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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유자소전」중에서

  • 작성일 2013-11-28
  • 조회수 3,059



이문구,「유자소전」중에서

총수의 자택에 연못이 생긴 것은 그 며칠 전의 일이었다. 뜰 안에다 벽이고 바닥이고 시멘트를 들어부어 만들었으니 연못이라기보다는 수족관이라고 하는 편이 알맞은 시설이었다. 시멘트가 굳어지자 물을 채우고 울긋불긋한 비단 잉어들을 풀어놓았다.
비단 잉어들은 화려하고 귀티 나는 맵시로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으나, 그는 처음부터 흘기눈을 떴다. 비행기를 타고 온 수입 고기라서가 아니었다. 그 회사 직원의 몇 사람치 월급을 합쳐도 못 미치는 상식 밖의 몸값 때문이었다.
그 회사 직원들의 봉급 수준을 모르기에 내 월급으로 계산을 해 보니, 자그마치 3년 4개월 동안이나 봉투째로 쌓아야 겨우 한 마리 만져볼까 말까 한 값이었다.
"보통 것은 아닐러먼 그려. 뱉어낸벤또(베토벤)라나 뭬라나를 틀어주면 또 그 가락대루 따러서 허구, 차에코풀구싶어(차이코프스키)라나 뭬라나를 틀어주면 또 그 가락대루 따라서 허구, 좌우간 곡을 틀어 주는 대루 못 추는 춤이 웂는 순전 딴따라 고기닝께. 물고기두 꼬랑지 흔들어서 먹구사는 물고기가 있다는 건 이번에 그 집에서 츰봤구먼."
그런데 이 비단잉어들이 어제 새벽에 떼죽음을 한 거였다. 자고 일어나 보니 죄다 허옇게 뒤집어진 채로 떠 있는 것이었다.
"글쎄유, 아마 밤새에 고뿔이 들었던 개비네유."
유자는 부러 딴청을 하였다.
"뭐야? 물고기가 물에서 감기가 들어 죽는 물고기두 봤어?"
총수는 그가 마치 혐의자나 되는 것처럼 화풀이를 하러 드는 것이었다.
그는 비위가 상해서
"그야 팔자가 사나서 이런 후진국에 시집 와 살라니께 여라 가지루다 객고가 쌯여서 조시두 안 좋았을 테구...... 그런디다가 부릇쓰구 지루박이구 가락을 트는 대루 디립다 춰댔으니께 과로해서 몸살끼두 다소 있었을 테구...... 본래 받들어서 키우는 새끼덜일수록이 다다 탈이 많은 법이니께......."
"유 기사, 어제 그 고기들은 다 어떡했나?"
또 그를 지명하며 묻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한 마리가 황소 너댓 마리 값이나 나간다는디, 아까워서 그냥 내뻔지기두 거시기 허구, 비싼 고기는 맛두 괜찮겄다 싶기두 허구...... 게 비눌을 대강 긁어서 된장끼 좀 허구, 꼬치장두 좀 풀구, 마늘두 서너 통 다져 놓구, 멀국두 좀 있게 지져서 한 고뿌덜씩 했지유."
(부분생략)

작가_ 이문구 -- 소설가. 1942년 보령 출생. 연작소설『우리동네』『관촌수필』소설집『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장편소설『장한몽』등이 있음 .

낭독_ 임형택 -- 연극 '염쟁이 유씨', '만선' 등에 출연. 극단 '작은신화' 단원.

최지훈 -- 배우. 연극 '동주앙', '황구도', '관객모독' 등에 출연.

출전_ 『유자소전』(벽호)
음악_ stock music / nostalgia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양연식

* 배달하며

명천 이문구 선생께서 친구 이야기를 소설로 쓰신 것입니다. 이 대목뿐만 아니라 '유자'라는 인물의 유머러스하면서 인간적인 성품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이렇듯 충청도 사투리의 유장한 가락과 비유의 묘미는 이문구 선생의 최고 매력입니다. 이런 재미지고 감칠맛 나는 '말'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어서 속이 상합니다. 일전에 선생 돌아가신지 10주기 행사를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비공개로 했었는데 정말 화려한 문단의 별들이 다 오셨습니다. 선생 아니면 누가 이분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겠습니까. 어제도 소주를 마셨는데, 막소주 막 마시지 말고 술도 족보 있는 것으로 마시라고 야단치시던 생전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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