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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요법ZA

  • 작성일 2013-09-30
  • 조회수 289

서울에 위치한 어느 아파트. 시간은 막 오후 6시를 지나고 있었다. 런던 시간으로 말이다. 서울에서는 오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기온이 높은 여름밤이었다. 603호에 살던 철삼은 복도 쪽이 소란스러워 눈을 떴다. 높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잠결에 일순간 짜증이 솟아났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파트는 방음처리가 잘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이 열려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철삼은 몸을 일으켰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눈을 뜬 건 이 예감 때문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뇌리에 잠시 떠오르곤 사라졌다. 달빛과 야경의 불빛이 침대에서 일어서는 철삼의 몸을 비추었다. 그는 러닝셔츠에 팬티 차림이었다. 피부에 닿는 밤공기 때문에 몸이 덥고 눅눅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불빛에 의지해 철삼은 한걸음씩 앞을 살피며 발을 뗐다. 침대 옆에 선풍기가 있었다. 예약이 끝나 날개가 멈춰있는 상태였다. 그 주위에 있는 책상 하나와 의자 몇 개도 희미하게 철삼의 눈에 들어왔다. 철삼은 어느새 정신이 맑아진 상태였다. 어렵지 않게 그것들을 피해갔다. 철삼은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에어컨 정비를 하는 사람이다. 키가 2미터가 넘었고, 40대였지만 몸이 우락부락하게 근육질이었다. 근육이 많아서 체중이 150킬로그램이나 된다. 그야말로 근육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에어컨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은 야성적이라기보다는 징그러운 것에 가까웠는데, 얼굴까지 험상궂어 멀리서 봐도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성격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리 사교적이지 못했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여태까지 결혼을 못 하고 603호에는 혼자 살고 있는 남성이었다. 예상대로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왜 이게 열려 있지?’ 문을 잠근 기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그 일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 실제로 문을 안 잠갔을 리는 없었다. 관리실 사람이 뭔가를 잘못 건드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아파트에 있는 현관문은 모두 전자식이라 관리실에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살펴보니, 현관문이 열린 채로 잠금장치가 작동되어 있었다. 잠금장치에서 튀어나온 쇠막대 때문에 문이 닫히지 않았다.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어어어어어어.” “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극그그그극그극그그.” 언어가 아닌 무의미한 소리였다. 일상적인 상황에선 듣기 힘든 소리였지만 철삼에겐 익숙한 소리였다. 그래서 철삼은 누가 저 소리를 내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 지금 일어났다는 사실이 철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설마, 설마 하며, 철삼이 고개를 내밀자 예상했던 대로 좀비를 볼 수 있었다. 철삼은 다시 고개를 집어넣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방안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십오 년 전이다. 정부가, 그리고 신문이, 이제 좀비는 멸망했다고 말했던 것이.

20년 전인 2010년, 훗날 좀비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세계 각지에 나타났다. 바이러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영화나 소설에 많이 나오는 좀비처럼 그 모습이 변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성을 잃고 흥분한 것처럼 행동한다던가, 인간을 공격한다던가, 뇌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던가, 좀비에게 물리면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된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야말로 평범한 좀비였다. 감염자는 삽시간에 수십 수백 배로 늘어났다. 군대는 수많은 지역을 폐쇄했다. 그리고 병사를 투입해 좀비를 죽였다. 시가지가 아닌 경우에는 미사일을 쐈다. 철삼은 바이러스가 퍼질 당시 군인이었다. 미사일로 못 죽인 좀비들을 처치할 때나 시가지에서 싸울 때, 혹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좀비가 쳐들어 올 때 크게 활약했다. 그와 같은 작전을 수행했던 유엔군 소속 군인들은 그에게 여러 가지 별명을 붙였다. 미스터 아이언, 세븐틴 암스, 포 핸즈, 블러드 헤라클레스, 몬스터, 좀비 머더러, 슈퍼 솔저……. 좀비와의 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과는 다르게 인류가 우세했다. 바이러스 감염자가 인류의 20% 이상으로 늘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첨단무기를 다루는 인간이 질 리가 없었다. 좀비의 숫자가 인류의 20% 이상으로 늘어나지 않았던 것은 사람 열 명당 여덟 명 꼴로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들 때문에 이 사실이 밝혀지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는데, 그동안 많은 좀비들이 죽었다. 좀비 바이러스가 나타난 지 반년 만에 백신이 만들어졌다. 주사기로 빨아들인 액체로 된 백신 5ml를 몸 아무데나 꽂고 투여하면 된다. 그러면 좀비는 잠시 후 사람이 된다. 3년 동안 그 작업이 이루어졌다. 철삼도 그 일을 했다. 살릴 수 있는 좀비는 많지 않았다. 예를 들면, 팔다리가 뭉개진 좀비에게 백신을 투여하면 그 좀비는 잠시 후 인간이 되어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고통스럽게 죽기 때문이다. 많은 좀비들이 죽었다. 그것은 곧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철삼은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이다. 3년간의 작업 후, 신중하게 일년하고도 반년을 살펴본 후에야 이제 지구상에서 좀비는 사라졌다는 발표가 났다. 좀비에서 인간이 된 사람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사회에 복귀했다.

백신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 중에는 박사도 있었다. 박사는 인간이 된 후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 연구했다. 박사가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을 아는 몇몇 사람들은 박사의 집 지하실에 좀비가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철삼의 친구 중에는 영기라는 남자가 있었다. 영기는 고등학교에서 만나 같은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도 같이 들어갔던 친구로, 사실 이런 동행은 그저 우연일 뿐 절친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딱히 만류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군대에 같이 갔던 만큼 영기도 좀비와 싸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철삼이 영기와 같이 싸운 건 불과 3개월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싸우던 도중 영기가 좀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영기는 20대 여성 좀비에게 옆구리 물려 좀비가 되었다. 옆구리가 파인 자국은 지금도 남아있었다. 영기가 좀비가 된 날 이후 둘이 처음으로 재회한 것은 8년 전으로, 철삼이 이 아파트로 이사 온지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당시 영기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 아파트의 수위였다. 둘은 영기의 당직 시간 때문에 며칠간 못 마주치다가 우연히 아파트 복도에서 만나게 되었다. 11년만이었지만 둘은 서로를 알아봤다. 영기는 여전히 얼굴이 길고 몸이 왜소하고 피부가 거칠거칠했다. 좀비가 되었을 당시에는 양쪽 다 자랄 만큼 자라 있었기에 얼굴이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까이 살고 있었기에 둘은 시간이 나면 꽤 자주 만났다. 어느 날 영기가 말했다. “너 ZA라고 알아?” “ZA?” 들어본 적 없었기에 철삼은 고개를 저었다. 영기가 말했다. “Z는 zombie라는 뜻이야.” 그것만으로 철삼은 ZA가 수상쩍게 느껴졌다. 철삼이 말했다. “A는?” 영기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몰라, abide인가?” 철삼은 모르는 단어였다. 옛날에도 공부는 잘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인과도 곧잘 얘기했다. 영기가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둘은 옥상에 있었다. 연기가 하늘색을 향해 올라가다 허공에서 희미해졌다. 철삼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문득 예전에도 영기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한 채 담배를 권했던 것을 떠올렸다. 철삼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영기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ZA는 생활요법이야. 반식욕 하는 거랑 똑같은 거라고.” “그러니까 ZA가 뭔데.” “좀비 바이러스를 맞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철삼은 어이가 없어졌다. 영기는 진지한 표정으로 철삼을 돌아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친구니까 말해주는 거야. 근처에 Zalza라는 카페가 있거든. 거기 지하에서 ZA를 해줘. ZA라는 건 정확히는 좀비 바이러스 몸에 투여했다가 일정시간 후에 백신을 맞는 거야.” 영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말을 이어갔다. 오른손에 든 담배는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넌 좀비라고 하면 끔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좀비 상태가 되는 게 엄청 좋은 거거든. 좀비일 때는 엄청 행복해진다고.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져. 해탈에 가깝지. 근데 이게 마약과 다른 점은 중독성이 없다는 거야. 금단증상도 없고. 온천에 몸을 푹 담그고 있는 거라던가, 안마를 받는다던가, 그런 거랑 비슷한 거지.” 철삼이 입을 열려고 했으나 영기가 말을 끊었다. “넌 항체가 있다고 했지? 그래도 상관없어. 옛날 옛적에 신약이 개발됐거든. 이전에 항체를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도 100% 통한데.” 철삼은 고개를 저었다. 좀비가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좀비 자체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기엔 너무 많이 죽였다. 속죄하는 입장이기에, 같은 존재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영기는 얼마간 더 철삼을 설득하려 했으나 철삼은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영기는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좀비는 굉장하다고. 어쨌든 세간의 시선이 아직 ZA에 호의적이지는 않으니 이 얘기는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

‘그랬군. 그 녀석 짓이야.’ 철삼은 영기의 얼굴을 떠올리며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재빨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복도에 있는 좀비들은 이웃사람들이었다.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좀비 바이러스를 아파트 사람들에게 뿌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터였으나, 철삼이 간과한 건 영기는 이미 ZA라는 마약에 빠져있는 비정상인이었다는 것이다. 철삼은 다가오는 좀비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한층 씩 내려가면서 언뜻 본 각층 복도들에는 모두 좀비들이 걸어 다녔고, 복도 벽 양편에 늘어선 문들은 모두 열려 있었다. 관리실 사람의 짓이리라. 좀비들은 열려있는 문틈을 향해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시간은 한밤중이었다. 다들 자고 있는지 문을 막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도어체인이 없기 때문에 좀비가 쉽게 드나들었다. 철삼은 아래층을 향해 계속 뛰어갔다. 다행히 계단을 막는 좀비는 없었다. 그러나 좀비들이 있었다고 해도 위험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철삼은 조급하지 않았다. 철삼의 심장은 평상시와 똑같은 속도로 뛰었다. 전쟁 때는 좀비들을 맨주먹으로 상대해야 할 때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좀비를 죽였던 철삼에게 좀비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데다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무엇보다 좀비가 된들 백신이 있으니 죽을 걱정이 없었다. 다만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기에 좀비를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 철삼은 생각했다. ‘영기는 ZA에는 후유증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뭔가 있었던 거야. 그래서 정신이 이상해진 녀석이 사람들에게 ZA를 뿌리고 다녔다. 그런 시나리오인가.’ 1층에 도착한 철삼은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정문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바깥 풍경이 보였다. 밖에서는 가로등 불빛을 받은 아스팔트 도로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평온해 보였다. 바깥에까지 바이러스가 퍼진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철삼은 문을 밀고 나가려 했다. 문은 잠겨 있었다. “뭐야 이거!” 철삼은 손잡이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잠금장치에 걸려 덜컹거리기만 했다. 철삼은 아파트 정문을 깨야 하나 생각했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만두기로 했다. 강화유리로 되어 있을 이 유리문은 조금 힘을 쓰면 깨지겠지만 만약 이 유리문을 깬다면 아파트에 있는 좀비들이 바깥으로 뛰쳐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과 좀비들이 다칠 것이다. 그때 철삼은 이 사태를 119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휴대폰을 챙기지 못한 것이었다. 문득 뒤를 보니 좀비가 된 20대 청년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어어어.” 철삼은 기다리고 있다가 유도 기술을 응용해 좀비를 자기 뒤로 집어던졌다. 땅바닥에 떨어지는 좀비를 보며 크게 다치지 않기를 속으로 바랐다. 어차피 백신을 맞고 다시 사람이 될 좀비들이기에 큰 부상을 입히는 건 껄끄러운 일이었다. 근처에 있던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건 후 철삼은 생각에 잠겼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좀비들은 인간이 있는 곳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현관문을 잠글 수 없는 상태인 지금 집에 숨어있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나무문 정도는 좀비들이 쉽게 부술 수 있으므로 방안에 숨는 것도 위험했다. 그냥 큰 부상 없이 좀비가 된 후에 백신을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다. 좀비는 의외로 온순하다. 주위에 인간이 있을 때는 얼핏 광분한 듯 보이지만, 막상 인간을 붙잡아도 조금 깨물기만 할 뿐 별다른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이 동족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대부분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철삼에게 좀비가 된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철삼은 고개를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나저나 영기는 어디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할 때, 불현듯 철삼의 뇌리에 한 장소가 스쳐지나갔다. ‘옥상!’ 바람을 쐬기 위해 옥상에는 자주 올라가는 편이었다. 옥상문은 거의 항상 열려있는 편이지만, 들락날락 할 때 분명 문에 빗장이 달린 걸 본 기억이 있었다. ‘백신이 오기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지. 젠장, 너무 느린데.’ 더 이상 백신을 쓸 일이 없어진지 십오 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수많은 백신들이 폐기되거나 창고에 들어가 있었다. 이곳이 소도시인 점을 포함해 여러 가지 요소가 백신이 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3시간 동안 철삼은 좀비들이 활보하는 아파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기는 걱정 말고 빨리 백신 가져오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고 철삼은 후회했다. 철삼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려올 때와는 달리 체력을 안배하면서 움직였다. 이 아파트는 15층 건물이었다. 전력질주 하다가 혹시라도 지쳐있는 상태에서 좀비를 만난다면 낭패였다.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층계참에 불이 들어왔다. 좀비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복도에 울려 퍼졌다. 철삼은 침착하게 옥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는 사이에 공격당하는 터라 비명도 별로 없었다. 3층 층계참에 올라왔을 때였다. 좀비들의 기괴한 음성 사이에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꺄악!” 여성의 비명은 3층 복도 쪽에서 들려왔다. 철삼은 멈춰 서서 잠시 고민했다. 가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해답은 금방 나왔다. 자기도 피하고 있는 처지에 저렇게 무서워하는 듯한 사람을 놔둘 수는 없는 것이었다. 50미터 정도 되는 복도에서 10여 명의 좀비가 한 장소에 모여 있었다. 307호 앞이었다. 좀비들뿐만 아니라 비명을 지른 여성도 있었다. 20살 전후로 보이는 그 여성은 현관문이 열리지 않도록 붙잡은 채, 집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한 청년 좀비의 몸 이곳저곳을 울음을 터트리면서 식칼을 쥐고 엉망진창으로 찌르고 있었다. 청년 좀비는 피를 뿜으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눈에 불이 튀었다. 철삼은 307호 앞을 향해 어깨를 내밀고 달려갔다. 키가 2미터에 체중이 150킬로그램이 넘는 인간공성추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고, 자기 쪽으로 시선을 돌린 좀비들 10여명을 몇 미터나 뒤로 날려 보냈다. 그렇게 현관 앞을 정리한 철삼은 좀비들이 악전고투하던 현관문을 한손으로 가볍게 밀치고는 안에 있던 여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여자는 잠시 저항하려 했지만 철삼의 우악스러운 힘에는 버틸 수가 없었다. 철삼은 여성을 데리고 달렸다. 복도에서 모퉁이를 돌아 계단으로 한 층 올라갔을 때야 철삼은 손을 놓았다. 307호 여성은 숨을 헐떡거리며 철삼을 쳐다보았다. 철삼은 여성을 살펴보았다. 단정하게 생긴 미인이었다. 키는 165정도였다. 자신보다 한참 작았다.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왜 뿔로 만들지도 않은 안경테를 뿔테라고 부를까. 이 와중에도 그런 사소한 의문이 떠올랐다. 여성이 철삼에게 붙잡혔던 팔을 문지르다 고개를 숙이며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여성을 몇 달 전에 본 기억이 철삼에게 남아 있었다. 올해 봄에 이사 왔던 여자였다. 아파트 전체에 떡을 돌릴 때 통성명을 했던 게 기억나서 철삼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연희……씨, 지요?” 연희는 철삼이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에 놀란 듯 크게 눈을 떴다. 그때 좀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에 둘은 위로 뛰어올라갔다. 철삼은 단숨에 두 층을 올라갔는데, 연희가 한참 뒤떨어졌다. 철삼이 체력을 안배한다고 천천히 뛰었지만 연희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던 것이다. 한 층 더 올라가서야 철삼은 연희가 따라오지 않는 다는 걸 눈치 채고 6층 층계참에서 걸음을 멈췄다. 난간 너머로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연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은 막힌 벽에 반사되어 울려 퍼지는 좀비들의 음성뿐이었다.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6층 복도에서 좀비 셋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철삼은 고민했다. ‘어쩌지?’ 내려갔다가는 포위될 위험이 있었다. 사실 철삼의 걸음이라면 좀비들이 추격할 걸 걱정할 필요 없이 옥상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철삼은 뒤쫓아 올 좀비는 걱정하지 않았다. 앞을 가로 막는 좀비가 문제일 뿐이었다. 연희의 얼굴이 철삼의 눈앞에 떠올랐다. 어쩌면 좀비들에게 둘러싸여서 크게 다칠지도 몰라. 철삼은 아래로 뛰어갔다. 연희는 4층에 있었다.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팔과 다리로 밀쳐내며 처음부터 들고 있던 식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정확하게 턱 밑을 통해 뇌까지 칼날에 침투당한 좀비는 움직임을 멈추기도 했다. 좀비는 칼에 찔려도 근육이 거의 수축하지 않기 때문에 칼날을 빼내는 게 쉽다. 좀비를 상대로 도검을 사용해본 철삼이기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철삼은 달려 내려가 네다섯의 좀비들을 계단 아래로 밀었다. 좀비들이 균형을 잃고 계단 아래로 굴러갔다. 주위가 정리되자 연희의 손에서 식칼을 빼앗아 복도 쪽으로 집어던졌다. 철삼이 연희를 붙잡고 소리쳤다. “여기선 저런 위험한 물건은 필요 없어!”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었다. 철삼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좀비를 내려다 봤다. 누군가에게 밀쳐져 쓰러진 자세 그대로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죽어 있었다. 흰색 잠옷을 입고 있는, 중학교에 다닐 나이로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좀비들이 일어나서 자신을 쫒아오고 있었다. 철삼은 다급했다. 연희를 들쳐 메고 달렸다.

5층과 6층 사이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좀비와 마주쳤다. 위쪽에서 덤벼드는 좀비는 껄끄러웠다. 잘못 집어던지면 좀비를 크게 다치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철삼은 고개를 들고 위층을 살폈다. 좀비가 더 몰려오고 있었다. 철삼은 아래로 내려갔다. 5층에서 올라오는 좀비들을 떨쳐내며 5층 복도로 밀고 들어갔다. 이 아파트에는 계단이 두 곳 있다. 다른 쪽 계단에는 좀비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자신을 쫓아오느라 복도에는 좀비가 많지 않았다. 좌우 현관문들은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좀비가 드나든 흔적이었다. 그때 연희가 두 손으로 등을 두드리며 몸부림을 쳤다. “내려주세요.” 철삼은 반대쪽 층계참까지 간 후 연희를 내려놓았다. 연희는 잠시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날카로운 눈초리로 철삼을 올려다보았다. 뭐라 말하려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는데, 마침 복도 저편에서 좀비들이 달려오는 게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철삼은 위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고, 연희는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철삼은 아래로 내려가는 연희를 보고 당황해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철삼이 먼저 계단을 내려가 연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래쪽 계단에 서있으면서도 연희보다 컸다. 철삼의 위압적인 몸집에 연희가 주춤했다. 연희가 당혹스러워 하는 기색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왜, 왜 그러세요? 가, 갑자기?” 철삼이 말했다. “1층 출입구는 잠겨 있어요. 그리로는 못 갑니다.” 연희는 철삼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연희는 안경을 벗고 눈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아냈다. 다급히 움직이느라 어느새 긴장하고 있던 것이 풀려 다시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눈물은 잘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철삼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그걸 깨닫고 조금 놀랐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긴장을 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좀비가 아닌 연희를 상대로 말이다. 철삼은 그럼 심정을 감추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옥상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거기까지 가면 안전합니다.” 철삼은 느긋하게 말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듯 연희의 팔을 잡고 계단 위를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연희의 걸음에 맞추어 뛰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계단을 뛰어올라가며 철삼은 말을 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전쟁 중일 때는 어리셨을 것 같은데, 이런 일은 처음이신가요?” 연희는 따라가기 힘들다는 듯 거친 호흡소리만 낼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철삼은 계단을 오르는 속도를 조금 더 늦추며 연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연희는 여전히 철삼을 따라가며 전보다 조금 나아진 상태로 짧게 말했다. “네.” 연희가 조금 후에 물어왔다. “그럼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철삼은 호흡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옥상이죠. 거긴 빗장이 달려 있거든요.” 둘은 불이 들어오는 층계참을 목표로, 도착하고 나면 다시 다음 층계참을 목표로 하며 계속 달렸다. 좀비 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철삼은 뒤로 고개를 돌려 연희의 얼굴을 살폈다. 쉬지 않고 몇 층을 연달아 뛰어올랐는데도 크게 지쳐 보이지 않았다. 가냘파 보이는 몸이지만 체력이 꽤 좋은 듯 했다. 방금 전에 힘들어했던 건 자기가 너무 빨리 끌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9층까지 올라왔을 때였다. 연희가 휘청거리더니 난간을 잡고 몸을 지탱했다. 철삼이 연희를 내려다보았다. 연희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슬리퍼가 떨어졌어요.” 내려다보니 슬리퍼에서 발등을 감싸는 부분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철삼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서있었다. 연희는 숨을 고르곤,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철삼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맨발로 가도 상관없는 건가요?” “뭐, 그렇지만…….” 철삼은 말을 흐리며 고개를 젓고는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업어 드릴게요.” 스무 살이나 어린 사람한테 왜 이렇게 긴장해야 하나 생각하며 철삼은 연희의 몸이 등에 닿은 것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철삼은 둘이서 뛸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럼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아서 옥상으로 가는 건가요?” 철삼은 대답을 주저했다.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좀비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인간으로 남아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여긴 11층이에요.” 계단을 돌며 옆을 보니, 철삼의 대답을 짐작한 듯 연희는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이 11층을 지나칠 땐 이미 11층부터 15층까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된 상태였다. 다른 목표물이 없던 좀비들은 철삼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좀비들은 대체로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좀비는 되살아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기도 했다. 창자를 쏟아져 나와 있거나, 목에 깊은 칼자국이 나 있는 등 처참한 상태였다. 누군가가 저항을 했던 걸까. 철삼은 안타까웠다. 그나마 위안인 건 그 정도로 처참한 좀비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철삼은 빽빽하게 진로를 가로막고 있는 좀비들을 보고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좀비들은 물밀듯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성을 잃고 달려오는 좀비의 파도. 자기 혼자 마음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면, 그리고 좀비와 싸울 수 있다면 문제는 없는 상대였다. 그렇지만 등에는 연희가 업혀 있었고, 예전처럼 좀비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때 철삼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철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좀비들을 바라보았다. 좀비들은 전쟁 때의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2011년 3월. 서울에서 싸울 때, 그는 연합군으로부터 미스터 아이언이라고 불렸다. 거기엔 감출 수 없는 찬사가 담겨 있었고, 뜻은 ‘강철 같은 사나이’였다. 2011년 5월. 철삼은 동기가 악력으로 달걀을 깨보라고 했을 때 4.53초 만에 달걀 한 판을 모두 깨뜨렸다. 그 동기는 ‘한 판을 다 깨라는 건 아니었는데, 저녁 반찬인데’라고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시간대가 손이 두 개여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해서 철삼에게 포 핸즈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2년 1월. 장정 8명과 줄다리기를 이긴 철삼에게 세븐틴 암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3년 8월. 지프가 10미터 낭떠러지에 빠져있을 때, 시동이 꺼진 지프와 자기 몸을 밧줄로 연결하고 걸음을 내딛으며 혼자서 지프를 도로까지 끌어올려서 언빌리버블 레그라며 극찬을 받았다. 그 외에도 철삼에겐 수많은 별명이 붙어 있었다. 에그 디스트로이어, 터미네이터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인간, 21세기의 헤라클레스, 무적의 사나이, 슈퍼 솔저, 아갓뜨파워……. 그런 별명들이 붙은 역사들을 하나하나 되짚다보면, 이미 인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좀비 학살자일 때의 별명이었다. 철삼은 더 이상 좀비를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백신을 쓸 수 없는 좀비들을 태우며 그렇게 다짐했다. 좀비가 멸망했다는 말에 여태까지 신경 쓰지 않았었을 뿐,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훌륭한 근력이란 건 좀비를 죽일 때만 쓸모 있는 게 아닐 것이었다. “지금부터 떨어지지 마.” 철삼은 비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후, 계단 난간을 디디며 바깥과 접하고 있는 벽 높은 곳에 위치한 창문을 향해 뛰어 올랐다. 연희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압력에 조금 겁을 먹으며 철삼의 허리와 목을 꽉 끌어안았다. 철삼은 날아오르며 주먹으로 정확히 창틀을 때렸다. 창문이 벽에서 뜯어져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철삼은 그대로 뻗은 손으로 바깥쪽 창턱을 쥐고 버텼다. 밑에서는 좀비들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높이에서는 좀비들의 손이 닿지 않았다. 철삼은 다른 손도 뻗어 창턱을 쥐고 몸을 끌어당겼다. 창문이 상당히 넓어서 연희를 엎고 있는 상태에서도 배를 깔고 창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철삼은 옆으로 몸을 뒤집으며, 손으로 안쪽에 있는 위쪽 창턱을 잡고 아래쪽 창턱에 발을 딛고 섰다. 눈앞에는 아파트의 외벽이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외벽의 끝을 보기 위해선 몸까지 뒤로 젖혀야 했다. 옥상까지는 제법 멀어 보였다. 그러나 이곳이 12층이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닐 것이다. 신발은 지금 상황에선 방해가 될 것이다. 발끝의 감각을 믿는 것이 나았다. 철삼은 신발을 벗어던졌다. 그런 후 그는 연희에게 조심하라고 말한 뒤 건물 외벽의 얇은 틈을 손가락 끝으로 붙잡고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철삼의 큰 신장이 도움이 되었다. 얇은 틈은 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그에게는 큰 문제없었다. 밤바람이 세게 불어 위태하게 느껴졌다. 철삼은 침을 삼켰다. 여기서 떨어지면 아무리 그라도 위험했다. 연희가 더 몸을 조여 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 때문에 몸이 차갑게 식었지만 신체가 맞닿아 있는 등 쪽만은 추위를 잊게 해줄 만큼 뜨거웠다. 철삼은 천천히 벽을 올랐다. 잠시 후 그는 어렵지 않게 13층 창턱에 두 손을 얹고 매달릴 수 있었다. 철삼의 악력과 상체 근육으로는 연희를 등에 업고 있어도 한 손으로 매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다른 손으로는 연희를 안정감 있게 받쳐줄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세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철삼 자신의 몸무게였다. 철삼의 몸무게는 150킬로그램이 넘었다. 그는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두 손을 사용해야 했다. 어딘가로 안전하게 이동하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방법으로, 가장 안전해 보이는 길을 선택해,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때에 이동하는 것이다. ……도착했다. 철삼은 옥상 난간을 타넘어 옥상에 착지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쉴 틈도 없이 열려있는 문으로 달려가야 했다. 문 너머로 벽을 기어오를 때 같이 따라왔던 좀비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철삼이 더 빨랐다. 그는 여유롭게 문을 닫고 빗장을 잠갔다. 문이 쾅쾅 울렸다. 좀비들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하지만 문이 부서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문이나 빗장이나 둘 다 쇠로 되어 있었다. 문이 이렇게 튼튼하면 오히려 좀비들의 뼈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철삼은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서야 연희가 등에 얼굴을 묻은 채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눈앞에 밤하늘이 펼쳐졌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아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순간 때마침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철삼을 지나쳐 갔다. 철삼은 그제야 악취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둠에 눈이 적응한 후 도시의 풍경이 철삼의 눈에 들어왔다. 뒤를 제외한 삼면의 발아래가 깜깜했다. 전기를 절약하고 있는 도시가 포근한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점점 도시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연희의 시선은 아니었다. 숨을 들이키며, 섬뜩한 기분을 느낀 철삼은 재빨리 옆을 돌아보았다. 잠시 동안 긴장한 상태로 있었으나, 곧 시선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쪽을 보고 있던 것은 옆 건물 옥상에 있던 중년 남성이었다. 어둠에 시야가 가려져 있는 상태였지만,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붉은 점 같은 담뱃불과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연기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좀비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이후 철삼과 연희는 옥상 난간에 등을 기댄 채 말없이 있었다. 옆 건물에 있는 남자의 존재는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를 철삼과 연희 단 둘만 있을 때에 흐를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연희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돌아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득히 멀어 보이는 아래. 연희가 있는 아파트의 정문으로 차량과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닫혀있는 문을 깨뜨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드디어 백신이 도착한 것이다. ‘끝인가.’ 조금 있으면 구조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별로 시간이 남지 않았다. 뒤돌아선 연희는 문득 용기를 내서 철삼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도움을 받은 이상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얼마간 기다리니, 철문 너머에서 들리던 좀비들의 기척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닫혀있는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은 포기하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구조대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둔중한 날개소리를 내며 헬기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연희와 철삼은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태워달라고 소리쳤다. 아래로 내려가려던 헬기는 방향을 바꿔 옥상에 착륙했다. 둘을 실은 후 헬기는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 헬기는 추가 백신을 실고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헬기에 타고 있던 사람은 헬기에서 백신을 내려 대기하던 구조대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철삼과 연희는 헬기에서 내려왔다. 주위는 앰뷸런스의 요란한 소리와 좀비에서 인간이 된 사람들의 신음소리, 구조대원들의 다급한 목소리로 소란스러웠다.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방금 둘이 내린 헬기는 위급한 부상자를 실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친 사람 중 절반은 구조대원이었다. 많은 수의 좀비가 무지막지하게 달려들다 보면 좀비에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다치게 되는 것이다. 좀비였던 사람들 중에서도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좀비였을 때 몰려다니다가 다쳤거나 인간이 저항을 한 경우이다. 철삼도 아파트에 있을 때 그런 좀비를 봤었다. 그 현장 한가운데에서 둘의 걸음이 멈췄다. 누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이 통했던 것이다. 연희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철삼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당분간은 부모님 집에 있어야겠어요.” 옥상에 있는 동안 둘 사이는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연희가 금방 구조 받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둘은 꽤 오랫동안 옥상에 있었다. 이런 구조 작업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덕에 둘은 여러 가지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철삼은 고개를 끄덕이곤 잘 가라고 말했다. 연희가 멀어져 갔다. 철삼은 옥상에서 연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연희는 이제 이사를 갈 거라고 말했다. 좀비가 활보했던 아파트이니 꺼림직 할 것이다. 게다가 연희는 기억하기론 좀비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충격이 클 것이다. 그렇게 거리낌 없이 좀비를 헤쳤던 것도, 단지 좀비를 인간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 들면 눈앞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생각 없이 손으로 흩트리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본래 심성은 착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담배연기를 식칼로 찌르진 않을 텐데. 게다가 그렇게 사람의 육신을 찔러댔으면서 꽤나 멀쩡해 보이지 않았나. 오히려 벽을 오를 때 더 무서워했던 것 같아. 고소공포증인 건가.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일부러 그렇게 말해보았다. 그때 문득 철삼의 뇌리에 영기가 떠올랐다. 이번 일의 원흉이었다. ‘그 자식, 대체 무슨 낯을 하고 있는지 한번 볼까.’ 정문만 보고 있으면 좀비였던 사람이 실려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철삼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고 영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정문을 주시했다.

영기를 발견했다. 제복을 입고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영기는 간이침대에 실려 오고 있었다. 철삼은 영기에게 다가갔다. 영기의 얼굴에서는 공포와 광기가 드러나 있었다. 그는 뭔가를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철삼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철삼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영기는 피투성이였다. 영기도 ‘심하게 다친’ 좀비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영기에게 다가갔다. 몇 마디지만, 철삼은 그 횡설수설하는 목소리를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더 잘 듣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영기는 몸 여기저기를 칼로 찔린 듯 했다. 몸이 너덜너덜했다. 계속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영기의 입에서 피가 쿨럭 하며 튀어나왔다. 영기는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럴 수가. 영기의 말을 들은 철삼의 발이 어느 순간 멈춰 있었다. 전신으로 일순간 한기가 퍼져나갔다.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 여자가 그랬어, ……그 여자가 내 몸을……칼로 찌르고……혈관에다 ZA를 흘려보냈다고……. 그 여자가……커피에다……이상한 짓을……했단 말이다……, ……그 307호 여자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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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어떤가요. 제가 어려서 그런지 문장에서 어린 티가 난다거나, 아마추어틱하다거나, 미숙하더간 하는 게 걱정이 됩니다.

밑에 있는 글은 최근에 썼고, 이건 작년 8월에 썼습니다.

근데 이거 한글에서 바로 복사붙여넣기 하니까 띄어쓰기가 이상하게 되네요. 방법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