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사보 노트
- 작성일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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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비밀 사보 노트
신종원
선생님. 아시다시피 저는 우리 대학에서 20년째 실내악 수업을 맡고 있습니다. 매 학기 첫 수업은 출석 확인 전부터 이미 어수선합니다. 앙상블 동료를 구하려고 우왕좌왕하는 것이죠. 가장 처음 만들어지는 그룹은 물론 더블 바이올린입니다. 고전적인 조합이죠. 지난 학기에 좋은 점수를 받았던 이들은 바흐에 도전해 볼 만합니다. 반면, 만용에서 교훈을 얻은 이들은 사라사테로 눈길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언제나 피아노가 인기를 독점합니다. 피아노 듀오, 피아노·바이올린·첼로 트리오……. 여기에 콘트라베이스나 플루트를 끼워 콰르텟 혹은 퀸텟을 노려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따금 그룹을 구하지 못한 기악 파트들이 피아노 한두 명에 몰려 다소 조잡한 형태의 8중주가 구성되기도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이런저런 편성 실험을 해보도록 그냥 둡니다. 각 그룹의 팀장이 대표로 나와 자기 조원들의 명단이 적힌 종이를 건네주면 말없이 받아 두는 것이죠. 이 악기는 저 악기와 조를 꾸리는 편이 좋다. 이 구성은 합주에 애먹기 쉽다. 그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직된 앙상블 그룹이 한 학기를 갑니다. 수업 시간이 돌아오면 한 팀씩 공개 연주를 합니다. 역할에 따른 악기의 볼륨을 조절해 주거나 합주 템포 잡아 주기. 그런 것들이 저의 일입니다. 종종 곡의 이해를 돕는 작업이 더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말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 어느덧 학기 말에 이르렀고 대망의 실기 시험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두컴컴했던 콘서트홀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마지막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좌석들이 금세 관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소음이 저절로 잦아들면 첫 번째 앙상블 그룹이 입장할 겁니다. 남은 건 연주와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뿐입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우리는 마침내 한 가지 물음 앞에 다다르게 되겠습니다. 어떤 그룹이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까? 고전적인 더블 바이올린? 화려한 피아노 듀오? 안정적인 피아노 트리오? 두루 사랑받는 현악 4중주일까요? 규모와 화성학적 완성도만으로 따지자면 옥텟이 유리하겠습니다만, 정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좋은 음악가가 속한 그룹. 그들이 언제나 가장 많은 커튼콜을 받습니다.
친애하는 박정효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제가 아는 최고의 음악가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음악가만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악보에 적혀 있지 않은 기호들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들. 이들은 음악의 실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며, 오직 파가니니,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부조니 이후 굴드와 오이스트라흐 같은 소수의 천재들만이 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편, 악보가 새까맣게 변할 때까지 수기 해석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악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악보는 남들이 볼 수 없는 비밀문서처럼 취급됩니다. 사실 그 해석이란 상당히 사소한 흔적으로, 손가락 번호나 올림활, 내림활 표시와 같이 대부분 그들의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적 지시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런 음악가들을 아주 많이 지켜봐 왔습니다. 물론 이번 학기에도 그런 음악가들을 가르치고 있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딱 한 사람. 2학년 반주 수업이었을 겁니다. 실기 시험 지정곡 다섯 곡의 악보를 같은 클래스 친구들과 돌려 봤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분석하고 연구한 테크닉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셈이나 다름없게 되었는데, 그건 그 악보의 지면이 연필 자국으로 빈틈없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 층이나 덧칠되었는지 차마 헤아려 볼 수 없을 만큼 까무스름한 그 종이 모둠이 눈앞에서 반들거리던 장면을 아직 기억합니다. 어느 부분을 잡아 들추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잠시 난처했던 것도요. 이어서 악보의 한 귀퉁이를 집어 들었을 때, 흑연 가루와 부서진 탄소 결정이 집게손가락 끝에서 바스락거리며 떨어져 내렸는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실제로 그 악보는 같은 클래스의 다른 친구들이 가져온 악보들보다 두세 배쯤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추천서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부족한 사람을 변호하기 위해 과장을 보태고 있다고 의심하실까 우려됩니다만, 조금 더 들어 보십시오. 저는 그 악보가 지정곡 다섯 곡 가운데 어떤 곡의 악보인지 유추할 수 없었고,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이 악보를 읽을 수는 있겠습니까? 학생은 아주 해맑게 웃더니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말러의 피아노 4중주잖아요. 저는 학생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곧바로 지우개를 들어 악보 한 곳의 필적을 살살 문질러 나갔습니다. 숯검댕이처럼 눌어붙은 연필 자국 속에서 마침내 어절 하나가 첫머리를 드러냈는데, N으로 시작하는 그 독일어 부사는 Nicht로, 18세기에 약속된 오스트리아식 셈여림 표기법의 일부가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뒤따라올 어절들의 나머지 말뜻은 필묵 속에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선별했던 지정곡 다섯 곡 가운데 단 한 곡만이 독일/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의 작품이었던 까닭이며, 이 곡은 Nicht zu schnell [=69] 그러니까, 너무 빠르지 않게, 2분음표를 69 메트로놈 템포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이 학생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제가 아는 최고의 음악가입니다. 음악의 실체가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다만 음악과 끝장을 보겠다는 끈질기고 부지런한 태도. 누가 됐든 악보 종이가 수기 흔적으로 새까맣게 칠해질 때까지 연필머리를 놓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 악보에 한해 그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달인이 아니겠습니까? 이 학생이 대학 재학 4년 동안 모든 합·반주 수업의 악보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만난 최고의 음악학 대가가 학사 졸업을 끝으로 오랫동안 음악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이 저를 얼마나 슬프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이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피아노를, 연주를, 음악을 영영 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며, 여전히 포기를 모르는 마음으로 무언가와 끝장을 보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아래 연락처를 남길 테니 꼭 한번 연락해 보시기를 거듭 권합니다.
날씨가 무덥습니다. 모쪼록 늘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윤에스더 드림
첫머리를 어떻게 열면 좋을까?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지금 이 지면의 페이지 조판을 조금 손보는 건 어떨까? 쪽 번호와 문단 스타일, 자간, 행간, 들여쓰기 포인트는 그대로 두고. 그냥 짧은 구절 한 토막을 이어질 문단 앞에 매달아 두었으면 하는데. 이를테면,
molto rubato con spirito; 매우 자유로운 템포로, 씩씩함을 가지고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박정효는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다. 박정효는 프랑스 몽펠리에 제3대학, 폴 발레리 문과대학에서 로트레아몽 작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정효는 한국 프랑스 학회의 회원이고, 동시에 프랑스 로트레아몽 학회의 회원이다. 여기까지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인트라넷 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력이다.
박정효에 관해 무언가 더 말해 볼 수 있을까? 작은 비밀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예컨대 그가 2013년 2학기 말에 학과 조교를 찾아가 부탁했던 것. 이후 그의 교수 소개란에서 남몰래 사라진 어떤 경력을 지금 다시 꺼내어 봐도 괜찮을까? 지금은 없어진 한국번역비평학회의 마지막 회장을 지냈다는 사실 같은 것. 그렇다. 2018년 작고하신 황현산 선생이 직접 창립했고 초대 회장과 명예 회장을 역임한 바로 그 스터디 서클 말이다. 2006년에 결성되어 2013년 잠정 해체 수순을 밟기까지. 일곱 해 동안 일곱 명의 회장이 있었고, 박정효는 해산을 눈앞에 둔 이 단체의 마지막 순간을 홀로 지킨 사람이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2013년 11월 23일. 고려대학교 문과대 132 강의실에서 열렸던 동계 심포지엄을 박정효는 기억할 것이다.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학회의 이름으로 주최된 마지막 학술회의였는데. 한 시 삼십 분 정각에 맞춰 방교영 교수의 기조 강연이 시작되었고, 다섯 시 사십 분 전후로 김혜림 교수가 폐막 강연을 마칠 때까지. 박정효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사오십 명 남짓한 좌중을 시시때때로 두리번거렸지만 익숙한 얼굴 하나 찾지 못했다. 한 명의 회원도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박정효는 크게 낙담했다. 박정효는 강의실에서 도망쳐 나와 문과대 건물 앞 공터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느 성실한 교직원이 싸리비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고, 지난 계절 뙤약볕을 가려 주던 구과목 나뭇잎들이 빗살 사이사이에서 발견되었을 때, 박정효는 숨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우듬지들이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박정효는 허리를 구부렸다. 무릎 안쪽 깊숙이 얼굴을 묻어야 했다. 분묘처럼 작게 웅크린 몸. 수종이 같은 묘목 다섯 그루가 그 모습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넓적다리 사이. 얼굴 하나 들어가기에나 알맞은 아주 사적인 공간에서 박정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처럼 부끄러운 실책 앞에 끝도 없이 부연을 대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서늘한 겨울바람이 몇 번인가 지나갔다. 때가 되자 누군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아무런 기척 없이. 그림자처럼. 선생은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박정효는 자신의 넓적다리 너비만큼 만들어진 어둠 속에서 점잖은 부름을 들었다. 천천히 머리를 들고 목소리를 쫓아갔다. 그리고 조용히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모자랐습니다. 선생님의 계획을 제가 망쳐버렸습니다. 우리의 꿈은 이렇게 끝나버렸습니다. 선생은 박정효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입 모양을. 울음소리 때문에 와들와들 떨리는 가슴뼈와 가여운 호흡근들이 딸꾹질처럼 말의 일부를 자꾸 삼키는 탓이었다. 선생은 예고 없이 손을 들었다. 그 손은 박정효의 오른뺨을 지나 등 뒤로, 날개처럼 나눠진 어깨뼈 사이의 작은 공간 위로 가 내려앉았다. 그곳은 척추를 보호하는 아주 얇고 예민한 근막이 지나는 자리로, 이후 선생의 목소리가 귀를 거치지 않고 곧장 전해졌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요. 박정효는 선생의 백발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눈치 챘다. 그것은 비스듬히 눌러 쓴 모직 헌팅캡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귓가 부분에 자라 있었다. 그렇지만. 선생은 이어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의 싸움을 계속하면 안 되겠습니까?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둥근 뿔테 안경다리를 슬쩍 밀어 올렸다. 그리고 장난꾸러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흐흐. 일종의 비밀 결사대처럼 말입니다.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주춤 중심을 잃었다. 박정효는 허겁지겁 뒤따라 일어나 선생의 양팔을 붙잡았다. 선생은 자신보다 약간 더 높은 박정효의 어깨를 힘 있게 주물렀다가 놓았다. 엘랑 비탈. 나는 이 말을 가장 좋아해요. 박정효는 남부 프랑스식 발음법으로 같은 단어를 따라 읽었다. élan vital? 선생은 억양이 읽히지 않는 기묘한 뉘앙스로 또박또박 그 이름을 다시 불렀다. 엘랑 비탈.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울 요량이니, 우리의 꿈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사라져 버렸다. 박정효는 문과대학의 언덕길을 가로질러 내려가는 홀가분한 걸음걸이를 지켜보았다. 처음 다가왔을 때처럼 기척 없이 사라져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선생은 그 뒤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5년이 지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기 전까지. 그렇게 『말도로르의 노래』는 선생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흐름을 이어서. 다시 말해,
dolcissimo; 아주 부드럽게
『말도로르의 노래』는 6박 7일에 걸친 짧은 체류 기간 내내 박정효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미술부서의 고집으로 규격 외 변형 판형으로 출간이 확정된 이 책은 보통의 번역서보다 너비가 좁았고, 그래서 헤링본 트윌 재킷의 넓은 바깥 주머니에 알맞게 들어갔던 것이다.
프랑스 로트레아몽 학회의 정기 학술대회는 체류 이튿날 일정으로 잡혀 있다. 박정효는 늦은 오후에 숙소를 나선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멀리서 개들이 짖는데, 짖을 때마다 야위고 꾀죄죄한 몸뚱어리가 휘청거린다. 오랜 시간 굶주린 것이다. 짖기에 뒤따르는 떨림조차 감당하기 힘들 만큼. 박정효는 조식으로 제공받은 샌드위치를 몇 조각 찢어 주위에 던져둔다. 개들은 조금도 다가오지 않는다. 멀리서 짖기만 할 뿐. 바크바크. 주둥이의 비근 주름은 먹이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누군가를. 그러니까 파리 시경 안쪽에는 아직까지도 그런 기다림들이 남아 있다. 박정효의 목적지는 파리 1대학의 현대식 대강당이다.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유행성 전염병 때문에 이미 여러 차례나 미루어진 자리다. 박정효는 대강당 연단 앞에 줄지어 불이 밝혀진 가톨릭 양초들을 내려다본다. 타오르는 심지 하나 앞에 영혼 하나. 파리는 행정 기능이 마비됐었던 몇몇 대도시 가운데 한 곳이었고, 실제로 수많은 불문학 명사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사회자가 또각또각 연단으로 올라간다. 박정효는 등받이 뒤로 머리를 돌린다. 대강당 좌석은 앞에서 3열까지만 채워져 있다. 많게는 18열에서 곧잘 만석까지도 다다르곤 했는데. 학술대회를 한층 숙연하고 긴장감 있게 만들었던 무대 밑의 눈썰미들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단출하게 들떠 있는 엉덩이 받침들. 사람의 체중이 실종된 자리마다 조명 불빛 또는 면직 티끌만이 떠돌아다닐 뿐이지 않은가. 박정효는 옆에 앉은 노인이 똑같이 등받이 뒤로 머리를 돌렸다가 Oh, Mon Seigneur 하고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것을 듣는다. 이마를 짚은 채로 고개 숙인 그는 한동안 목덜미 밑으로 늘어진 십자가 장신구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기조 강연에 앞서 추도식이 치러진다. 2019년 말라르메상 수상자인 클로딘 보히가 추모시의 낭독자로 나선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품사와 어절들이 박자를 헤아리기 힘든 말없음표를 사이에 두고 행이 바뀌는 동안 이따금 숨죽여 훌쩍이는 소리. 보히는 거의 영구적인 길이의 침묵으로 마지막 행을 끝마친다. 한동안 대강당은 거의 카타콤과 같은 무음 속에 남겨진다. 그리고 마침내 나탈리 레제가 성큼성큼 연단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레제는 현대저작물 기록보관소 부소장으로, 학술대회 공문에 소개된 기조 강연 발표자이기도 하다. 레제는 검지 끝으로 마이크를 두어 번 두드린 다음, 여러 차례나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아직까지 비탄에 빠져 있는 학자들의 정신머리를 남김없이 자기 앞으로 불러들인다. 알토 음역으로 내리깔리는 레제의 목소리는 음향기기에 의해 한층 증폭되어 거의 살아 있는 튜바처럼 울려 퍼진다. 여전히 우리 앞에는 우리의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박정효는 이때 선생의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을 떠올린다. 모두 인쇄물을 받아 주세요. 조교들에게 종이 묶음을 전달받은 1열의 학자들이 나머지를 뒤로 전달한다. 그리고 2열에서 다시 3열로 똑같이. 두꺼운 링 바인더에 묶인 종이뭉치의 분량은 32페이지쯤. 표지에는 별다른 장식 없이 글귀 한 줄만이 홀로 서 있다. 단조롭고 따분해 보이는 글씨체는 아마도 윌리워 내지는 루이스 셰리프. 종이 중앙에 놓여 오래된 책의 겉장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는 이 인쇄물의 이름은 「Les Chants de Maldoror」인 듯 보인다. 이른바, 말도로르의 노래. 하지만 왜 이것을 지금?
박정효는 그의 전자우편함 휴지통에 처박힌 백칠십 킬로바이트 크기의 텍스트 파일 몇 개를 떠올린다. 학술대회의 연기 소식이 고지된 그 전자문서들은 하나같이 로트레아몽 서거 150주기를 언급하고 있었다. 다가올 심포지엄의 주제를 미리 유추해 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로트레아몽 다시 읽기’ 같은 식으로. 보통 이런 투의 예측 진술은 커다란 충격의 앞자리에 놓인다. 일종의 완충장치 내지는 페르마타처럼. 한 가지 중요한 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진실은 여기에 있다. 다시 마이크로폰 앞으로 다가가는 레제의 입술 속에. 말하려는 이름의 악쌍 발음법에 따라 이제 막 윗잇몸 가까이 끌려가 붙으려는 살덩어리 끝에. 로트레아몽 백작. 근사한 가명 뒤에 감춰진 불멸의 젊음. 쉬르리얼리스트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아름다운 청년. 이지도르 루시앙 뒤카스의 『말도로르의 노래』 육필 원고가 마침내 우리 손에 주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보르도의 시 경연대회에 제출되어 에바리스트 카랑스의 눈에 들었던 「첫 번째 노래」 말입니다. 레제는 강의대 위에 올려 두었던 서류 봉투를 들고 흔든다. 봉투 내부를 조심조심 더듬는 손. 합성수지 필름을 씌운 아황산 펄프지 한 묶음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좌중은 존귀한 해골을 목격한 불신자들처럼 한꺼번에 말을 잃는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인쇄물은 원본을 직접 스캔한 것입니다. 판데믹 시기에 우리 연구소에 도착한 무기명 소포의 정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작은 편지가 함께 동봉되어 있었는데, 자신을 비밀 딜레탕트라고 소개한 이 고문서 수집가는 보존·관리에 제법 소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모쪼록 자신은 급성 폐렴을 진단받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부디 이 문서를 올바르게 해독해 달라는 요청을 편지 끄트머리에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베르 라크루아가 1869년 전권을 모아 엮은 완전판 『말도로르의 노래』를 가지고 있지 않던가요? 도대체 무슨 해독이 더 필요했던 걸까요? 이제 페이지를 한 장 넘겨 보십시오. 학자들의 입에서 거의 시름이나 다름없는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일제히. 박정효는 한순간 주저앉기라도 한 듯 어깻죽지를 무겁게 짓누르는 실내 기압 속에서 페이지를 한 장 넘긴다. 그리고 옆에 앉은 노인이 작게 중얼거렸던 불어 한 토막을 조금 더 친숙한 방식으로 따라 읽는다. 하느님, 맙소사.
익명의 독자들을 서슴없이 호명하던 「첫 번째 노래」의 첫 구를 살펴보라. 시집의 입구. 긴 호흡의 산문이 흡사 진술처럼 단숨에 불려 나오는 부분. 엄정한 어조의 목소리 대신 필선이 흐트러진 수기 자국들이 핸드아웃 위로 삐뚤빼뚤 나타나 있다. 이 음침한 청년은 아마도 몬테비데오에서 악필로 이름을 떨쳤을 듯. 불성실한 필기체쯤 개성으로 치더라도. 절과 절 사이. 행간. 장평. 최소한의 여백. 뭐라고 부르든. 행갈이를 해치고 있는 이 마구잡이 낙서들은 무엇을 뜻하는지? 로맨스어 글줄 밑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필 기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모든 문자 밑에 하나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김없이. 첫 번째 노래의 마지막 구까지. 멀찍이 떨어져 앉은 누군가가 소리친다. 우리가 속았다! 영락없는 졸고拙稿였어!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서는, 너 이 자식! 입 닥쳐!
poco a poco più cresendo; 조금씩 조금씩 점점 세게
박정효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것은 전승이 끊기지 않은 희귀한 주술 유산 가운데 하나로, 오직 번역가들만이 반복 학습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적인데, 이들은 눈만 감으면 언제든지 현대식 판테온으로 귀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위대한 만신전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건설된 심상의 공간으로, 양질의 대리석 대신 산더미 같은 논고와 비평들이 재료로 쓰였다. 무수한 열주로 장식된 주랑을 거닐 때. 희미한 수군거림이 복도에 울리는데. 귀를 기울여 보면 가까운 코린트식 기둥에서 나는 소리로. 세계 곳곳의 수장고와 도서관, 비밀 아카이브를 떠돌던 선배들의 목소리가 채록된 것이다. 기둥 위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서로 다른 필기체로 음각되어 있는데. 그 모두가. 반복 주기가 짧은. 이 음산한 노이즈의 발신 채널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죽은 선배들의 음성으로 이루어진. 미미한 크기의 자기장 때문에. 기둥머리에 장식된 아칸서스 잎사귀가. 바들바들 흔들리고 있다는 착각 앞에 다다를 때면. 재빨리 뒤로 한 발짝 물러나야만 한다. 문학이라는 표의문자의 구렁텅이 밑으로 영영 떨어져 버리지 않도록. 이제 본전으로 들어가면, 근대 불문학사의 네 장면이 원형 내벽 위에 부조되어 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 파노라마 장치를 가설물 없이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잠시 빌려 보자면. 식사 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부자가 첫 번째. 총상을 입고 쓰러진 레날 부인과 그녀를 내려다보는 쥘리앙이 두 번째. 무도회장에서 카드리유quadrille를 추는 에마, 갓 구운 마들렌에 홍차를 곁들여 먹는 마르셀이 세 번째와 네 번째. 한편. 주위를 둘러보면 석고로 만든 높이 12미터의 좌상들이 줄지어 조각되어 있는데, 물론 대부분 프랑스인이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보들레르보다도 불행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식민지 출신 젊은이 하나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석고 가루의 양만큼,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박정효는 가만히 지켜본다. 그것은 저 불운한 청년이 지금 지상에서 인망을 잃고 있기 때문으로, 이때 반듯하게 펼친 손바닥 하나가 불현듯 강의대를 때린다. 박정효는 깜짝 놀라 눈을 뜬다. 평화로운 마음속의 장소. 만신전에서 내쫓기듯 튕겨져 나온다. 두말할 나위 없이, 레제의 손이다. 그래요! 여러분 모두 알베르 라크루아 버전과 원본의 중대한 차이를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나서서 설명을 거들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말도로르의 노래』가 오역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50년에 걸친 연구와 그 산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하느님, 맙소사. 카랑스, 라크루아. 이 비겁한 겁쟁이들.) 사태의 긴급성을 참작하여 올해 학술대회는 『말도로르의 노래』 원본 해석을 둘러싼 즉석 방향성 논의로 전환하겠습니다. 천천히 원본을 검토해 보시고 의견이 있는 분부터 발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지난한 시간이 이어진다. 이를테면,
meno mosso; 보다 느리게
원본의 첫 구 밑에 적힌 기호들을 소리 내서 읽어 보자. 1 ― ― ― 2,5 ― ― 3,5 ― ― 4 ― ― ― 2,5 ― ― 3,5 ― ― ― ― 5,5…… 여기까지. 숫자. 하이픈. 하이픈. 하이픈. 숫자, 숫자. 하이픈. 하이픈. 숫자, 숫자. 하이픈. 하이픈. 숫자. 하이픈. 하이픈. 하이픈. 숫자, 숫자. 하이픈. 하이픈. 하이픈. 하이픈. 숫자, 숫자…… 어디 한번 머리싸움을 시작해 볼까.
연구자 A그룹은 자필 기호의 형식에 주목한다. 이들은 기호가 본문과 구분되는 언표를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중 구조로 조직된 무수한 문학작품들처럼. 액자의 안과 밖. 또는 텍스트와 메타-텍스트.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화자와 청자. 그런 선례쯤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타부타 따질 필요도 없이, 말도로르는 식인과 살인, 강간, 자해와 같은 악마적인 범죄들을 쾌락쯤으로 여기는 인물이 아니던가? 본문 문장들 밑으로 또 다른 글줄처럼 이어지는 이 파라텍스트 필흔은 틀림없이 말도로르에 대적하는 목소리일 것이다. 종속되지 않고. 말하자면 말도로르의 이면. 다른 이름을 가진 밝은 인격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더 높은, 지고한 자. 예컨대 로트레아몽 그 자신이거나 창조주에 버금가는 질서의 목소리를 지목해 볼 수도 있으리라. 말도로르가 표상하는 혼돈의 깊이를 헤아려 본다면 마땅히 그에 못지않은 빛이 이 저주받은 산문시집에 비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수열과 하이픈 조합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는 여전히 베일 뒤에 가려져 있다.
연구자 B그룹은 자필 기호의 표기 위치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세디유cédille와 같은 용도로 읽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것들이 예외 없이 문자 아래에 붙어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여기에 트레뒤니옹trait d'union을 닮은 하이픈 표시가 설득력을 보태어 준다. 심지어 뒤카스가 이같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자필 기호를 구상할 때 굳이 그의 모국어를 참고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더라도, 스페인, 루마니아, 알바니아에서 얼마든지 비슷한 용례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조금만 더 멀리 나가면 터키어, 아제르바이잔어, 투르크멘어, 타타르어와 같은 투르크어족 또한 비슷한 발음 구별 기호를 사용하고, 이처럼 다양한 국제 음성 기호 표기법에서 세디유는 반드시 문자 아래쪽에 적어 표시하도록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본 해석은 이 별도의 글줄을 발음 구별 기호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연구자 C그룹은 자필 기호의 규칙성에 주목한다. 원본에서 자필 기호로 사용되고 있는 숫자는 1부터 8까지 여덟 개의 자연수다. 중간중간 쉼표. 그보다 많은 하이픈. 이들은 여기서 640킬로미터쯤 떨어진 잉글랜드 중부 워릭셔카운티의 한 구식 성당 묘석 밑에 묻힌 유골 한 구를 느닷없이 일으켜 세운다. 18세기에 두개골을 도난당한 이 가엾은 해골은 비석에 새길 마지막 소네트마저 약강 5보격 리듬으로 쓰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 『말도로르의 노래』가 수많은 단행으로 이루어진 산문시집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하이픈은 음절의 강약이 발생하지 않는 곳. 즉, 평문으로 음독하기를 지시하는 기호로 취급하는 것이 백 번 옳다. 보라, 숫자는 음절의 강약이 발생하는 부분을 지시한다. 한 행을 2음절 음보들로 나눌 때, 몇 번째 음절에 문법적 스트레스를 먹여야 할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1부터 8까지, 여덟 개의 자연수가 4보격 2음절 그룹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두 번째. 5 앞에 오는 쉼표. 예컨대 3,5나 7,5 같은 것들. 이것은 동아시아의 고전 정형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전통 시가 작법의 흔적으로, 실제로 당나라에서 유행했던 5언시, 5―7―5조를 지키는 헤이안 시대의 와카와 그로부터 파생된 하이쿠, 센류처럼 행의 길이를 제한하는 장치로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신라와 고려에서 두루 노래되었던 8구체 향가는 8음절 이내의 단행과 여덟 개의 프레이즈만으로 주제를 완성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자필 기호는 로트레아몽 그 자신이 직접 산문 안에 운율을 구현해 놓은 방식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는 원본의 운문 버전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본은 해석이 아니라 단지 따분한 번안 작업을 요구할 따름인가? 목소리는 좀처럼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박정효는 차츰 편두통을 느낀다. 관자놀이 부근의 얇은 힘줄들과 피부 판막이 미세하게 들썩이는 중이다. 노크에 알맞게 구부러진 손 모양을 하나 생각하기. 140 메트로놈 템포에 어울리는 박자로. 툭. 툭. 툭. 툭. 약한 멀미 증상. 대형 트럭의 화물칸에 적재된 믹서 탱크처럼 머릿속의 말들이, 들고 있는 종이 윗면의 로마자 자모음들이, 다섯 가지 악쌍 표기법들이 하나둘 헤집어진다. 뒤집히고 도치된다. 뒤바뀌고 반복된다. 멀미. 이제 시작한다.
quasi staccato; 스타카토처럼
한바탕 소란. 목소리들. 점점 멀어짐. 두통. 메스꺼움 있음. 손힘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낌. 심장박동. 강한. 뱃고동 소리 같음. 빨라지는 중. 몹시. 체감할 수 있음? 100퍼센트의 긍정. 이제 180 메트로놈 템포를 향해 감. 어지러움. 안경 벗음. 헛구역질. 웩. 신맛 나는 침이 고임. 빠른 수긍. 끄덕거림. 기계적인. 하얘짐. 머릿속이. 알 수 없음. 그래. 할 수 없음. 너는. 능력 바깥의 일. 돌지 않음. 빌어먹을 머리가 좀처럼. 학자의 양심. 번역가의 싸움. 미주알고주알. 그만둬. 그따위. 젠장! 모두. 이렇게 실패? 다시 한 번의? 무릎 꿇음? 능력 부족? 아니 그냥 게으름. 흔한? 핑계에 트헤마tréma를 붙여? 발음하면 나이브näive함? 아니? 오히려 말을 줄여? 차라리 아포스트로프apostrophe. 차라리 합죽이. 빨리. 더 빨리. 도망쳐? 어디로? 비겁자. 너는 또다시 선생을 실망시킨다. 쯧쯧. 이제 그만. 다 그만 해라. 조용히 하란 말이다. 아니. 우리는 이것이 재미있다. 두통 다음은? 현기증 다음은? 이봐. 기록을 계속해. 두드러기? 두, 두, 두드러기? 마, 막, 부풀어 오르는? 페, 펩, 폐부 안에서? 수, 수, 숨을 고를 때? 기, 기, 기도가 막히는? 부, 붑, 부종의 크기? 으, 응, 응급처치가 필요해? 수, 숨, 숨이 막혀서? 자, 자, 자리에서 벗어나? 누, 누, 눈앞이 뿌예짐? 그, 그, 그런데 아무도 모, 모, 못 알아채고? 저, 저, 전문가라는 양반들이? 우, 우, 우리를 너, 너, 너를 자, 잘 이, 이해. 모, 못해? 그, 그, 그래서 어떻게 돼? 어떻게 되다니. 엄살은 그만 떨어라.
accelerando; 점점 빠르게
하늘의 뜻이 다르지 않아, 독자는 부디 제가 읽는 글처럼 대담해지고 별안간 사나워져서, 방향을 잃지 말고, 이 음울하고 독이 가득한 페이지들의 황량한 늪을 가로질러, 가파르고 황무한 제 길을 찾아내야 할지니, 이는 그가 제 독서에 엄혹한 논리와 적어도 제 의혹에 비견할 정신의 긴장을 바치지 않는 한, 마치 물이 설탕에 젖어들 듯이 책이 뿜어내는 치명적인 독기가 그 영혼에 젖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ritenuto; 갑자기 느리게
이름 없는 손이 움직인다. 별안간 뒤에서 나타나 박정효의 어깨를 잡는다. 난기류 밑으로 추락하는 에어프랑스 447편 여객기 안에 갇힌 누군가를 공중에서 낚아채다 꺼내놓는 것처럼. 박정효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다. 마른 눈물 자국을 차마 닦지도 못한 낯짝으로. 안경다리는 여전히 오른손에 들려 있다. 심각한 근시. 왜곡된 원근감. 테두리가 불분명한 3차원 정물들이 희뿌옇게 흩어져 있다. 비어 있는 4열 좌석들 가운데 한 곳의 엉덩이 받침이 가볍게 내려가 있다. 박정효는 가까스로 어떤 움직임을 읽어낸다. 등받이 가까이 윗몸을 숙이는 이 사람은 누구? 그는 비밀스럽게 속닥인다. 선생은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이 모국어 속삭임은 벌써 반나절 가까이 연장된 학자들의 논쟁 속에서도 손쉽게 구별된다. 아주 특이한 배음을 가지고 명징하게 전달된다. 박정효는 침을 삼킨다. 선생이 어디서 나타났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으리라. 박정효는 언젠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때가 정해져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다. 박정효는 울분이 반 옥타브 억눌린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의 유작을 오역으로 남겨 놓지 않을 겁니다. 이어서 되묻는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선생의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소리. 흐흐. 억양이 읽히지 않는 기묘한 불어 뉘앙스도 여전히. Oui, 그럼 어디 싸움을 시작해 보십시다. 선생이 떠난다. 박정효는 안경을 고쳐 쓴 다음 뒤를 돌아본다. 다시 한 번. 4열 좌석은 공평하게 비어 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다른 좌석들도 모두 마찬가지. 그리고 그렇게 3열 좌석 한 곳이 비워진다. 삐거덕거리며 올라가는 엉덩이 받침 하나. 영들 앞에 바쳐진 초들은 아직 타고 있다. 슬그머니 대강당을 빠져나가는 그림자 하나.
* 『말도로르의 노래』,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문학동네, 2018.
평온한 동체의 소음을 좇아, 일상적인 생활의 리듬을 되찾기. 말하자면,
a tempo; 본래 빠르기로
박정효는 침묵 속에서 슬며시 눈을 뜬다. 짐칸 선반을 따라 점점이 밝혀진 기내 조명 기구들이 조금 어둡다. 비행기는 희뿌연 안개 같은 적운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동체의 길고 곧은 날개가 멀리까지 뻗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박 리듬으로 반짝이는 플래시라이트가 구름 속에서도 곧잘 구분되기 때문이다. 한편, 귓바퀴에서 흘러내린 이어폰 줄은 셔츠 앞주머니 봉제선 사이에 잠자코 앉아 있다. 박정효는 콩알 크기의 단자 세트를 하나씩 집어 다시 귓속에 넣는다. 재생 중인 음악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Gymnopedie 1번. 승객용 시청각 서비스의 일부. 클래식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열아홉 번째 트랙이다. 이 음악은 얼마 남지 않은 마디 위를 사뿐사뿐 지나가고 있다. 뇌리에 주름주름 새겨지는 디미누엔도. 점점 여려짐. 떨림이 줄어든다. 이제 정적. 짧은 기다림. 재생 프로그램이 다음 음악의 전조를 읽어 오는 동안. 접이식 식탁 위에 엎어 둔 양장본 번역서는 말이 없다. 박정효는 이 책을 올바로 펴든다. 딱딱한 책등과 겉장은 색상 코드표에서 가장 어두운 컬러로 마감되어 있다. 책날개를 잡고 열었을 때 희고 반들반들한 속지가 평소보다 환하게 느껴질 만큼. 햇볕 밑에서 건조되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밝기. 그런 종이들은 종종 페이지를 넘기는 간단한 동작에도 결심을 요하곤 하지 않았나. 예컨대, 출간 기념회에서 꼼꼼히 책장을 넘기던 선생의 손 같은 것. 박정효의 유튜브 계정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브러리의 이름은 ‘이름 없음’이다. 선생의 장례식이 있었던 2018년 여름 무렵. 남몰래 목록에 추가된 영상 하나가 최근 시청 기록에 남아 있다. 파리 시내의 숙소에서 박정효는 그것을 여러 번이나 반복해서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본인이 번역한 책의 첫머리를 읽어 내려가는 선생의 목소리를. 얼굴 아래 머물러 있는 10분 길이의 그림자를. 선생의 낭독을 방해하지 않는 음량으로 재생되었던 음악을.
박정효는 책이 똑바로 서도록 놓는다. 속지를 구성하는 300여 페이지의 종이 낱장이 내려다보인다. 손 하나가 그 위로 다가간다. 접지 부분을 긁는 무심한 동작. 맵시가 거의 해진 검정색 가름끈 하나가 손톱 끝에 이끌려 나온다. 펼쳐진 면은 책의 뒷부분이다. 해설 부분. 선생의 평서형 목소리가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는 부분. 검지를 지남침 바늘처럼 들기. ‘오직 『노래』만이 어떤 심리적이거나 전기적 지침이 없이 여전히 덩그렇게 그러나 요란하게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묵독에 가까운 속삭임이 우뚝 멈춘다. 보폭을 맞추던 손가락도. 박정효는 창문을 바라본다. 너비와 높이가 얼추 같은 이 사각형 합금 테두리 안에 홀연 가구 하나가 놓인다. 수십 번 들여다보았던 영상의 한 장면처럼. 등받이가 없는 목각 의자. 출간 기념회가 열렸던 카페에서 선생이 앉았던 그 의자다. 낭독 행사 전일까, 후일까. 알 수 없다. 아직은. 다만 정지된 프레임 하나가 두 타임라인 사이에 간지처럼 끼워져 있을 따름이다. 곧 행사 담당자가 노래를 가져올까.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어째서 노래를 가져왔던 걸까. 선생의 목소리가 심심하다고 느꼈을까? 부실한 음향장비의 잡음을 숨기고 싶었을까? 특별한 부탁이 있었을까? 선생이 그러기를 바랐을까? 그 노래의 제목은 무엇일까? 누가 만들었을까? 선생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책의 제목 때문일까? 선생이 해설에서 책을 『노래』로 줄여 썼기 때문일까? 선생의 낭독이 노래처럼 들렸으면 했던 걸까? 신청서를 작성하면서까지 행사장에 찾아온 관객들은 왜 이 같은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정말로 문제가 없었을까? 인식하지 못했을까? 노래가 나오고 있다는 것조차? 정말로? 아무도? 왜일까?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의자에 마침내 선생이 다가와 앉는다. 하지만 선생은 창문 속에 만들어진 작은 의자로 가 앉지 않는다. 창가의 반대편 좌석. 박정효의 옆자리 깊숙이 몸을 묻는다. 그 모습이 창가에 비친다. 흘려 쓴 글씨처럼. 박정효는 눈앞에서 움찔거리는 희박한 무늬를 문질러 없애지 않고 그냥 둔다. 시선이 줄곧 거기에 머물러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앉은 풍경 속에. 박정효가 묻는다. 뒤카스는 왜 시집에 노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높낮이가 차분한 음성. 이 같은 만남이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주어졌던 까닭일까. 선생은 대답한다. 나도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니 질문을 멈추지 마세요. 그런 다음, 일어나 떠나버린다. 박정효는 복도 멀리까지 걸어가 사라지는 구두굽 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외이도를 덮고 있는 이어캡과 전기 음향 속에서도 분명히. 화장실에 갔던 자리 주인이 돌아와 박정효 옆에 앉는다. 일시적인 좌석 눌림. 그리고 코웃음. 박정효는 씰룩거리는 입술 모양으로 중얼거린다. 알겠습니다, septuor1님. 질문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옆 좌석에 앉은 승객이 박정효를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정효는 노트북을 켠다. 오피스프로그램 안에 입말을 받아 적기 시작한다. 첫머리를 어떻게 열면 좋을까? 편지는 비행기가 종착지 활주로에 착륙한 뒤에, 지난한 입국 수속이 모두 마무리된 뒤에, 메일 계정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즉시 발송될 것이다. 한여름의 습한 공중 위로. 읽지 않은 메일들의 가장 앞줄에. 신뢰할 수 있는 주소록 이름으로. 정중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이런 제목으로. 윤에스더 교수님께. 이제 잠깐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지금 이 지면의 페이지 조판을 조금 손봐도 좋을까? 쪽 번호와 문단 스타일, 자간, 행간, 들여쓰기 포인트, 각주에 적힌 인용 양식은 그대로 두고. 편지 하나를 소리 내어 읽어 보고 돌아왔으면 하는데. 그냥 작은 악상 기호 하나를 이어질 문단 앞에 매달아 두어도 괜찮을까. 이를테면,
이제 최고의 음악가를 위해 새로운 마디를 열 차례.
*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난다, 2019.
지금 당신 앞에 책 한 권을 내밀어도 괜찮을까?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서 있든. 앉아 있든. 누워 있든. 살아 있든. 죽어 있든. 가리지 않고. 작은 선물로 받아 주었으면 하는데. 책은 당신 앞에 뉘어져 있다. 얌전히. 책은 말수가 적다. 포장용 비닐 대신 침묵으로 보호된 배송 화물처럼. 그러니 우리도 손톱 대신 떠들썩한 진술들로 책 포장을 벗겨 보는 건 어떨까. 매 글줄을 페이퍼 나이프와 같이 취급하기. 이 빠진 종결어미들을 긁어내고. 껍데기뿐인 용언들은 무덤으로 가. 두괄식 산문의 첫머리들, 즉시 문장 앞으로.
인쇄 판형은 신국판 사이즈.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최대한 벌린 길이보다 조금 더 멀다. 센티미터 눈금으로 스물네 칸쯤. 이제 책 위에 손바닥을 붙여 봐도 좋은데. 매끈한 겉표지가 손힘에 눌려 내려앉고. 아직 들떠 있는 책날개 사이의 작은 틈 사이로 바람, 바람, 바람. 소리가 아주 작은. 당신에게는 자유가 있어서, 지금 바로 책날개를 빼서 던져버린다. 겉표지가 벗겨진 책은 여전히 말수가 적다. 아니, 없다. 어느 고약한 인쇄업자가 말줄임표라도 제본해 놓은 걸까. 표지를 책의 얼굴처럼 떠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 책의 얼굴은 아주 검다. 딥 블랙. 스모크 그레이. 그 사이 어디쯤. 불길 속에서 전소된 책에도 영혼 같은 게 있다면. 틀림없이 이런 생김새일 듯. 이 어둡고 불운해 보이는 사물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당신. 만져 봐도 괜찮을까. 선서하는 사람의 손 모양. 평평하고 반듯한 바닥. 당신의 운명을 빼닮은 주름들로 쭈글쭈글한 면이 책 위에 내려앉을 때. 페이퍼보드 재질의 딱딱한 표지. 이른바 책의 얼굴을 덮고 있던 냉기가 미리 마중을 나오는데. 그런데도 당신은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지. 위아래로 쓸어 보기도 하고. 손끝의 살로 꾹꾹 눌러 보기도 하면서. 340페이지 두께의 이 책이 실은 얼음 덩어리가 아닐까. 의심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든다. 학자들에 의하면 책은 세 사람의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여섯 개의 노래. 38개의 주석과 그보다 많은 파라텍스트. 60개의 문단. 342개의 말줄임표. 1,705개의 느낌표와 13,391개의 쉼표. 낱말 21,455개. 공백 23,070개. 글자 67,800개. 1억 개의 혼잣말. 수많은 머뭇거림. 저 멀리. 아득한 인지 공간 너머의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사이를 떠도는 꿈들. 불가사의 같은 의문들. 무량대수의 분노. 무한대의 카오스. 그리고 마침내, 단 한 번의 통곡. 이런 것들의 합. 무게 340그램의 목소리들을. 당신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손 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페이지를 열어 보는 건 어떨까? 표지를 넘길 때 책은 처음으로 소리 낸다. 쩌저적. 유빙이 벌어지는 것처럼. 이것을 책의 한숨쯤으로 듣기로 하고. 옅은 목탄 냄새가 배어 있는 미색모조지들이 한 장씩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종이들은 갓 제본기를 빠져나온 듯. 아직까지 미약한 열기를 머금고 있는 까닭에. 종이 귀퉁이를 잡아 넘길 때. 당신은 감기 걸린 아기의 이마를 쓸어내리는 것과 같이.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겨 주어야 한다.
다음 장. 또 다음 장. 비어 있는 공간. 용량이 큰 여백 아래에. 번호를 먹인 네 개의 절.
1. 이 책은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아드판 로트레아몽 전집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Lautréamont, Euvres comp complètes, Paris: Gallimard, 2009)
2. 원서의 이탤릭체는 이탤릭체로, 대문자는 고딕체로 표시했다.
3. 본문의 주는 모두 옮긴이 주다.
4. 악보는 2021년 현대저작물 기록보관소에 기증·발표된 저자의 육필 원고를 참고했다.
옮긴이의 일러두기를 건너뛰고. 눈길을 책의 차례 부분으로.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 여섯 노래와 육십 개의 절 나눔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개정판 인덱스에는 새로 삽입된 지면이 두 군데 있는데. 이 소품들은 각각 악보와 작업 노트로 이름 붙여졌다.
악보는 「첫 번째 노래」의 부속품으로. 14번째 절: ‘때로는 현상의 외관을 믿는 것이 논리적이라면’이 끝맺은 자리. 55페이지의 다음 장. 다시 말해, 노래와 노래 사이. 신성한 행간에 나타나 있다. 이전 판본에서 필흔 하나 없이 공백만으로 채워졌던 바로 그 지면 위에. 오선보의 모든 구성 요소가 빠짐없이 준비된 이 마스터 페이지의 제목도 「첫 번째 노래」. 본문의 문장들이 독창 가곡에 어울리는 레이아웃으로 보표 밑에 기입되어 있다. 악보를 읽을 줄만 안다면. 누구라도 당장 첫 음정을 소리 내어 짚어 볼 수 있을 만큼.
작업 노트는 「동시에 또는 끝없이 다 말하기」의 다음 장. 옮긴이의 해설에 이어서. 음악가의 부연 설명이 글줄 밑으로 뒤따르고 있다. 자유로운 산문 형식의 말하기. 머리글은 하나의 독립된 낱말로부터 시작된다. “노래.” 이렇게. 이제 검지 끝을 지남침 바늘처럼 들기. 안경을 가져와도 좋고. 음독을 하든. 묵독을 하든. 아무래도 좋은 와중에. 곱씹거나 우물거리는 입속의 움직임. 그 리듬에 보폭 따위의 비유를 붙여도 좋다면. 품사와 품사. 어절과 어절. 자간을 걸어가는 속도에 알맞게 검지 끝이 동기화될 때. 우리는 이런 문장들을 찾아 읽어내고 마는데. 예컨대. 내가 묻자, 쉼표는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소수점 표기법으로 사용되어 오기도 했다고, 박정효 교수가 말했다. 이어서. 나는 이와 같이 난해한 자필 기호들을 다른 용도로 읽어 보기로 했다. 이를테면 2,5를 2.5로 읽어 보기로 한 것이다. 손을 움직여. 사용된 숫자들을 배열하니 1―2.5―3.5―4―5.5―6.5―7.5―8의 수열을 구할 수 있었고, 좀 더 빠르게. 나는 생각했다. 왜 2, 3, 5, 6, 7에만 0.5가 붙지? 더 빠르게. 그러자 직감적으로 이것이 B major 스케일임을 알 수 있었다. 더. 책에 조표를 붙일 수는 없었을 테니까. 더. 저자는 임시표를 음마다 붙이기로 한 것이다. 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더. 5.5 앞뒤에서 1과 3.5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더. 이것은 화성학적 기법의 일환으로. 더. 저자가 작곡법에 조예가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였고. 더. 정말로 이 모든 것이. 더. 5.5―1. 더. 즉, 파#―시 진행으로 끝나고 있었다. 마침내. 완벽한 나장조 노래였던 것이다. 트레몰로. 파#시―파#시―파#시―파#시―파#시―파#시―파#시―파#시.
이제 다음 장으로 가. 발행연도와 지은이, 옮긴이, 펴낸이 따위의 서지사항이 올바른 인쇄 예법에 따라 가지런히 행갈이 된 곳으로. 이 책의 ISBN 넘버는 작은 비밀로 남겨 두기로 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우리 앞에 놓인, 미래의 책을 이제 그만 닫아도 괜찮을까?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지금 이 지면의 페이지 조판을 조금 손볼 수 있을까? 쪽 번호와 문단 스타일, 자간, 행간, 들여쓰기 포인트, 각주에 적힌 인용 양식과 악상 기호를 나타내는 딩뱃 문자들은 그대로 두고. 그냥 작은 속삭임 하나를 이어질 공백 앞에 달아 두고 싶은데. 이를테면,
fine.
이제 다음 싸움꾼들을 위해 새로운 마디를 비켜 줄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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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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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웨이브 정용준 1. 약속 시간을 십 분 앞두고 음료를 절반 넘게 마셨다. 초조하다. 열아홉 여자는 아이일까. 어른일까. 만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마흔셋. 열아홉을 두 번 곱해도 다섯이 남는 나이. 둘 사이에 가능한 게 있기나 할까. 좋아하는 가수가 누군지, 취미는 뭔지, 최근 본 영화와 드라마, 그런 이야기 하면 되겠지?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영화 보고, 그렇게 하면 되는 거겠지? 얘기 좀 나누고 깔끔하게 바로 헤어지는 것도, 조금 걷거나 이르지만 밥을 먹는 것도, 좋겠다. 할 말이 없으면 난감하겠지만 만나자고 한 건 내가 아니니까. 무슨 말이든 그 애가 할 거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검정색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얼굴과 표정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쪽도 나를 한눈에 알아본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돌린 뒤 휴대폰을 들었다. 탁자 위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 ‘수양’ 그는 휴대폰에 손대는 나를 확인하더니 전화를 끊고 가까이 다가왔다. “이태양, 씨?” “네. 맞아요.” 네. 맞아요, 라니. 그렇게 답한 내가 어이없다. 수양은 맞은편에 앉아 영수증을 내려보며 말없이 있었다. 사 주겠다는 것을 굳이 거절하고 자기가 주문했다.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다. 막막했다. 설상가상 장 대표에게 계속 연락이 왔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쉴 거라고 했다. 알겠다고, 해 놓고 ‘어디.’ ‘뭐해.’ ‘언제 끝나.’ ‘중요한 퀵이야.’ ‘지역이 맞는지만 맞춰 보자.’ 집요하게 메시지가 왔다. 나중엔 전화까지 와서 모드를 무음으로 바꾸고 액정이 보이지 않게 휴대폰을 뒤집었다. 최대한 들으세요. 똑똑한 이들의 충고를 마음에 새겼다. 입 닫고 듣기만 하자. 다짐했지만 별수 없었다. 어색한 침묵을 못 견디고 먼저 말을 했다. 수양은 대꾸도 않고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다. 말하는 나를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자꾸 말하다 보니 아무 말이나 하게 됐고 퀵서비스 업무 시스템을 필요 이상으로 설명했다. 픽업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진상 손님을 험담할 때 수양은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카페는 조용했다. 여기저기 사람들은 있는데 말하는 이가 없었다. 대부분 혼자였고 함께 있어도 대화 없이 노트북을 보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우리를 노려보거나 시끄럽다고 항의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귀가 곤두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수양이 말했다. “자리 옮길까요?” 오후 세 시 반. 할 것이 없고 갈 곳도 없었다. 밥 먹기는 애매하고 영화 보자는 말을 할 자신은 없었다. 봄이 온 것 같지만 오래 걷기에는 추운 3월 초. 천변 도로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스몰 토크가 중요하다고 했다.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서로의
- 관리자
- 2025-05-01
뉴 잭 스윙 박서련 시작은 사이렌 소리였다. 일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화들짝 놀라 공장에 불이라도 난 게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전주. 무슨 테이프인지, 가져온 사람은 또 누군지 같은 건 몰라도 하필 〈바꿔〉 시작 부분에 딱 맞춰 테이프를 감아 왔다는 점이 괘씸했다. 이정현을 좋아해서 공장 사람들과 함께 그 노래를 듣고 싶었든 단순히 전주 부분 사이렌 소리로 골탕을 먹이고 싶었든, 즉 선의든 악의든을 떠나 고의인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길고 신경질적인 전주 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 가고만 있어는 동감이었지만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매우 계속 듣고 싶다, 계속 듣고 싶다, 그저 그렇다, 듣고 싶지 않다, 전혀 듣고 싶지 않다 중 뭐냐고 하면 씨발 제발 그만 틀어 정도. 귀를 막으려면 손이 한 쌍 더 필요했다. 기존 왼손은 작업판을 누르고 기존 오른손은 인두기를 조작해야 하니까. 이정현한테는 큰 감정이 없었지만, 좋고 싫고를 떠나 아무 생각이 안 들었지만, 테크노 댄스 테이프를 굳이 공장에 가져와 안 그래도 짜증 나는 야간 특근 시간에 튼 인간은 인두기로 대가리를 갈겨 주고 싶었다. 젊다는 건 뭘 모르는 거. 유행이랑 자기 취향을 구분 못 하는 거. 결정적으로, 자기한테 뭐가 맞는지 모른다는 거. 그런 젊음이 공장 안에는 썩어지게 넘쳐 났고 나를 그들과 구별 지을 힌트는 나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씨발 너무 젊고 젊다는 게 이제는 조금 질린다. “오늘까지 이번 달 총 열일곱 날 일했고 하루에 열 시간 곱하기 이천이백 원, 곱하기 십칠 더하기 만근수당, 여기다가 특근수당 삼천 원 곱하기 이십일 시간···.” 귀에다 납땜을 해 버릴까 진짜. 시끄럽게 울려 대던 테크노 곡이 끝나고 조성모 노래가 나오기 직전 도요 언니가 근무 시간 내내 끊임없이 중얼대는 급여 셈법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기절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가 났다. 인두기가 기판 대신 왼손 엄지를 지지고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은 것도 그래서였다. 잠깐이나마 열이 잔뜩 오른 머리가 300℃ 넘는 인두 팁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 앗, 뜨거, 씨발, 나는 덴 엄지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입에 물었다. 이끼 낀 불상을 핥을 때나 날 듯한 기이한 맛이 혀에 닿았다. 인두기에 얇고 집요하게 눌어붙은 겹겹의 땜납 자국이 그제서야 떠올랐고 입에서 나온 엄지손가락 옆구리는 희고 퉁퉁한 모양으로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꼴을 보고서야 화가 식었다. 몸 안에 꽉 차 있던 열기가 작은 틈을 찾아 새어 나간 것처럼 맥이 탁 풀린 거였다. 그래 씨발 관두자. 화내 봐야 나만 손해지. 멍청하게 인두기로 제 손 지지는 꼴을 어디 들키지나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야 청승 맞다 노래 꺼라, 누군가 큰 소리로 지청구를 놓았고 또 누가 대거리를 했다. 조성모가 왜 싫으냐 네가 나가라. 이만 이천 곱하기 십칠은
- 관리자
- 2025-05-01
미시적 동물 서이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 새벽부터 내린 폭우는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천은 범람했고,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폐쇄된 것은 물론이고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었다. 지대가 낮은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다녔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각 지역 홍수 피해 현황과 구조 소식을 보도했다. 강풍에 간판이 날아가고 백 년 된 나무마저 쓰러졌다고 했다. 곧이어 집이 침수되어 대피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돼지나 오리와 같은 농가의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산사태 영상이 나왔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도로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혹시라도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비가 그치기 전까지, 아니, 비에 젖은 땅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까지는 너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틀어박혀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망가진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저녁에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어두웠다. 거리는 이미 시커먼 흙탕물에 잠긴 상태였고, 불 꺼진 신호등과 가로수만 물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미리 대피했거나 꼼짝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있겠지. 나 또한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집안까지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 침대 높이만큼 차올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마어마한 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우로 기압이 낮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비가 오면 항상 몸이 피로했으니까. 한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엄마는 내게 화를 낼 때마다 아빠를 들먹이곤 했다. 너는 어떻게 네 아빠랑 하는 짓이 똑같니. 내가 아빠를 연상케 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그러나 정작 아빠는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꼴 보기 싫다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 둘을 모두 닮아 있었다. 외모나 성격,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딱 반반씩. 어디에선가 듣기로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 게 아니라, 장기를 닮는 거라고 했다. 장기가 닮아 얼굴이 닮는 거라고. 아빠는 간이 안 좋았고, 엄마는 위와 갑상선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둘 다
- 관리자
- 2025-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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