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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연꽃 못에 갔었네」

  • 작성일 2013-08-19
  • 조회수 2,272



이선영, 「연꽃 못에 갔었네」



연꽃 못에 갔었네

커다란 연꽃잎 진흙탕 가득 피어 있었네


누구의 빈 쟁반 같은 얼굴들일까

어렸을 때 안성 외가에서 먹어본 연밥

두리번거렸지만 연밥 따다줄 노옹은 보이지 않았네


못물에 발이 빨려들어갈까 두려웠네

연밥 따려던 옛 노옹들 몇이 더러는 실족했다지?

바닥 모를, 컴컴하고 아득한 거기서 저토록 천연하게 내민 얼굴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오기라 해야 할까 대찬 희망일까

비유라 해야 할까 던져진 질문일까

죽음의 진창에서 삶은 한층 요괴롭다는 듯

연꽃, 저 턱없는 긍정의 개화(開花)!



● 시·낭송_ 이선영 - 1964년 서울 출생.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오, 가엾은 비눗갑들』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평범에 바치다』『일찍 늙으매 꽃꿈』 등이 있음.

● 출전_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창비)

● 음악_ SHK

● 애니메이션_ 정정화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연꽃이 한창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로 가자면 양수리를 지나는데 거기 지날 때 눈 아래로 흰 것, 분홍의 것 가득 피어나고 있습니다. 진흙에서 피어난다 하여 여럿의 상징이 붙은 꽃입니다. 연꽃 피면 제 피어난 진흙 밭은 다 가려져서 없습니다. 꽃만 오롯합니다.

우리는 진흙탕 속에서 삽니다. 연꽃은 꽃을 피우지만 우리도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이 썩은 진창에서 말이에요. 이미 꽃이라고요? 맞습니다. 진흙 속에서 어영차 어영차 빛과 향기를 길어 올려서 웃음으로 만들고 환희로 만들고 연민으로 만들어냅니다. 때로는 부정과 분도의 빛깔을 내기도 합니다. 큰 긍정을 위한 한판 싸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에서처럼 연꽃은 ‘던져진 질문’입니다. 우리들의 지금 삶도 던져진 하나의 질문입니다. 그것도 실꾸러미 같은 질문입니다. 풀어내도 풀어내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끝이 보이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때로 ‘턱없는 긍정’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생활이 생활을 거부할 때입니다. 그럼에도 꽃임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꽃이니 모든 꽃에게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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