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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형, 「최초의 사람」

  • 작성일 2014-05-07
  • 조회수 2,077

권현형, 「최초의 사람」




챙이 커다란 청모자를 쓴 아이가
제 동화책 속에서 걸어 나와
검정 에나멜 구두로 땅을 두드린다
최초의 사람인 듯 최초의 걸음인 듯
갸우뚱 갸우뚱 질문을 던지며 걸어 다니다
집을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봄의 부랑자들,
길바닥에 떨어져 누운 꽃점들을 두고
차마 지나치지 못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바르비종 마을의 여인처럼 가만 무릎을 꿇는다
이삭 줍듯 경건하게 주워 올려 본래의 둥지
나무 가까이에 도로 놓아준다 방생하듯
봄날의 바다에 꽃의 흰 꼬리를 풀어 놓아준다
꽃 줍는 아가야, 환한 백낮에 길 잃은
한 점 한 점을 무슨 수로 네가 다 거둘 것이냐
몸져누운 세상의 아픈 뼈들을 무슨 수로
일으켜 세울 것이냐 한 번 떨어져 나온 자리로는
다시 돌아갈 길 없다
네가 옮긴 첫발자국이 그토록 무겁고 서러운
질문이었음을 기억하거라



▶ 시_ 권현형 -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났다.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 등이 있다.




배달하며

한 어여쁜 아이가, 세상의 때라곤 한 점 티끌도 묻지 않은 아이가 꽃을 줍고 있습니다. 이건 뭘까? 이 예쁜 것이 왜 땅에 떨어졌을까 질문하면서 꽃을 줍고 그것을 꽃나무 그늘에 다시 놓아줍니다. 그러나 꽃은 너무 많습니다. 아픔도 그 꽃잎만큼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화자는 당부합니다. 한번 떨어져 나온 자리로는 다시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 네가 이 세상에 온 첫 걸음이 ‘서러운 질문’이었음을 기억하라고.
수백의 어린 생명들이 저 아름답기로 이름난 남녘의 봄바다에서 아무 죄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면서 무슨 질문을 했을까요. ‘꽃을 줍던’ 그 아이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은 그저 미어지는 가슴일 뿐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 출전_ 『밥이나 먹자, 꽃아』(천년의시작)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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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이창영 11017

    시의 시작에서는 호기심이 많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호기심이 많은 굉장히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이는 세상에 많은 아픔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보살피고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려한다. 하지만 화자는 말한다. 무슨 수로 저 아픈 것들을 다 너가 거둘것이냐고. 세상에 아픈 것들은 많고 너는 지금 무겁고 서러운 삶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화자는 꼭 남을 도우려는 저 어린 아이에 대해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을까. 물론 우리가 세상은 늘 행복하고 밝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서로 돕고 아픈 이들을 북돋아주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모든 아픈 생명들을 다 거두지는 못한다고 해도 남을 도우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여러 역경을 겪은 어른은 세상을 너무 무정하고 계산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어린아이의 저 맑은 순수함을 통해 화자가 무언가를 배우길 바란다.

    • 2018-10-29 12:12:26
    이창영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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