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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 모왓, 「잊혀진 미래」 중에서

  • 작성일 2013-06-13
  • 조회수 1,425


   팔리 모왓, 「잊혀진 미래」 중에서




   이 부족은 해마다 가을이면 했던 고기사냥을 무시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는 오히려 흰 여우 덫을 놓는 법을 배워 그 털가죽을 밀가루, 조개, 총으로 거래하는 것을 배워버렸다. 이할미우트 부족의 생각에, 무역업자들이 온 이후로 더 적은 노동으로도 그들의 단순한 필요를 채울 수 있게 되었기에, 그 교환은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높은 수익을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자, 큰 회사는 사무실을 철수 해 버렸고, 이 부족이 순수하게 배운 새로운 삶의 방식은 이제 파멸로 이르렀다. 한 때는 위대한 사슴 사냥꾼이던 사내들이 이제는 위대한 여우 사냥꾼이 돼버렸지만, 사람이 여우 털가죽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략)

   그녀의 가족들이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속으로 피해버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늙은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조용한 그들의 모습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린 쿠니의 흐느낌과 아들인 사냥꾼의 염려스러운 중얼거림을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가 선명하게 들은 것은 결코 멈추지 않고 부는 바람이 이글루의 매끈한 곡선 지붕을 따라 돌 때 들린 모래 같은 눈의 속삭임이었다.
더 이상 식구들의 조그마한 소리를 의식할 수 없을 때까지 그 거칠게 스치는 소리가 그녀를 가득 채워버렸다. 시끄러운 눈의 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고, 그 소리가 커질수록, 죽음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도 커졌다.
해골만 남은 개들이 문간을 지키고 있다가 수척한 머리를 들어 그녀가 자유롭게 지나가도록 얼음벽 쪽으로 몸을 움츠렸을 때 그 긴 밤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늙은 할머니는 이글루에서 나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몰아닥치는 눈이 바닥에서부터 그녀를 휘감아버렸고 그녀 주위로 어둠이 짙어졌다. 털바지만 입은 채 서 있던 그녀가 바지마저 벗어버리자, 그것은 조용히 눈발을 따라 사라져버렸다. 바람은 고통에 처한 짐승처럼 애처로운 소리를 냈고, 어둠은 그녀의 연약하고 고통 받는 몸을 덮었다.
아침이 왔을 때, 가족 중 누구도 할머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 작가_ 팔리 모왓 – 자연과 생태의 중요성, 문명의 파괴성을 주로 탐구해온 캐나다를 대표하는 기록작가. 1921년 오타와 출생. 지은 책으로『잊혀진 미래』『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 『울지않는 늑대』『죽음을 위한 고래』 등이 있음.

   • 낭독_ 김상현 – 성우.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창피해>, 방송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에 출연.
• 출전_ 『잊혀진 미래』(달팽이 출판)
• 음악_ cine music /senstive/tender vol.1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이할미우트는 캐나다 북부에 살았던 이누이트 부족이었습니다. 사슴사냥으로 살아왔기에 사슴의 부족으로 불렸죠. 그래서 이 책의 원제목은 『People of the Deer』입니다. 그들은 1886년에 칠천 명이었는데 1946년에는 고작 마흔 명 정도로 줄어들어버렸습니다. 짐작되시지요? 맞습니다. 멸망해버린 거죠. 아메리카 내륙 인디언처럼 이할미우트도 백인들의 현대문명과 접촉함으로써 비극적인 쇠락을 맞아버린 또 하나의 부족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그리고 있죠. 가족의 굶주림을 바라보다가 스스로 사라져버린 할머니는 그 중의 한 명일 뿐이고요.
이 인용문 뒤로, 바람을 마주하고 선 그녀의 아들이 어린 시절 배웠던, 새로 죽은 자를 향해 말하라고 배운, 그 말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숙연한 장면입니다. 백인들은 인류 최고의 시인들을 죽여 버린 셈이기도 합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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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참쓸쓸한 밤이네요. 마치 고려장을 보는 듯. 위대한 한사람의 인생이 그대로 사라지는 듯하여 마음이 아프네요.

    • 2013-06-19 14:45:5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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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눈보라와 어둠이 가져간 많은 사연들이 제대로 잠잘 수 있기를...

    • 2013-06-13 23:51:1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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