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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태, 「식성」중에서

  • 작성일 2014-08-01
  • 조회수 1,619



“울어도 돼요, 매기. 이제부턴 혼자 밥 먹지 말아요.”

- 니콜 모리스「칸지의 부엌」중에서 -



김이태, 「식성」중에서






언니는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했다. 비쩍 마른 그녀의 얼굴이 젓가락을 들이미는 모습은 어딘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짐승을 연상시킨다. 얌전한 고양이처럼 말도 별로 없이 공부만 잘했는데, 슬슬 담배를 피워 물기 시작했을 때도 흡사 그런 표정을 지었다. (중략) 스트로로 주스를 빨아 마시는 낯선 아이들도 그녀를 연상시킨다. 밥상 위에 오른 김치찌개에서 돼지고기만을 뒤져 먹는 그녀, 떡국이 올라도 그 위에 얹힌 양념 고기만 덜어 먹고 숟가락을 놓아버리는 그녀. 그녀는 나보다 두 살 많았다.
딸만 둘 낳은 엄마는 집안의 여자들을 죄 지은 듯 단속했는데 그것은 항상 밥상머리에서 시작되었다. 굴비는 한 마리만 구워서 아버지만 드려야 하고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아무도 꼼짝 못 하게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딸만 둘 낳은 죄책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지만 생선 한가운데로 파고드는 언니는 항상 손등을 맞곤 했다. 그러면 언니는 마치 자다가 물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눈을 끔벅거리며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곤 슬픈 짐승의 얼굴을 하고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마치 자기가 왜 맞았나를 그제야 깨달은 듯이 말이다. 그 밥상 위의 풍경은 반복되었다. 물론 고기가 흔치 않았을 때의 일이다. 반 근 사서 국에 조금 넣고 불고기 하는 날은 집에 무슨 일이 있어야 했다. 일 년에 갈비찜을 하는 날은 아버지 생일뿐이고 전기 통닭 구이 한 마리가 대단한 외식이었던 시절, 언니의 식성은 곤란하게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누군들 귀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겠는가만은 요는 그녀가 비쩍비쩍 마르면서 고기만 찾는 데 있었다.




▶ 작가_ 김이태 - 소설가.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95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몽유기」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함. 장편소설로 『전함 큐브릭』『슬픈 가면무도회』, 소설집으로『궤도를 이탈한 별』이 있음.


▶ 낭독_ 미경 - 배우. 연극 『미네티』『ONEDAY, MAYBE』 『왕과나』 등에 출연.



배달하며

식성에 대해 문득 생각하면 국내외 문학을 통틀어 저는 이 명쾌한 단편소설, 「식성」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육식주의자든 채식주의자든 그들이 운명을 맞닥뜨리고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매우 특별한 시간에 속할 겁니다. 좋은 소설이 뭔지 모를 때가 많아도 우선 ‘생명감을 고양시키는’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느새 초복, 중복 다 지나고 말복이자 입추를 앞두고 있군요. 제가 알고 있는 게 맞는다면 7월에 먹으면 좋은 음식은 ‘감자, 고구마, 열무, 토마토, 갈치, 수박’ 등이라고 합니다. 면역력을 높여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는군요. 오늘은 얼음 동동 띄운 열무 국수 한 그릇, 어떻습니까? 물론 식성은 각자 다 다를 테지만 말입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궤도를 이탈한 별』(민음사)

▶ 음악_ Crank City -1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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