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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중에서

  • 작성일 2013-07-11
  • 조회수 1,904





“서효인은 작가들로 이루어진 사회인야구팀 구인회의 포수이다. 2013년 6월 현재 통산타율 3할3푼3리. 지난 3년간 도루 저지 3개. 홈런 없음. 최근 중견수로 포지션을 이동 중이다.”



서효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중에서


우리는 때로 쉽게 본헤드가 된다.

내 친구는 술 마시고 꼭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를 건다. 멀쩡한 정신에는 그저 '자니'라는 문자를 보내고, 답이 오지 않으면 괴로움과 창피함에 밤을 새는 소심한 녀석이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전화를 건다. 받을 때까지. 받으면 무슨 말인가를 하다가 울고, 받지 않으면 그래도 무슨 말인가를 하면서 운다. 본헤드다.

어떤 대학 교수는 행사마다 모인 대학원 제자 및 강사들과 술잔을 한번씩 모두 돌려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그래서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중년의 학자는 몸을 가누지 못하게 마련이다. 겨우 1차 회식 자리였던 삼겹살집 앞이었다. 대로변에서 그는 바지를 벗고 오줌을 누었다. 해는 아직 떠있었다. 본헤드다.

어떤 선배는 술을 마시면 주먹이 운다. 그의 주먹이 울까봐 주위 사람은 늘 전전긍긍해야 한다. 옆 테이블의 건장한 남성들과 싸움을 붙이고 본인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라진 주먹의 울음 때문에 우리는 진짜 울어야 했다. 본헤드다. (중략)

술을 먹고 실수하는 당신과 나와 또 다른 당신은 인간이라는 종의 연약한 면모를 아주 잘 보여주는 일종의 연합체이다. '개 됐다'는 말은 삼가자. 그의 본헤드 플레이를 본 우리가 욱하는 마음에 '개' 라고 칭한 야구선수는 지금 막심한 후회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멍청한 행동은 앞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실수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니까.

너무나 인간적인 그.

격려와 욕설의 회오리 속에 있는 사람.

이를 줄여서 '본헤드'라고 부르자.



작가_ 서효인 – 시인. 1981년 목포 출생. 2006년 시인세계로 작품활동 시작. 김수영 문학상 수상. 지은 책으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의 행동지침』,『백 년 동안의 세계 대전』 에세이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등이 있음.

낭독_ 송명기 – 배우. 연극 <위기의 햄릿>, <다락방> 등에 출연

출전_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다산책방)

음악_ tune Ranch /institional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Bone head. 두뇌의 회전이 기민하지 못한 사람, 즉 바보나 얼간이를 지칭하며 야구에서 본헤드 플레이라고 하면 수비나 주루 플레이를 할 때 판단을 잘못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뜻하죠. 그렇지만 정작 본헤드라고 이름 지어 불러버리면 더 이상 욕할 게 없어집니다. 본헤드잖아, 하면 되니까요. 심지어는 용서받을 준비도 되어버리죠. 지름신이 내려왔어, 말에는 그것은 내 탓이 아니야, 라는 뜻이 숨어있으니까요.

저는 실수를 안 하려고 애쓰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매 순간 순간이 부끄럽습니다. 제기랄, 이래서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프랑스 어떤 시인은 ‘몸을 지니고 있으니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요’ 라고도 했다는데 (물론 프랑스 말로) 그 말을 따르면 우리 인류 자체가 처음부터 본헤드이지 않겠어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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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본헤드- 이 짧은 글에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본헤드다. 감칠맛나는 송명기님의 낭독 빗소리와 함께 들어서인지 한 편의 짧은 음악같다. -좋은 글 골라주신 작가님 좋은 낭독으로 깊은 울림을 주신 배우님 고맙습니다.

    • 2013-07-12 13:00:5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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