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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해열」

  • 작성일 2013-07-29
  • 조회수 1,565



김성규, 「해열」



소태나무에 홍학이 내려앉는다

잎사귀가 하늘에 긁힐 때 구름이 붉게 물든다

나무 꼭대기에 지어진 둥지


맨살의 새끼들 소리 없이 둥지 아래로 떨어진다

가난이 재난을 찾아가듯

재난이 가난을 찾아내듯

자고 일어나면 병이 깊어지는 아이


이슬에 살이 젖어 흙바닥에

죽은 홍학의 새끼

분홍빛 살을 물고 사라지는 들쥐들


한 여자가 밭둑에서 소태나무 가지를 꺾는다

새의 날개죽지처럼 마른 아이

끓어오르는 가마솥

시커먼 공기방울이 눈동자처럼 터진다


경기에 좋다는

소태나무 우린 물을

숟가락으로 젖꼭지에 흘려놓는 여인


젖이 불은 여자가 이마의 땀을 닦고

검은 눈동자를 삼키는 아이

열에 들떠 홍학의 울음을 터뜨린다



● 시·낭송_ - 김성규 - 197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고,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독산동 반지하동굴유적지」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으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가 있다.

● 출전_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창비)

●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홍학이 어깨를 추켜세우며 내려앉는 나무와 그 등성이의 풍경이라면 지극히 아름답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게다가 노을이 지는 저녁의 그 한가롭고 먼 풍경은 과열된 삶의 해열제도 될 수 있겠지요.

헌데 한 발짝 더 다가가 보니 눈물겨운 일이 있었군요. 홍학이 깃든 소태나무 가지를 애를 업은 젊은 엄마가 꺾고 있습니다. 그바람에 소태나무 잎사귀들에 ‘하늘이 긁혀’ 붉게 물들었습니다. 홍학의 새끼들은 맥없이 떨어지고 들쥐들이 물어갔습니다. 경기를 앓는 아이를 살리는 일이 그만 홍학의 새끼를 죽이는 일이 되었으니 이 ‘재난’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가난한 젊은 엄마여, 부디 아이를 살렸기를. 가난한 홍학 일가여. 울음을 삭히고 다시 시작했기를.

이렇듯 생(生)의 이면에 눈을 주면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군요. 내가 죽인 것들, 내가 다치게 한 많은 것들 울음이 들려옵니다. ‘나도 살자고 그랬어......’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군요. 아름다운 풍경은 실은 아픈 풍경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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