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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 리쇼, 「고통」 중에서

  • 작성일 2013-02-07
  • 조회수 2,133




그녀는 생각했다. ‘흥, 세상 사람들이야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그런 거 없이도 행복할 수 있어. 집을 팔고 조르제와 다른 고장에 가서 살면 돼. 조르제만 있으면 된다고.’ 그녀는 두 팔로 조르제의 목을 안고 귀에 대고 말했다.

“만약 엄마가 죽으면 넌 어떻게 할래?”

아들이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아이는 이런 질문을 받고도 놀라지 않았다.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그리고 거짓말이 이어졌다.
“엄마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예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망설였다. 가슴이 화끈거렸다.
(……)
그녀는 입술을 아들의 귀에 가져가 입을 맞추고는 들릴락 말락 하게 말했다.

“네게 동생이 생긴다면 어떨 것 같니……?”
(……)

아들이 갑자기 몸을 뗐다. 아이는 눈썹을 찌푸리고 얼굴을 붉힌 채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마치 유리 광택처럼 햇빛 아래 반짝였다.

“왜 제게 동생을 주시려는 거예요?”
“그냥 농담이야. 농담으로 한번 해본 소리야……”
“아빠도 안 계신데……”

두 사람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말하고 있었다. 문장들은 서로에게 도달하지 못한 채 뒤섞였다. 조르제는 수치심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치심이 아이의 목까지 치밀었고, 고통이 아이의 가슴에 상처를 냈다. 아이의 이 사이로 씩씩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테레즈는 마치 누군가에게 고문당해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무방비 상태로 상처를 입고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래, 아이들은 다 이래. 무슨 일을 해야 하고 무슨 일은 하면 안 되는지 벌써 다 알고 있는 거야. 열한 살이면……’
이럴 것을 왜 그녀는 이제 막 돋아나 섬세한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려는 아이가 자기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아이를 버리고 그 독일 남자를 받아들였단 말인가? 해명해야 할 순간이 된 듯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나 보려고 그런 거야…… 그러니 화내지 마라, 조르제. 농담으로 한 말이니까……”

백악같이 하얀 빛이 흡사 돌처럼 퇴색한 그녀의 잿빛 얼굴 위로 부서져내렸다.
조르제가 말을 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 아빠가 돌아가셨잖아요. 말이 안 된다고요……”

아이는 불같이 화를 냈다.

“말도 안 돼요. 아이가 생긴다면 저는 집을 나가겠어요. 멀리 가버릴 거예요. 멀리 가버릴 거라고요……(아이는 분에 겨운 나머지 입에 거품을 물고 더듬더듬 말했다) 그래요, 멀리 떠나버릴 거예요.”
“조르제, 진정해라.”
“떠나버릴 거……”

아이는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테레즈는 혼자 다락방에 남았다. 울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배 위에 놓인 두 손으로 작은 양털 스웨터를 잡아 늘리며 서 있을 따름이었다. 아이는 천천히,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아이의 머릿속은 자신을 괴롭히는 나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설 때마다 계속 부딪혔다. 그 즈음에 고통스러운 순간을 자주 맞았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 고통의 절정이었다.(……) 수치심에 휩싸인 아이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라고 느꼈다.



작가_ 앙드레 드 리쇼 - 프랑스 소설가. 1909년 태어났으며 1931년 독창적인 첫 소설 『고통』을 발표. 프랑수아 모리아크, 앙드레 지드, 장 콕도 등과 교류했고, 알베르 카뮈 등에게 영향을 줌. 장편소설『변덕스러운 사람들의 샘』, 『우애』, 『붉은 모관』,『나는 죽지 않았다』, 동일한 제목의 시집 두 권『불가침권』을 출간했고, 1968년 프랑스 남부의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


낭독_ 남도형 - 성우. SBS 〈 내 친구 해치 〉, KBS 〈 슬럼독 밀리어네어 〉 등에 출연.
박신희 - 성우. 〈 주말의 명화 〉〈 과학수사대CSI 〉등에 출연.


* 배달하며


알베르 카뮈가 어린 시절 어머니로 인해 생긴 불안의식을『고통』을 만나 해소했다는 소개의 글을 접하고 이 소설을 더 당겨 읽었습니다.『이방인』의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전혀 동요하지 않는 대목은 젊은 시절 내내 강렬하였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제게 큰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문제적 캐릭터의 일탈적 행위라는 이해말고도 다른 심연의 비밀이 존재하지 않을까 의문이었죠. 저 자신 곁의 죽음들을 놓고 눈물 없는 지극한 슬픔과 그로 인한 자기혐오를 경험했던 터였습니다. 극도의 슬픔, 혹은 슬픔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라기보다 슬픔이나 고통에 대한 불가해성이랄까요. ‘고통’이란 제목은 내세우기 힘든 제목입니다. 그러나 ‘욕망’, ‘고통’이라는 단어들을 지워나가면 이 소설은 와르르 무너질 만큼 핍진합니다. 카뮈는 아마 십대 말에『고통』을 읽었을 테고, 그리고 십년 후『이방인』을 썼습니다. 그래서 불타는 집에서 홀로 살아남은 조르제가 청년 뫼르소의 유년기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은 맥락이 있어 보입니다. ‘뫼르소의 유년기’라는 부제를 달아놓고 이 소설을 읽습니다.


 문학집배원 전성태


출전_ 『고통』(문학동네)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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