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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노르웨이 국왕』중에서

  • 작성일 2013-12-19
  • 조회수 1,409


   아모스 오즈,『노르웨이 국왕』중에서




   우리 키부츠, 키부츠 예캇에는 즈비 프로비조르 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쉰다섯의 키 작은 노총각으로 눈을 깜박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지진이나 비행기 추락, 건물 붕괴로 인한 압사 사건, 화재, 홍수 등의 흉한 소식을 먼저 듣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좋아했다. 새벽부터 신문과 라디오에서 모든 뉴스를 수집한 뒤 공동식당 입구에서 우리를 붙잡고는 중국 어딘가에서 광부 이백오십 명이 갱도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거나 카리브 해에 몰아친 폭풍우로 여객선이 뒤집혀 승객 육백 명이 익사했다는 등의 뉴스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또한 그는 부고를 외우기도 했다. 유명인이 죽으면 가장 먼저 알고서 키부츠 전체에 그 소식을 알리는 사람도 그였다.
그는 허리띠에 매달고 다니는 조그만 트랜지스터라디오로 흉흉한 소식들을 끊임없이 주입받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들었어요? 앙골라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대요.”
또는 이런 말도 했다. “종무 장관께서 별세하셨다는군요. 십 분 전에 발표가 났어요.”
어느 날 저녁, 즈비 프로비조르는 근처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루나 블랑크라는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거 들었어요?” 그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스페인에 있는 어느 고아원에 불이 나서 여든 명이나 되는 애들이 연기에 질식해 죽었다고 하네요.”
학교 선생님인 마흔다섯살 과부 루나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끔찍한 일이네요.”
“구출된 생존자가 세 명 뿐이랍니다.” 즈비가 말했다. “그런데 생존자들도 상태가 위중하대요.”
뒤이어 즈비는 수단sudan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메뚜기떼의 습격에 대해 자세히 묘사앴다.
루나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예민한 사람이에요.”
즈비는 눈을 재빠르게 깜빡거리며 말했다. “수단에서는 지금 신록을 찾아보기가 힘들대요.”
루나가 물었다. “왜 세상의 모든 슬픔을 어깨에 지고 계시는 거예요?”
즈비가 대답했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
(부분생략)


   작가_ 아모스 오즈 – 현대 히브리 문학을 대표하는 이스라엘 출신 소설가. 평화활동가로도 활동. 1939년 예루살렘 출생. 1965년 첫 소설집 『자칼의 울음소리』로 작품활동 시작. 대표작으로『나의 미카엘』 『여자를 안다는 것』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등이 있음.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싸리타> <유리알눈>등에 출연.

   유성주 – 배우. 연극 <그게 아닌데>, <싸움꾼들> 등에 출연.

   우미화 – 배우. 연극 <말들의 무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농담> 등에 출연.

   출전_ 『친구사이』(문학동네)

   음악_ backtraxx - corporateindustrial 2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완벽한 세상, 또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좋은 세상에서는 예술가들이 필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고 환기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히, 이스라엘에도 이런 작가가 있군요.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일품인데다 작품뿐만 아니라 실재로도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적극적 활동을 펴고 있으며 영향력도 매우 높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 라는 말은 제 마음을 뜨끔하게 만듭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하고 지내는 게 워낙 많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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