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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문어(文魚)에게 물어봐」중에서

  • 작성일 2014-07-04
  • 조회수 1,347



“진정 낯선 것은 타인과의 조우이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 「우리 안의 이방인」중에서 -



함정임, 「문어(文魚)에게 물어봐」중에서






나는 한 시간째 문어를 어떻게 요리할까 생각 중이었다. 지붕에서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다시 귀 기울여보니 이번엔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삼 년 오 개월째 십층 아파트의 십층에 살고 있었다. 십층 아파트는 지은 지 십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정말로 지붕에서 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십층 아파트의 십층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지붕에서 나는 소리로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냄새는 그렇다 쳐도 탱크 지나가는 소리나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아래층에서 올라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탱크 지나가는 소리 속에 우박 떨어지는 소리는 어제도 났었다. 아니, 내가 트렁크를 끌고 집에 들어온 그제 오후에도 무슨 소리가 들렸었다. 트렁크 바퀴 소린가? 나는 트렁크 손잡이를 놓고 잠시 트렁크 옆에 멈춰 서 있기까지 했었다. 트렁크 바퀴가 구르고 있지 않은데도 소리는 계속 났다. 여덟 개의 문어다리 중 두 가닥이 도마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문어가 어떻게 통째로 내 집 냉장고에 들어와 있는지 이유를 알아내려 했지만 당장은 알 수 없었다. 탱크 지나가는 소리인지 트렁크 바퀴 굴러가는 소리인지 분간하고 난 뒤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텅 빈 선반 위에 거대한 문어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냄새를 맡아보니 신선도는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집을 비운 이 주일 사이, 그것도 최근 며칠 사이 누군가 이곳에서 문어 요리를 하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문어 요리에 골똘하고 있는데 환이 내 옆에 와 서 있었다.




▶ 작가_ 함정임 - 소설가. 1964년 전북 김제 출생.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광장으로 가는 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버스, 지나가다』, 장편소설『행복』『춘하추동』등이 있음.


▶ 낭독_ 미경 - 배우. 연극 『미네티』 『ONEDAY, MAYBE』 『왕과나』 등에 출연.



배달하며

간혹 어떤 분들은 자서전과 자전소설을 혼동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자서전’이라는 것은 실제 인물이 자신의 성장과 생애를 기록한 전기적인 글이고, ‘자전소설’은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들을 ‘사실적으로 쓴 소설’, 즉 픽션입니다. 그러니까 허구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요. 그 경계가 아슬아슬합니다.
「문어에게 물어봐」는 이 작가의 대표적인 자전소설 중 하나입니다. 이 주 동안 집을 비웠다 돌아오니 냉장고에 거대한 문어 한 마리가 들어 있군요. 그리고 화자는 이 문어를 어떻게 요리할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이 ‘문어’는 과연 무엇일까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하는 분들이 요즘 많지요? 그때 필요한 건 상징(象徵)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자전 소설』(강)

▶ 음악_ Tune Ranch / miscellaneous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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