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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중에서

  • 작성일 2013-10-17
  • 조회수 1,439




오소희,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중에서

또 무슨 문제가 생긴 듯 운전사가 차를 세웠다.
라오스에서는 버스가 두 시간 이상 달리면 반드시 한번쯤 고장이 난다.
때로는 산꼭대기 구불구불한 길에서
운전사가 너트 빠진 바퀴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갖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정 없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이번엔 기름이 새는 듯 했다.
때마침 탄탄한 평지였으니 기름이 새는 것쯤이야.

각종 고장에 이미 익숙해진 나와 에마는 담담하게 차에서 내렸다.
다른 로컬들도 이때다 싶었는지 우르르 내려서
남자들은 가까운 풀숲에 뒤돌아서서 지퍼를 내리고
여자들은 조금 먼 곳의 풀숲에 쭈그려 앉는다.
에마가 그들을 보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얼마 전 루앙 프라방에서 오는 길이었어요.
버스가 잠깐 서고 사람들이 내려서 소변을 보았어요.
나도 화장실이 급했는데, 어디서 해결해야 될 지 알 수가 없었죠.
마침 앞에 있는 라오스 여성에게 물으니,
나를 근처의 집으로 안내했어요.
꽤 깨끗하고 괜찮은 화장실이었죠.
볼일을 보고 나오니,
아까 그 여성이 바로 그 집 앞 나무 밑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거였어요.
난 의아하게 생각했죠.
저 여자는 여기 화장실이 있는 걸 알면서도,
바로 화장실 앞까지 와서도,
왜 밖에서 해결했을까?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 그 여인도 의아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이 널찍하고 편리한 대지를 두고서
어째서 저 백인 여자는 굳이 좁고 불편한 화장실을 찾아 헤맬까 하고.






● 작가·낭독_ 오소희 -- 여행작가. 1971년 서울 출생. 전업주부로 지내다 세 살배기 아들과 터키 배낭여행을 떠나며 여행기를 쓰기 시작. 지은 책으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하쿠나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등이 있음.

● 우미화 -- 배우. 연극 '말들의 무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농담' 등에 출연.

● 출전_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북하우스)
● 음악_ back traxx - mellow1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먼저, 에마는 짐바브웨 출신의 스물다섯 살짜리 아가씨랍니다. 현재의 우리는 라오스 여성에 가까울까요, 에마에 가까울까요. 아마 후자겠지요. 이 책 제목과 연관시켜 보면 철저히 폐쇄된 개인의 공간이며, 그러면서도 깨끗하게 꾸며놓은 화장실은 인간의 욕망과 적나라하게 연결되어 있는 장소 같습니다. 자신의 성기와 배설물을 만나는 곳이잖아요.
저도 갯바위 낚시 갔다가 종종 파도치는 곳에 실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가마우지나 뱀이나 돌고래가 그러는 것과 아무런 차이를 못 느낍니다. 되려, 거기에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끝내줍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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