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김선재, 「태양의 서쪽」

  • 작성일 2013-11-18
  • 조회수 1,884




김선재, 「태양의 서쪽」
이곳에 다다른 햇살은 지상에서 가장 가파른 절벽이다

본 적 없는 태양의 뒤편
그 저녁이 주기를 이루어 저물어갈 때
국경의 여인숙은 불을 켜고

하루를 떠내려온 우리들 행장을 풀고 태양의 적멸을 보네 이곳은 고대 사원에 뚫린 비밀의 구멍 그리하여 나란히 선 우리들 젖은 옷깃을 말리고 소리가 된 적 없는 말들이 흘러가는 동안 멈추어 서서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네 태양은 수시로 너울을 몰아가고 나는 부신 눈을 자주 비비네
절벽인 햇살, 능선을 베니 차마 꽃이 되지 못한 피멍들 온몸에 피고 나란히 선 우리들 끝내 울지도 못하고

바람이 버리고 간 말과 눈물이 몰락하는 서쪽에 앉아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유배지의 오래된 벽에 기대니
달이 걸어와 이마를 어루만지네

다시 강을 건너 이 변방까지 찾아오는 태양의 동쪽
국경의 옛 여인숙이 불을 끄는 시간




● 시·낭송_ 김선재 - 통영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2006년 《실천문학》에 소설을, 2007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시집 『얼룩의 탄생』이 있다.

● 출전_ 『얼룩의 탄생』(문학과지성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우리들의 미래는 서쪽입니다. 서쪽은 늘 가장 신선한 양식입니다. 인류는 죽음을 발견하고부터 인류입니다. 그러므로 서쪽은 가장 오래된 사원이며 아름다운 장엄이며 소리가 되지 않은, 구원의 말입니다.
삶이 막히면 미리 서쪽에 갑니다. 해법이 없을 때 고대(古代)로 향하던 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유배의 형식이 되겠지요. 그러나 낭만이기도 합니다. 혁명의 짝이 낭만인 것처럼.
서쪽 국경, 그러니까 유배지의 여인숙을 바라보는 눈이 이 시에는 있습니다. 그 여인숙 창에 불이 켜질 때부터 꺼질 때까지의 시선이 또렷이 있습니다. 그 눈동자가 정작 크고 아름다운 사원이군요.
국경 여인숙의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기침을 하고 싶습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