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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 「도연명의 옛집을 방문하여(訪陶公舊宅)」

  • 작성일 2014-01-13
  • 조회수 1,922


서문

내 일찍부터 도연명의 사람됨을 사모하였다. 예전에 위수(渭水)가에 한가로이 지내며 그의 시체(詩體)를 모방하여 열여섯 수의 시를 짓기도 하였다. 지금 여산(廬山)을 유람하러 가는데 시상(柴桑)을 거쳐 율리(栗里)를 지나게 되었으므로 그가 생각나 옛집을 찾아가 보았으며, 묵묵히 있을 수 없어 다시 이 시를 짓는다.


티끌은 옥을 더럽히지 못하고

봉황새 누린내 나는 고기를 먹지 않지요.


아, 도연명 선생이시어

진(晉) 송(宋)의 교체기에 태어나

마음에는 진실로 고수하는 바 있었지만

입으로는 끝내 말할 수 없었지요.


항상 백이(伯夷) 숙제(叔齊)와 같이

수양산(首陽山)에 은둔할 것을 생각했는데

백이 숙제는 각각 독신이어서

굶주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선생은 다섯 아들을 두시어

굶주림과 추위를 함께 겪으며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었고

몸에는 온전한 의복마저 없었지요.


여러 차례 조정에서 불렀지만

그럼에도 일어나 나아가지 않으시어

참으로 현인이라 부를 수 있나니

내 당신의 뒷시대에 태어나

서로 오백 년이 떨어져 있지만

매번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읽으며

눈으로 그려보고 마음에 못 잊어 하지요.


지난 날 남기신 풍도(風度)를 읊어

열여섯 수의 시를 짓기도 했는데

오늘 와서 옛집을 찾아보니

당신의 모습 눈앞에 선합니다.


술 즐긴 것을 사모해서가 아니고

무현금(無玄琴) 연주한 것을 사모해서도 아니고

명예와 이익 내던지고

이곳 고향에서 늙어 죽은 것을 사모해서입니다


시상(柴桑)은 옛날 그 마을이고

율리(栗里)는 오랜 산천 그대로건만

울타리 아래 국화는 보이지 않고

마을 가운데 연기만 남아 있습니다.


자손들 가운데 이름난 이는 없지만

후예들 아직도 옮겨가지 않고 살아

도(陶)씨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모하는 마음 여전히 일어납니다


▶시_ 백거이 - 중국 중당 기(中唐期)의 시인. 주요 저서에는『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등이 있음.

▶낭송_ 박웅선 - 배우. 연극 <오셀로>, 영화 <한반도> 등에 출연.



배달하며


백거이는 772년생이고 도연명은 365년생이니 4백여 년의 나이차가 나네요. 지금으로부터는 1천 2백년, 1천 6백여 년 전 사람들. 헌데 왜 바로 윗 선배의 그것처럼 느껴질까요. 헌책방의 옛 전적들이 유효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겠죠.

<오류선생전>을 읽을 때마다 즐거웠지요. 통쾌했지요. 가난이 이렇게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 청빈이 이렇게 바보스러운 시대에 담백한 한 인물의 자화상이 아름다웠지요.

옛 시인의 자취를 찾아보는 일은 지금이나 그제나 제 마음을 둘러보는 일에 다름 아니었을 겁니다. 어금니를 지그시 물고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살펴보는 일이겠지요. 눈길을 밟으며 저 강릉 초당이나 아니면 강진 영랑 고택이라도 가봐야겠습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출전_ 『나 이제 흰구름과 더불어』(성균관대 출판부)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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