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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이런 시야가 어디 있느냐」

  • 작성일 2013-05-27
  • 조회수 3,045



정현종, 「이런 시야가 어디 있느냐」



청계산 능선을 가는데

어느 지점에서 홀연히

눈앞이 빛 천지다!

진달래꽃 때문이다.

천지에 웃음이 가득,

이런 빛 녈반이 어디 있느냐.

이런 시야(視野)가 어디 있느냐.

(모든 종교들, 이념들, 철학들

그것들이 펼쳐 보인 시야는 어떤 것인가)

이런 시야라면

우리는 한없이 꽃 피리니,

웃는 공기 웃는 물 웃는 시방(十方)과 더불어

꽃빛 빛꽃 피리니.





시_ 정현종 - 1939년 서울 출생. 1984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등과 시선집으로 『고통의 축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낭송_ 정인겸 - 배우. 연극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에 출연.

출전_ 『광휘의 속삭임』(문학과지성사)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정정화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세상을 알면 알수록 미소와 더불어 살고 싶었습니다. 웃음판을 키우며 살고 싶었습니다. 웃음의 분무기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세상을 좀 더 가보니 웃음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도 가짜가 많고 분 바른 것이 많습니다. 제가 내미는 웃음에도 때로 맘에 없는 것이 섞이고 늘고 하더라니까요, 글쎄.

꽃은 웃음 감별사입니다. 꽃 앞에 선 이의 표정, 그것이 진짜 웃음입니다. 굳이 소리 내지 않아도 웃음입니다. 장강대해와도 같은, 우주 저편으로 연결된 웃음이니 섣부른 소리 따위 날 리 없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웃음이니 온몸이 절절한 미소입니다.

고농도 산소를 마시며 걷는 능선 길에서 문득 마주치는 한 무더기의 진달래 군락. 그 컬러풀! 두 팔을 활짝 펼쳐서 놀래주려는 동작으로, 숨었다가 나타난 옛 친구…….

종교니 이념이니 철학이니 하는 게 저 친구만 하겠습니까? 시방 세계를 웃게 하는 저 꽃만 하겠습니까?


문학집배원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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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어진이

    대가가 펼쳐보이는 진달래꽃빛,빛꽃의 황홀경에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다. 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 시 앞에서는 망언에 불과하다. 꽃빛, 빛꽃 앞에서 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 2013-07-12 03:01:09
    어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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