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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중에서

  • 작성일 2010-11-11
  • 조회수 2,914





토마스 만,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중에서








그들이 자리잡고 앉은 벤치는 가로수로에서 옆으로 여섯 걸음 거리에, 정원에 등을 기대고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덩치 큰 나무들 사이에서보다 더 따뜻했다. 귀뚜라미들이 풀숲에서 울어댔다. 이 풀숲은 바로 물가에서부터는 가는 갈대들의 숲으로 변하고 있었다. 달이 훤히 비치는 강물은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둘 다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고는 물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그는 아주 소스라쳐 놀라며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니, 그것은 그가 일주일 전에 들었던 저 목소리, 아련하고 생각에 잠긴 듯하며 부드러운 저 목소리가 다시금 그를 휩싸 안았던 것이다.
“프리데만 씨, 당신은 언제부터 불구의 몸이 되셨어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러신가요?”
그는 군침을 아래로 삼켰다. 왜냐하면 그는 목이 죄이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단정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부인. 어릴 적에 보모가 저를 마룻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지요.”
“그럼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하고 그녀가 계속해서 물었다.
“서른 살입니다, 부인”
“서른 살이라” 하고 그녀가 되풀이했다. “그래서 지난 삼십 년 동안 당신은 행복하지 못했지요?”
프리데만 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떨렸다. “그래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건 허위요, 망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행복하다고 믿어오신 거군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저는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참 장하세요”
일 분이 흘러갔다. 단지 귀뚜라미들만이 울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서는 나무들이 아주 낮은 소리로 살랑거렸다.
“난 불행이라면 약간 알고 있어요” 하고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거기에는 물가에서 보내는 이런 여름밤들이 제일 좋은 약이지요”





작가_ 토마스 만 - 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남. 1898년 첫 책으로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출간하였고 1901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 지은 책으로 『마의 산』『트리스탄』『대공 전하』『베네치아에서의 죽음』『요셉과 그의 형제들』『바이마르의 로테』『파우스트 박사』 등이 있음. 노벨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독_ 노계현 - 성우. 외화 <구름 속의 산책> <보통사람들> 등에 출연.
장희재 - 배우. <아홉 개의 모래시계> <누가 대한민국 이십대를 구원할 것인가> 등에 출연.
출전_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베니스에서의 죽음』(민음사)
음악_ 백종근
애니메이션_ 홍예실
프로듀서_ 김태형

모든 약에는 독성이 있다지요. 사고로 불구가 된 프리데만 씨. 남과 다른 신체 조건도 그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할 순 없었죠. 그는 인생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교양을 쌓는 사람이었어요. 십대일 때 한 소녀에게 연심을 품었다가 상처 받은 뒤, 다시는 여자를 사랑하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믿었지요. 그런데 한 부인이 나타났어요.
불구의 몸으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그래서 지난 삼십년 동안 당신은 행복하지 못했지요?”라고 묻는 여인. 그 나름대로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싹 삭제하고 ‘불구’에 확대경을 들이댄 그 물음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라는 마음일까요. 어쩌면 이해의 탈을 쓴 잔혹함일지도 모르겠네요. ‘물가에서 보내는 이런 여름밤’이 비극으로 저물었으니까요.  


문학집배원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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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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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신체의 장애가 마음의 장애는 아니다.진실과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마음의 장애가 가장 큰 장애이다.

    • 2010-11-13 15:31:4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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