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김해자, 『내가 만난 사람은 다 이상했다』중에서

  • 작성일 2013-10-10
  • 조회수 2,818




김해자, 『내가 만난 사람은 다 이상했다』중에서
"별명이······?"
"네, 독사였슴다."
"그렇다면 문신도 혹시 독사······?"
"아닙니다. 쌍룡임다. 양쪽 두 마리씩 네 마리였슴다."
키득거리던 강의실에 일제히 폭소가 터져나왔다. 사실 웃을 대목은 아니지만 이미 형성된 공감대가 있어선지 대답하는 자도 질문하는 자도 듣고 있는 자들도 모두 개의치 않았다. 여섯 번 수감에 17년 옥살이. 제 나이 딱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내가 자연스레 "별이"라 부르면 당연스럽게 "네"하고 대답했다.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살며 숱하게 배를 곯던 별이는 중학교 갈 무렵 '조직'에 엮여 제 말마따나 "징글징글하고도 숱하게 나쁜 짓"을 하고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조직의 3인자까지 올라가 그 바닥에서 출세한 후 이어진 마지막 징역은 길고 혹독했다. 30명이나 되는 동생들 살리려 세 명이 사건을 뒤집어쓴 다음 둘마저 내보내고 홀로 7년을 견뎠다 했다. 그야말로 조직의 쓴맛을 볼대로 다 본 다음, 바늘로 심은 황룡을 바늘로 다시 파내는 고통을 견디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청년이다.
잠시 후, 이어붙인 전지 위에 심장수술을 몇 번 한 형이 눕고 나머지가 몸의 외곽선을 따라 크레파스로 선을 그리고, 각자 아픈 데를 표시했다. 누구는 '발목에 실밥'을 그리고 누구는 '번개가 치는 머리'를 그리고 누구는 '지진 난 등뼈'를 그리고 누구는 '도끼질이 진행중인 정강이와 복사뼈'를 그렸다. 드디어 한 사람 속에 스무명 남짓한 사람들이 들어간 몸을 벽에 걸었는데 상처와 환부를 둘러싼 육신에 풀과 나무와 꽃이 만발해 있는 게 아닌가! 우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거의 보이지도 않게 작게 쓴 '분홍글씨'가 여기저기 박혀 있는 것이었다. 춤추며 분홍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글자들! 별이 짓이었다. 그는 제가 겪은 아픔 대신 동생과 형 그리고 누이들의 통증부위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아프지 말라고, 아파도 잘 견디라고, 힘들어도 부디 행복하라고··· ··· 별은 속삭이며 날아다녔던 것이다. (부분생략)




● 작가_ 김해자 -- 시인. 1961년 전남 신안 출생. 1998년 문예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무화과는 없다』,『축제』(시집),『당신을 사랑합니다』(민중열전) 등이 있음.

● 낭독_ 우미화 -- 배우. 연극 '말들의 무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농담' 등에 출연.
유성주 -- 배우. 연극 '그게 아닌데', '싸움꾼들' 등에 출연.

● 출전_ 『내가 만난 사람은 다 이상했다』(아비요)
● 음악_ back traxx - country2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더 앞서갑니다. 방구석에서 인터넷 들여다보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것보다 사람의 사연을 직접 만나보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고 특별합니다. 사람들의 삶은 이미 충분한 이야기가 되어있거든요. 미술치료사도 겸하고 있는 이 작가는 상상하거나 취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연 덩어리들과 아예 함께 생활하다시피 했군요.
심장 수술이 잦았던 한 사람이 눕고 몸 크기로 그림을 그린 다음 참가자들이 그곳에 자신의 아픈 곳을 표시하고 치유를 기원하는 꽃과 나무를 그리고 분홍색으로 격려의 문구를 적어 넣는 장면은 참 감동적입니다. 감동은 아픔의 과정이 있어야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