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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내가 믿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 작성일 2014-03-07
  • 조회수 1,474




“국가는 좋은 생활을 위해서 존재하지 생활 자체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


황현산, 『내가 믿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섬에는 군대를 두 번 갔다 온 청년이 있었다. 어렵게 의무 복무를 끝내고 돌아왔는데, 또다시 징집영장이 나왔다. 입대 환송회까지 열어주었던 면사무소의 병사계가 그의 복무 기록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섬의 권력자였던 한 유지의 아들을 대신해서 군대에 갔던 것이다. 청년의 집안에는 이 일을 해결할 만한 능력자가 없었고, 그 내막을 알고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일을 바루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속절없이 군대를 다시 가야 했다. 그러나 몸은 튼튼해서 두번째 복무도 무사히 마치고 귀향할 수 있었으니,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또하나의 경우보다는 훨씬 더 다행한 편에 속한다.
중학교를 다닐 때, 우리 가족은 목포의 변두리 동네에서 살았다. 옆집 청년이 제대를 석 달 앞두고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나는 그때 내 발이 세 개는 들어갈 군화를 처음 신어보았다. 청년은 신실해 보였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군대를 제대하면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귀대한 후 편지가 한 번 왔다. 시내의 큰 식당에 찾아가서, 자신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던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달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편지를 내가 그 집 사람들에게 대신 읽어주었기에 그 내용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러나 청년은 제대 날짜를 넘기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다섯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청년의 어머니가 어렵사리 노자를 구해 전방 부대를 찾아갔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청년이 탈영을 해서 자기들도 행방을 모른다며, 청년의 어머니를 도리어 죄인처럼 다루더란다. 아들이 무슨 일로 부대에서 사망했겠지만 탈영병으로 처리되는 바람에 보상을 받기는커녕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했던 그 부모들도 지금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겠다.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일들인데, 요즘은 잠자리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문득 그 사람들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한숨을 뱉게 된다. 몸이 허해지면 옛날에 아프던 자리에 다시 통증이 온다더니 그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 작가_황현산 - 문학평론가. 고려대 명예교수. 1945년 목포 출생. 199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관지 <문화예술>로 평론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평론집『잘 표현된 불행』『말과 시간의 깊이』연구서『얼굴 없는 희망』 등이 있음.


▶ 남명렬 - 배우. 연극 <소년B가 사는 집>,<알리바이 연대기>,<햄릿>등에 출연

배달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싶으시겠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고 형태가 바뀐 상태로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제대병 남자들이 군대 또 가는 꿈을 꾸며 괴로워 몸부림치는 것도 국민으로서 의무이행이나 당당한 사나이의 길이라는 긍지보다는 국가의 압력과 폭력에 공포를 느끼는 게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합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프로야구 시합을 하고 났을 때 그들의 역할이 가장 돋보일 때는 그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시합이 끝났을 경우입니다. 그들의 존재가 겉으로 드러났다면 분쟁과 갈등이 컸고 그리고 양쪽 다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죠. 국가는 조용한 심판 같은 존재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곤 합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 출전_ 『밤이 선생이다』(난다)

▶ 음악_ sound ideas /romantic pastoral 6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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