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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하관(下棺)」

  • 작성일 2013-12-24
  • 조회수 2,349

박용래, 「하관(下棺)」




볏가리 하나하나 걷힌
논두렁
남은 발자국에
딩구는
우렁껍질
수레바퀴로 끼는 살얼음
바닥에 지는 햇무리의
하관(下棺)
선상(線上)에서 운다
첫 기러기떼.


시_ 박용래 - 1925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1956년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월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 「황토길」, 「땅」 등이 소개되어 등단했다. 1980년 11월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시집으로 『싸락눈』(삼애사, 1969), 『강아지풀』(민음사, 1975), 『白髮의 꽃대궁』(문학예술사, 1979) 등을 남겼고, 사후에 『먼 바다』(창작과비평사, 1984)가 출간되었다.

낭송_ 이혜미 - 시인. 1988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났다.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보라의 바깥』이 있다.

출전_ 『먼 바다』(창비)

음악_ 정겨울

애니메이션_ 정정화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바람 싱싱해진 들판 길을 걸어봤습니다. 눈 오는 날 골라, 눈 펑펑 쏟아지는 날 다시 걸을 것을 혼자 기약했습니다. 깨달음이 오는 문장처럼 늦가을 논둑길은 근사합니다.
한 모퉁이에 앉아 이 시를 중얼거렸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바람 싱싱하니 어깨를 웅크리고 앉습니다. 논바닥에 지금 발자국은 잘 없습니다. 기계 바퀴 자국이 사납습니다만, 예날 낫으로 벼를 벨 때는 발자국이 다정했을 겁니다. 그 안에 다시 우렁 껍질이 뒹굴고 또 그 안에 살얼음이 끼고 또 그 안에다가 저무는 볕은 선(線)을 늘여 무엇인가 하관을 합니다. 아, 그 소실점…… 끝에서 한참 만에 기러기 울음이 옵니다. 시베리아라던가 어디라던가 그저 저 아득한 곳에서 온 기러기 울음입니다. 무명 바지 입고 논두렁 끝에 앉아 우주의 시공을 꿰뚫고 있습니다.
박용래 선생을 지극히 사랑했던 누님, 그러나 어려서 잃어버린 누님의 이름이 ‘홍래(鴻來) 누님’이었다니 접목하여 읽으면 더욱 아련합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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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촌철활인의 극도로 응축된 박용래 선생님의 대표시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배달 되던 문장 시배달이 무슨 까닭인지 배달이 안 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다음 메일로 배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oogeugi@hanmail.net 나석중입니다.

    • 2013-12-31 08:49:1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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