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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아라리가 났네」

  • 작성일 2013-02-18
  • 조회수 2,675

박진성, 「아라리가 났네」




아라리가 난거랑께 의사 냥반, 까운에 환장허겄다고 달라붙는 햇살이 아라리가 나서 꽃잎을 흔들자뉴 오메 발병(發病) 원인은 불안 강박 우울 공황 발작, 이런 게 아니라 아라리가 나서 그렇탕께 왜 심전도는 찍자 그러능규 술판서 언 눔이 아리랑을 불러 재끼는디 아라리가 헉 하고 피를 토해내능규 복분자가 요강을 뒤집어엎는 것 맹기루 아라리가 내 몸도 이렇게 뒤집어서리 환장허겄다고 나도 아라아리가 나아안네 부르고 있는디 내 몸이 꽃이파리마냥 바르르 떨고 있는디 그 냥반들이 응급실에다 나를 쳐넣은규 숨이야 아라리가 쉬겄지 심장이야 지 혼자 팔딱팔딱 하는 거구 긍께 의사 냥반 이 담에 병원 와서 불안하고 우울하담서 뒤집어 자빠진 사람 있으믄 아리랑 한번 불러주슈 아라리 땜시 잠시 잠깐 그랑깅께, 저 꼰잎에서 주르륵 미끄러지는 아라리 몸 좀 보소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믄 아라리 한번 재껴부리믄 돼쥬, 나 갈라유!



박진성-1978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남. 시집 『목숨』, 『아라리』, 산문집 『청춘착란』 등이 있음.

낭송_ 송바울 - 배우. <세일즈맨의 죽음>, <독짓는 늙은이> 등에 출연. 극단 ‘은행나무’ 대표.
출전_ 『목숨』(천년의 시작)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여자는! 여자답게! 오, 예!? 오, 예!?
남자는! 남자답게! 오, 예!? 오, 예!?
흔들자! 흔들어!”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한 음악이 담배연기 자욱한 공기를 뒤흔들던 디스코텍들. 자기가 갔던 한 디스코텍에서는 디스크자키가 볼륨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악을 쓰며 이런 추임새를 날렸다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배를 쥐고 웃었다. 내 세대 친구들과 옛날 얘기를 하다 보면 대개 어렸을 때는 세계명작 동화의 세계에, 십대부터는 미국의 대중음악과 춤에 빠져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 아리랑의 정서는 낯설기 그지없는데 대한민국의 어떤 사내들 핏속에는 아리랑이 진하게 녹아들어 있나 보다. 영화감독 김기덕이 베니스영화제 시상식 자리에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문외한인 내 느낌에도 아리랑과 아라리는 좀 다른 듯하다. ‘뒤집어 자빠진 사람 있으믄 아리랑 한 번 불러주슈 아라리 땜시 잠시 잠깐 그랑깅께’. 김기덕 감독도 솟구치는 아라리를 다스리려 아리랑을 불렀을 테다.
시 「아라리가 났네」는 ‘아라리’가 뭔지를 화자의 사투리로 더욱 액티브하게 보여준다. 아마도 화자의 삶은 미치고 팔딱 뛰고 싶게 ‘폭폭할’ 것이다. 그러한 처지에 신경과 감각이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시의 파장이 어찌나 강한지 화자의 팽팽한 떨림이 파르르 전해진다. 타르코프스키는 영화 <향수>에서 ‘미친 사람은 외롭다’고 말하지만, 미쳐서야 행복한 사람도 있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믄’에서 발병은 발의 병이기도 하고 발병(發病)이기도 하다. 삶의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 사람들아, 삶에 먹히기보다 삶을 지지 밟고 높이, 하늘 저 끝까지 높이 튀어 오르자! ‘아라리 한 번 재껴부리’자! 극도의 발정(發情) 상태가 멈추지 않는 생명체를 보는 듯한 「아라리가 났네」.


문학집배원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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