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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중에서

  • 작성일 2014-01-16
  • 조회수 1,540

조용호,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중에서



아버지는 가끔 그 넥타이를 맬 때면 들릴락말락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흥얼거리는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흥이 나서 단장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숨죽인 울음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중략)

아버지의 죽음은 비참했다. 간음의 대가로는 너무 가혹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 같다. 술 때문에 간이 망가져 급기야 식도 파열로 이어졌다. 각혈의 선연한 자국이 방에 얼룩무늬를 이루었을 때 아버지의 술 요청을 뿌리치기 위해 친척집에 잠시 피신했던 어머니가 뒤늦게 그 현장을 목격하고 병원으로 모시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소읍의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당신이 일하던 노동 현장을 거쳐 성당의 문 안쪽을, 그리고 이미 남에게 넘어가버린 옛집의 담장 주위를 까닭 없이 빙빙 돌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뒤를 따르며 빨리 병원에 가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애타게 소리쳤지만 막무가내였다. 어머니는 급기야 속에 묻어둔 말을 외쳤다고 했다.

「그 여자가 보고 싶어서 그래요?」

아버지는 멈칫 그 자리에 서서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아버지도 그 여자의 종적을 몰랐을 뿐더러, 어머니에게 속마음을 들킨 게 미안하고 착잡했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병원 응급실에 잠깐 머무르다가 중환자실로 옮겨 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고통을 호소하며 비명을 지르다가 절명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갔을 때 아버지는 나를 힘없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미안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비를 원망하는 자식의 눈빛이 야속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데 어떤 여인이 찾아와 아버지 영정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 간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누구냐고 묻자 여자는 이리저리 둘러대다가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고 했다.




작가_ 조용호 – 기자. 소설가. 1961년 전북 정읍 출생. 1998년 《세계의 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기타여, 네가 말해 다오』와 소설집 『왈릴리 고양이나무』등디 있음.

낭독_ 이창수 – 배우. 연극 <밤의 연극>, <농담>, <지상의 모든 밤들>등에 출연.
서진 – 배우. 연극 <안티고네>, <모든 것에게 모든 것>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이런 풍경, 참 난감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지만 ‘그 여자가 보고 싶어서 그래요?’ 어머니 말에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앞 세대의 실수를 보면서 자랍니다. 단순히 실수들을 본다기 보다는 한 사람 인생의 구석구석을 어쩔 수 없이 보면서 자란다고 해야 맞겠죠. 그런 것을 서로 보여주라고 묶어놓은 구성체가 가족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가면 우리 다음 세대는 우리의 어떤 모습들을 이렇게 기억하고 기록하겠죠. 아, 사람들은 그게 괴로워서 죽어버리나 봐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출전_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문이당)
음악_ stockmusic - guitar horizons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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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저는 이 글이 정말 좋아요....

    • 2014-06-25 22:21:2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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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황현산 님 글부터 여기까지 오늘 몰아서 읽고 있는데 참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글을 골라주시는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 2014-03-24 13:13:5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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