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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라킨, 「더블린풍」

  • 작성일 2013-12-30
  • 조회수 1,322

필립 라킨, 「더블린풍」




치장 벽토 골목 아래로,
그 골목 빛이 땜납이고
오후 안개,
경주 안내문과 묵주 위
가게들에 불을 켜는데,
장례 행렬 지나간다.

영구차 맨 앞이지만,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일단의 가두 매춘부들,
챙 넓은 꽃무늬 모자 쓴,
소매가 양 다리 모양이고,
드레스가 발목까지 내려온,

거대한 친근의 기운 있다,
마치 그들이 예우하는 듯,
그들이 좋아했던 사람을 말이다;
몇몇은 서너 걸음 희룽거린다,
스커트를 솜씨 있게 쥐고
(누구는 박수로 박자 맞춘다),

그리고 거대한 슬픔의 기운 또한,
그들이 이동해 가는데
목소리 하나 노래한다
키티, 혹은 케이티에 대해,
그 이름 한때
온갖 사랑, 온갖 아름다움 뜻했던 것처럼 들린다.


◆ 시_ 필립 라킨 - 1922년 잉글랜드 워릭셔 주 코번트리에서 태어났다. 자비로 출판한 첫 시집 『북쪽으로 가는 배』(1945)를 포함해 『덜 속은 사람들』(1955) 『성령강림절 결혼식들』(1964) 『높은 창문들』(1974) 등 단 네 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 외에도 여러 편의 시를 발표했지만 시집으로 엮지 않았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재즈 평론가로 활동했고, 재즈 음반평을 모아 『재즈의 모든 것: 기록일지 1961~68』을 펴냈다.

◆ 낭송_ 정인겸 - 배우. 연극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에 출연.
◆ 출전_ 『필립 라킨 시전집』(문학동네)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안개 낀 오후의 더블린. 납빛의 골목 귀퉁이 침침한 상점 안에서 한 사람이 무심히 앉아 있다가 창밖의 장례 행렬을 발견합니다. 참으로 고요하고 기묘한 장례 행렬입니다. 영구차를 따르는 것은 가두의 매춘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옷차림도 직업상의 그것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친근의 기운’과 ‘거대한 슬픔의 기운’이 겹쳐서 마치 ‘경주 안내문’ 위의 ‘묵주’ 만큼이나 기이합니다.

도대체 어떤 이의 죽음일까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맨 마지막 구절처럼 ‘온갖 사랑, 온갖 아름다움’을 뜻했던 사람의 장례식인 것은 확실합니다. 왜냐구요? 매춘부들이 맨얼굴로 가두에 나와 추모할 정도의 사람이라니까요. 여기 이 슬픔에 어디 억지가 있고 가식이 있습니까. 아름다운 장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더블린에 가보고 싶습니다. ‘더블린풍’이 무엇일까 확인해 보고 싶군요.


문학집배원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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