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아이미,『산사나무 아래에서』중에서

  • 작성일 2013-08-08
  • 조회수 2,028



누군가 말했다. “가장 완벽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이다”


아이미,『산사나무 아래에서』중에서

쑨젠신은 징치우를 집에 데려다주려 했으나 징치우가 거절했다. 엄마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쑨젠신이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날도 벌써 어두워졌는데 밤길을 혼자 가려고?”

“정 걱정되면 강을 따라 배웅해주면 되잖아요.”

그래서 두 사람은 각자 강의 양쪽 기슭을 따라 걸었다. 징치우는 건너편의 쑨젠신에게 보이도록 최대한 강 쪽에 붙어 걸었다. 쑨젠신은 흰 러닝셔츠를 입고 손에 흰 셔츠를 들고 있었다. 얼마쯤 걷다 징치우가 멈춰 서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자 쑨젠신도 징치우와 마주 보는 위치에서 멈추고는 흰 셔츠를 든 손을 높이 들어 원을 그리며 흔들었다.

징치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투항하는 거예요? 왜 백기를 흔들고 그래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어 들릴 리 없었다. 징치우는 다시 얼마쯤 걷다가 또 멈춰서 쑨젠신을 바라봤다. 쑨젠신이 가는 걸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는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징치우가 어서 가서 여관을 찾아보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자 쑨젠신도 징치우 먼저 들어가라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어 쑨젠신이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내미는 게 보였다. 이번에는 손을 흔드는 게 아니라 징치우를 껴안는 것처럼 두 팔을 둥글게 내밀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징치우도 쑨젠신을 향해 두 팔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두 팔을 내밀고 강의 이쪽과 저쪽 기슭에 서 있었다. 혼탁한 강물이 그 사이를 흐르며 둘을 갈라놓고 있었다. 징치우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얼른 몸을 돌려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교문 뒤에 숨어 쑨젠신을 바라봤다.

쑨젠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두 팔을 내밀고 있었다. 쑨젠신의 등 뒤로는 기슭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머리 위 희미한 가로등이 흰옷을 입은 쑨젠신을 비추고 있었다. 작고, 외롭고, 처량해 보이는 모습으로……





● 작가_ 아이미 – 소설가. 중국계 미국인 작가. 인터넷 문학사이트 ‘문학성’에 소설 ‘산사나무 아래’를 연재하며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치명적인 따뜻함』, 『이인행』,『동조림』등이 있음.

● 낭독_ 백은정 – 배우. 연극 <메디어 환타지>, <이디푸스와의 여행> 등에 출연.

● 백익남 – 배우. 연극 <농담>, <피리부는 사나이> 등에 출연.

● 출전_ 『산사나무 아래』(포레)

● 음악_ signature collection /lite&easy mix2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아이고, 어쩌면 좋아요. 강물을 사이에 두고 이별하기 너무 싫은 청춘남녀라니요. 참 아련하고 안쓰럽고 그러면서 풋풋한 풍경입니다. 지나가는 사람 누구를 붙잡아 물어도 한 두 번씩은 있었던 기억. 헤어지기는 싫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는, 기찻길 같은 그런 모습. 하긴 사람과 사람이 폭발적으로 정이 드는 시간은 이별하는 순간이죠. 그 때의 기분과 기운 때문에 지지고 볶는 그 지난한 시간을 감수하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이별은 둘 사이에 거리를 끼워 넣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 청춘남녀처럼 서로를 향해 껴안는 포즈를 취하지만 결국 품안에는 텅 빈 허공만 남게 되겠죠. 어느 시인은 갈대가 허공을 움켜쥐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그렇다면 그 갈대는 사실 무엇을 움켜쥐고 싶은 것일까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2건

  • 익명

    청춘남녀의 모습이 그려지는듯 하네요.

    • 2013-08-10 14:51:11
    익명
    0 / 1500
    • 0 / 1500
  • 익명

    마지막 질문이 의미심장하네요. 다른 갈대를 움켜잡고 싶었던 건가요. 허공만이 남을 이별이 안타깝습니다.

    • 2013-08-09 15:50:02
    익명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