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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물울」

  • 작성일 2014-07-09
  • 조회수 1,745


신영배, 「물울」




서 있던 저녁이 앉을 물, 두 다리가 젖을 울, 발끝이 떨릴 물, 잔잔하게 퍼질 울,
서 있던 꽃이 앉을 물, 엉덩이가 젖을 울, 붉을 물, 둥글 울, 아플 물, 울 울,


구름들이 수면 위에 앉아 있었다
서로의 붉은 얼굴을 봐주고 있었다
찢어진 곳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지붕만큼 부푸는 치마를 갖고 싶어
여자는 집을 나왔네


멀어질수록 집의 단어들은 점으로 사라자고


치마를 부풀리고
연못 위에 앉은 여자


붉은 연못
서 있던 바람이 앉을 물, 얼굴을 묻을 울, 고요할 물, 잊을 울,





▶ 시_ 신영배(1972~ )는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다. 2011년 시 전문지 『포에지』에 「마른 피」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기억이동장치』『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등이 있다.

▶ 낭송_ 신혜정 - 시인.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라면의 정치학』이 있다.




배달하며

‘물울’은 신영배 시인이 발명한 지명이지요. ‘물’과 ‘울’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이곳은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고 오직 상상의 지리학에만 있지요. 아마도 물이 많은 고장이겠지요. ‘물울’에서는 ‘물사과’를 먹고 ‘향기로운 물모자’를 쓰고, 바닥에는 ‘물뱀’들이 긴 몸을 끌고 다니지요. 신영배의 여성 자아들은 집을 나와 한사코 그 ‘물울’을 향하여 갑니다. 왜 그럴까요? 여자가 집을 나온 것은 “지붕만큼 부푸는 치마”가 갖고 싶었기 때문이죠. ‘물울’로 향한다는 것은 모든 악덕과 속박에서의 자유이고, 느른함에서 벗어나 솟구치는 기쁨을 찾는 일일까요? 사람은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졌으니, 인류는 저마다 길쭉한 푸대자루 속에 작은 바다 하나씩을 안고 사는 셈이지요. 그러니 저 아득한 물의 마을에 이끌리는 것은 본능일까요? 제 안의 물들이 미지근해지는 외로운 저녁이면, 문득 그 ‘물울’이 어딜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물속의 피아노』(문학과지성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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