 중인 동물원은 시멘트 바닥과 좁은 철창, 풀 한 포기 없는 돌계단과 회색 돌담뿐이었다. 개장일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우리는 금세 실망했다. 아버지는 공사가 끝난 후에 다시 오자고, 하지 않아도 기꺼이 이해했을 약속까지 했다.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동물원을 구경하고 있으라고 일러주고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한참 기다린 후에도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아 우리는 직접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비슷한 차림이어서 잘 구분이 안 되는 인부들을 지나 한참만에야 아버지를 찾았다.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는 사람들과 큰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그러다 말고 누군가를 부르기도 했고, 그러다가 성질 급하게 쿵쾅거리며 합판으로 된 계단을 밟고 위층으로 올라가 직접 뭔가를 했다. 아버지가 저 위태로운 나무 계단을 매일 올라가는지 간혹 올라가는지, 올라가서 하는 일은 매번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었음에도 우리는 단박에 아버지가 하는 일이 고단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아버지 모르게 뒤돌아 나오는데 땀 냄새를 품은 바람이 불었다. 바람 때문인지 땀 냄새 때문인지 자식들의 긍지가 되고 싶어 한 아버지를, 그러면서도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아버지를, 갈수록 세상에 무뚝뚝해지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라면서 나는 그 순간을 대부분 잊고 지냈다. 그러나 모두 잠든 깊은 밤, 우두커니 앉아 잘 떠오르지 않는 문장을 궁리하다 보면 문득 텅 빈 동물원에 앉아 있는 짐승이나 바람이 가져온 땀 냄새, 위태하던 나무계단 같은 게 생각난다. 그러면 풀죽고 병든 것처럼 보이는 짐승들과 벽돌, 시멘트 같은 무기물질과 함께 오랫동안 계속된 아버지의 노동이 떠올라 힘을 얻는다.

아버지의 노동은 전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데 할애되었다. 나는 부모의 성실하고 묵묵한 노동을 소비하며 자랐고 작아졌으며 다퉜고 화해했으며 침묵했고 쓰기 시작했다. 자식이 쓴 글을 읽지는 않으셔도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은 내게 성실하고 묵묵한 노동의 방식과 습성을 물려주셨다. 그것이 작가로서 내가 가진 거의 전부이다.

올해로 소설을 쓴 지 꼭 십 년이 되었다. 처음 소설을 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데에 그럴 법한 이유가 별로 없다. 신중하고 소신 있는 척했던 적도 있지만 사실은 여전히 모색 중인지라 매번 말을 주저하게 된다. 오히려 소설에 대해 말로 확신을 내세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스스로 궁리해낸 가치와 의미에 매혹되지 않고, 그저 즐겁기 때문에 계속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기꺼이 그럴 것이라는 게 작가로서 나의 유일한 자부이다.

일상 속 개인은 이미 서정을 잃은 세계에 압도당해 무능해졌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소설 속 인물과 함께 세계의 뒤쪽 어딘가로, 숨겨진 검은 구멍 쪽으로, 깊고도 어두워 아름다운 밤길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wooriSaebomRC1">● 작가 : 편혜영 -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등이 있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함.

="wooriSaebomRC1">낭독 : 김성미 - 배우. ‘하녀들’ ‘관객모독’ 등 출연.

="wooriSaebomRC1">출전 : 200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wooriSaebomRC1">음악 : 자닌토

="wooriSaebomRC1">애니메이션 : 신문희

">프로듀서 : 김태형

『소설의 기술』이란 책에서 밀란 쿤데라의 예루살렘 연설을 읽고 수상 소감이란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됐어요. "연설에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와 작가관을 포함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에, 수상 작가의 연설을 듣는 것은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한번에 읽는 것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집인 『아버지의 여행가방』의 ‘이 책을 펴내며’에 있는 글입니다. 어쨌거나, 그건 노벨상이고요. 저는 편혜영의 이 수상소감이 참 좋습니다. 엄숙하거나 심오하지 않고도 작품세계와 작가관을 충분히 말하고 있지 않나요. 이 글은 수상 작품집에도 실리지 않았고, 아버지가 불편해 하실까봐 시상식장에서도 읽히지 않았습니다. 아까운 문장이라서 제가 팸플릿에서 베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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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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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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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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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건

  • 익명

    아버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특히, 아버지께 물려받은 성실함이 내가 작가로서 가진 모든것이라는 말이 참 감동적입니다. 아버지의 땀냄새를 기억하는 글... 후미진 곳에서의 더러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가의 우너동력은 바로 그 땀의 힘이었군요.

    • 2010-07-02 09:21:5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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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후에도 노동하는 부모님을 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지나온 내 게으름이, 잘못했던 일들이 다 떠오를 것 같아 일부러 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봐야한다는 걸, 그 또한 내 모습이라는 걸 새삼 실감합니다.

    • 2009-11-16 19:32:3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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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정말 감동적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 깊은 밤,아버지의 땀 냄새를 품은 바람을 다시 생각하며 힘을 낸다니... 그녀의 글이 정말 읽고 싶어지는데요.

    • 2009-11-12 08:31:4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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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빠가 보고 싶어요.. 아빠에게 당장 전화 해야겠어요...

    • 2009-11-10 21:50:5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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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버지의 침묵과 고단함 속에서 발견한 자그마한 긍지... 그것이 당신자신의 것이 아닌 결국 자식들의 긍지가 되고 싶어한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속 일상을 고스란이 기억한 작가의 따스한 눈길에 찬사를 보냅니다. 동시에 잃지않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편혜영씨는 아름답습니다

    • 2009-11-06 07:34:0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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