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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인간의 대지』중에서

  • 작성일 2013-10-24
  • 조회수 1,861




생텍쥐페리,『인간의 대지』중에서


"눈 속에서는 생존본능이라는 게 사라진다네. 이틀, 사흘, 나흘을 걷고 나면 자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지거든. 나도 그랬어.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지.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살아있다면 걸을 거라고. 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 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이렇게 말이야."
그래서 자네는 계속 걸었네. 얼어서 부풀어 오른 발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매일 조금씩 나이프 끝으로 구두 속을 잘라냈지.
(중략)
자네가 세상에서 평온해지려면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지. 이 세상에서 바위, 얼음, 눈을 지워버리려면 말이야. 그 기적 같은 눈꺼풀을 감자마자 타격도, 추락도, 갈기갈기 찢긴 근육도, 타는 듯한 동상도, 황소처럼 끌고 가야 할 수레보다 무거운 그 삶의 무게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테지. 자네는 이미 그 추위의 맛을 느낄 수 있었어. 이젠 독으로 변해서 흡사 모르핀과도 같이 자네를 천상의 기쁨으로 채워주는 그 추위를. 자네의 생명은 심장 주변에 피신해 있었지. 무엇인가 부드럽고 소중한 것이 자네 마음 한가운데서 웅크리고 있었네. 자네의 의식은 그때까지 고통으로 가득 찬 짐승같았던 육체의 먼 부분들을 조금씩 포기했고, 대리석 같은 무관심을 보이고 있었어.
(중략)
"나는 수많은 징조로 마지막을 짐작했네. 그중 하나는 이런 거였지. 대략 2시간마다 구두를 더 잘라내거나 부풀어 오른 발을 눈에 문지르거나 아니면 단지 심장을 쉬게 하기 위해 쉴 수 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며칠 즈음에는 기억력이 없어지는 거야. 무작정 한참을 걷다가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지. 나는 매번 무언가를 잃어버렸네. 처음에는 장갑 한 짝이었는데, 그 추위에 그건 심각한 일이었지! 나는 그것을 내 앞에 놓아두었다가 챙기지 않고 다시 출발했던 거야. 다음에는 시계였어. 그 다음엔 나이프. 그 다음에는 나침반. 매번 쉴 때마다 나는 점점 더 헐벗은 상태가 되어갔네······. 살길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또 한 걸음. 언제나 똑같은 그 한 걸음을 다시 내딛고 또 내디뎠지······"




● 작가_ 생텍쥐베리 -- 『어린 왕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 비행조종사. 1900년 프랑스 리용 출생. 1930년 항공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어린 왕자』『인간의 대지』, 『야간 비행』, 『전투 조종사』등이 있음.

●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싸리타', '유리알눈'등에 출연.
유성주 -- 배우. 연극 '그게 아닌데', '싸움꾼들' 등에 출연.

● 출전_ 『인간의 대지』(펭귄 클래식코리아)
● 음악_ back traxx - piano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기요메는 생텍쥐페리의 친구 조종사였습니다. 한 겨울 폭풍우 속에서 안데스 산맥에 추락했으며 우편 행낭을 뒤집어쓰고 48시간을 기다린 다음 폭풍우가 가라앉자 오일동안 아무 장비 없이 걸어 4500미터 산을 넘어 왔습니다. 영하 40도, 극한의 고통 속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기요메를 버티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이것입니다. 그곳은 아무도 시체를 찾아내지 못할 곳이기 때문에 실종으로 처리될 터인데, 그러면 아내가 보험금을 4년 뒤에야 탈 수 있기 때문이었죠. 초월적인 정신력은 거대한 대의보다도 이렇게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유에서 나온다는 것을 한 수 배우는 날입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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