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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의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중에서

  • 작성일 2012-05-17
  • 조회수 1,562




 
 김지우의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중에서
 
 
 
 
  광주항쟁이 있던 그해 가을, J시에서 전국체전이 열렸다. 여고 2학년이던 우리는 개막식 식전행사에 동원되었다. 3학년 수험생들을 제외한 J시내 여고 1, 2학년 전원이 합동으로 동원되어 식전행사로 관중들 앞에서 현대 매스게임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중략)
 
  여름이 가고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비는 오지 않고 개막식 식전행사는 ‘성황리’에 끝났다. 그리고 우리가 반나체 수영복 차림으로 펼쳐 보였던 현대 매스게임은 화제에 올랐다. 열일곱, 열여덟, 싱그럽고 풋풋한 여체들이 떼로 모여 가슴과 배와 아래만 살포시 가리고 팔다리를 쩍쩍 들어 올리고 활짝 젖히고 벌려가며 춤을 추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을 것이다.
 
  (중략)
 
  그런데 체전이 끝나고 얼마가 지나서였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하사품’이라고 씌어진 만년필 하나씩이 학생들에게 배당되었다.
 
  (중략)
 
  그런 다음날 느닷없이 교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학생주임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중략)
 
  “이번에 전두환 대통령께서 영광스럽게도 하사품을 내려주셨는데 말이다, 너 말이다, 대통령 각하께 J시 여학생 대표로 감사의 편지를 좀 써야겠다.”
 
  (중략)
 
  “쓰기 싫습니다.”
 
  (중략)
 
  “저는 전두환 씨에게 감사할 일이 없습니다.”
  “뭐야, 이 새끼?”
  학생주임의 넓적한 손이 순간으로 내 뺨을 훑고 지나갔다. 내 단발머리가 찰랑 젖혀졌다 돌아왔다. 일순간 교무실이 얼어붙었다.
 
  (중략)
 
  “뭐? 전두환 씨?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봤나? 야, 전두환이 니 친구냐? 엉? 이 새끼 빨갱이 아냐?”
  다시 한 번 뺨이 돌아갔다. 철썩, 뺨 치는 소리가 교무실에 울릴 지경이었다. 선생들은 어깨마저 숙여버렸다.
  “이 새끼 교복을 벗겨버리겠어.”
 
 
  작가_ 김지우 - 1963년 전주에서 태어나 2000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2007년 봄 43세의 나이로 세상 떠남. 소설집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를 남김.
 
  낭송_ 성경선 - 배우.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박웅선 - 배우. 연극 〈오셀로〉, 영화 〈한반도〉 등에 출연.
  출전_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창비)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작가의 짧은 약력을 정리하며 책에는 없는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이라고 덧붙입니다. 작가들은 무수히 자신의 약력을 손수 씁니다. 다만 하나 제 손으로 못한 생몰의 괄호를 닫아주며 눈꺼풀에서 손을 뗀 듯 황망합니다. 작가가 단 한 권의 소설집에 남긴 삶의 궤적은 풍부합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은 피 젖은 길에 흙을 뿌리듯 ‘새시대 새의지 새체전’을 모토로 전주에서 전국체전을 엽니다. 그녀가 동원된 개막식 매스게임 ‘금만경의 황금물결’의 자료화면을 찾아 뒤늦게 봅니다. 아, 열여덟 그녀가 저 군무 속 어딘가에 있습니다! 뒷날 학생주임은 교장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에두르지 않고 정면입니다. 손홍규의 소설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정조준만 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목표물을 맞히기 위해서는 침착하게 오조준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정면을 응시하다가 스러지고 만, 한 푸르른 누이와 그의 세대를 기립니다.
 
문학집배원 전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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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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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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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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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18 16:59:0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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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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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18 10:55:1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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