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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소규모 인생 계획」

  • 작성일 2014-06-09
  • 조회수 3,046


이장욱, 「소규모 인생 계획」




식빵 가루를
비둘기처럼 찍어먹고
소규모로 살아갔다.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간신히 팔짱을 끼고
봄에는 조금씩 선량해지고
낙엽이 지면
생명보험을 해지했다.
내일이 사라지자
어제가 황홀해졌다.
친구들은 하나둘 의리가 없어지고
밤에 전화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포성이 울렸지만
남극에는 펭귄이
북극에는 북극곰이
그리고 지금 거리를 질주하는 싸이렌의 저편에서도
아기들은 부드럽게 태어났다.
우리는 위대한 자들을 혐오하느라
외롭지도 않았네.
우리는 하루종일
펭귄의 식량을 축내고
북극곰의 꿈을 생산했다.
우리의 인생이 간소해지자
이스트를 가득 넣은 빵처럼
도시가 부풀어올랐다.





▶ 시 _ 이장욱(1968~ )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등이 있다.

▶ 낭송_ 이준혁 - 배우. 극단 ‘두목’ 소속.




배달하며

날마다 산책을 나가지요. 산책은 소규모의 인생을 꾸리는 자에겐 다른 무엇에 양보할 수 없는 오후 두세 시 경에 이루어지는 보람이고 기쁨이죠. 뭐, 그렇다고 산책이 본질로의 회귀라거나 비상한 신체를 만들기 위한 대단한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산책이란 햇빛과 맑은 날의 고요, 새로 피어난 어린 은행나무 잎사귀들과 유순한 그늘들을 만나고, 산책의 동선(動線)에 있는 ‘커피산책자 소요’에 들러 밀크 티 한 잔을 마시는 조촐한 쾌락이죠. 수단들은 진보했으나 목표는 진보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소규모의 인생계획에 몰두하는 자는 정직한 사람이겠죠. 이미 위대해진 자들을 헐뜯는 것은 소박한 삶을 꾸리는 이들의 기쁨이겠죠. 가진 것들을 줄이고 채운 것들 비우며 삶을 보다 간소하게 만들려는 까닭은 미래가 불확실한 까닭이죠. ‘소규모’에 위배되는 위대한 것은 사양해요. ‘단순’을 밥 삼고 ‘소박’을 아내 삼아 살아가려고 합니다. 약동하는 세상에서 한 걸음 떨어진 채, 더 간소하게, 간소하게!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 『생년월일』(창비)

▶ 음악_ 배기수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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