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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백의 그림자」 중에서

  • 작성일 2011-03-17
  • 조회수 3,048




 
황정은, 「백의 그림자」 중에서
 
 
 
 
……그러면 오무사 이야기를.
오무사?
무재 씨는 오무사를 모르나요?
네.
오무사라고, 할아버지가 전구를 파는 가게인데요, 전구라고 해서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 원가량 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구들이거든요. 오무사에서 이런 전구를 사고 보면 반드시 한 개가 더 들어 있어요. 이십 개를 사면 이십일 개, 사십 개를 사면 사십일 개, 오십 개를 사면 오십일 개, 백 개를 사면 백 한 개, 하며 매번 살 때마다 한 개가 더 들어 있는 거예요.
잘못 세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하나, 뿐이지만 반드시 하나 더, 가 반복되다 보니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날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빤히 보시더라고요. 뭔가 잘못 물었나 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 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무재 씨, 원 플러스 원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무재 씨도 그런 것을 사 본 적 있나요.
가끔은.
하나를 사면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준다는 그것을 사고 보면 이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배려라거나 고려라는 생각은 어째선지 들지 않고요.
그러고 보니.
오무사의 경우엔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작가_ 황정은 -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가 있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함.
 
낭독_ 채세라 - 배우. 연극 <우리 읍내>, 드라마 <궁> 등에 출연.
이준식 - 배우. 연극 <햄릿기계>, <안개여관> 등에 출연.
출전_ 『백의 그림자』(민음사)
음악_ 심태한
애니메이션_ 송승리
프로듀서_ 김태형
 
 

 
스무 살 무렵, 제가 난생처음 쓴 소설은 세운상가를 무대로 했지요. 그곳의 무엇이 그리 사무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바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에 밀물이 밀려들었다가 썰물 지며 막막한 뻘이 드러났다가, 그랬어요. 순정한 마음들이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폭력적이라 한숨이 나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보도블럭 틈새에서 피어나는 들꽃처럼 멈칫거리며 나누는 마음들이 귀해서 잠깐 환해지기도 하고요.
있는 줄도 모르게 붙어 있던 그림자가 어느 날 벌떡 일어서거나 발목에 걸리는 일은 왜 생겨나는 걸까요. 얼마나 많은 걸 오래도록 참으면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걸까요. 그림자가 떨어져나가는 일 따위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이 득세한 세상, 어떻게 해야 그림자를 지킬 수 있을지.
 
문학집배원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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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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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18정영석

    황정은 작가는 우리 인간들의 내면, 가치를 그림자로 표현한 것 같다. 그림자는 비현실적이거나 판타지 느낌이 드는데 작가는 너무 과하지않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 같다. 그림자는 내면, 마음 속에 어두운 이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시에서 작가는 "그림자가 일어섰다" 라고 표현 했는데 희미하거나 가늘거나 움직임이 별로 없는 그림자들이 유일하게 움직일 때가 바로 죽음 직전, 일어 서는 것 이다. 그림자는 주체적일때 무섭고 그냥 따라올때는 무섭지않다는 것이 내 그림자는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 2018-05-28 15:59:30
    11018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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