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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끝나지 않는 노래」 중에서

  • 작성일 2013-03-14
  • 조회수 2,481


최진영, 「끝나지 않는 노래」 중에서



깊은 관계를 원하던 때도 있었지. 근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니 마음 내 마음 다 다르고 니 깊이 내 깊이 다 다른데. 다른 게 화가 나서 싸우고 볶고 그만 끝내자 그랬지. 멍청하게. 멍청한 짓이지.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말을 혼자 지껄이면서 봉선은 눈물을 훔쳤다. 지긋지긋하다고 도망친 집. 채워지지 않는 마음. 남자의 침묵이 그리웠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리 되었나 싶다가도, 아니, 나보다 좋은 인생이 어디 있나 싶다가도, 엄마 사랑은 못 받았어도 남자 사랑은 많이 받았지 싶다가도,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 사랑 아닌 줄 알았던 그게 진짜 사랑이었을까 싶고, 사랑은 그냥 말이고 글자지. 좋고, 애틋하고, 흥분되고, 미안하고, 원망스럽고, 밉고, 부끄럽고, 샘나고, 보고 싶고, 그런 것의 다른 말. 보고 싶은 수선이, 우리 엄마. 엄마를 떠올리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고. 무섭고 불쌍하고 미운데 자꾸 생각나고. 이기적인 것보다 더 나쁜 건 이중적인 거야. 이기적인 건 최소한 정직하거든. 우리 엄만 단 한 번도 이중적이지 않았어. 엄마 때문에 이해하는 방법 대신 인정하고 체념하는 법을 배웠지. 그거, 어마어마한 재산이야. 좋은 사람 되는 것보다 나쁜 사람 되는 데 더 많은 용기와 외로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지. 내가 나쁜 년 해보니까 그거 하난 알겠더라. 안 그래? 다들 착한 척만 하면 나쁜 말은 누가 해? 누가 화내고 누가 야단치고 누가 관계를 끝장내지? 엄마는 늘 나빴어. 난 엄마 이해 안 해. 그래 난 썩을 년에 미친년이야. 나쁜 년. 헤픈 년이야. 나는 엄마 따위 절대 안 해. 자식새끼 있어 뭐해. 그딴 거 있어봤자 고생밖에 더 해? 이러나저러나 듣는 건 원망뿐이지……. 에이씨, 지랄맞게 보고 싶네. 엄마, 수선이, 우리 엄마.




작가_ 최진영 - 1981년 태어나 2006년 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 2010년 장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끝나지 않는 노래』등.


낭독_ 황혜영 - 배우. 연극 〈타이피스트〉, 〈죽기살기〉 등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모니〉 등에 출연.


* 배달하며


이제 저도 조금 나이 들어 후배들이 생기고, 더러는 한 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기도 합니다. 문학상 공모 당선자에게 소식 전하는 일은 대부분 문예지 편집자나 문학담당 기자가 맡지요. 흐뭇한 풍경입니다. 때로 그 신비로운 전화기가 심사자에게도 들려집니다. 최진영은 제게 그런 기쁨과 영광을 안긴 작가입니다. 짧은 통화였지만, 읍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무는 농로로 귀가하는 처녀의 모습이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아마 이 인상은 십중팔구 제멋대로일 테지요. 이후 그는 뚜벅뚜벅 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두 편의 장편소설은 세상을 향해 가시 세운 인물들이 웅크려 안은 독한 생의 내력과 처연한 언어들에 바쳐져 있습니다. 이 작가야말로 세상의 바닥을 제대로 아는 자라는 생각이 들지요. 저 벋나가는 언어의 절박함을 보세요. 끊어질 듯 당겨지는 시위 같지 않나요?


문학집배원 전성태


출전_ 『끝나지 않는 노래』(한겨레출판)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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