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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장마」

  • 작성일 2014-08-06
  • 조회수 2,219


김사인, 「장마」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 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바치고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
긴 긴 장마




▶ 시_ 김사인 - 김사인(1956~ )은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등이 있다.

▶ 낭송_박찬세 - 시인. 2009년 제16회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배달하며

장마는 긴 비지요. 장마는 길게 내려서 물의 우주적 순환을 이룹니다. 노자는 낮은 곳에 거하는 물의 덕을 찬양합니다. “가장 훌륭한 덕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주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장애물을 만나면 감아 돌거나 휘돌아 낮은 곳으로 밤낮없이 나아가는 물. 공자는 강가에 서서 흐르는 물에 연신 감탄하며 “지나가는 것은 다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흐르되 그 흐름이 약해지지 않는구나”라고 했지요. 물은 동양의 사상가들이 편애한 뿌리-은유지요. 물과 생명은 한 쌍입니다. 물은 만물을 낳고 젖을 먹여 기르는 어미요, 만물의 근원인 것이지요. 지구 밖 행성에서 지성 생명체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할 때 물의 흔적을 찾는 까닭도 거기에 있지요. 물이 생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지만, 길어진 장마로 물이 도처에 차고 넘치면 방안에 갇혀 심심함에 진절머리를 치지요. 긴 장마에 지친 사람이라면 수타사가 어디에 있는 절인지는 모르겠다마는 만사 제치고 달려가고 싶은 것이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가만히 좋아하는』(창비)

▶ 음악_ 이재문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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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한승헌10522

    난 한상 장마철이 싫었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날에는 밖에 나가서 뛰어 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를 감상함으로써 이런 생각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생명 그 자체이다. 이 시의 배달부님께서 말하신 부분 중 너무나도 공감되는 부분이 하나있다. "지구 밖 행성에서 지성 생명체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할 때 물의 흔적을 찾는 까닭도 거기에 있지요". 그렇다. 물, 비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가 내가 놀고싶었던 마음을 저지한것이 아니라 비가 오히려 그 마음을 이끌어낸것이다. 끝도 없이 내리는 장마철에는 방안에 갇혀 진절머리를 치게 된다. 긴 장마는 나를 지치게 함으로써 더 큰 기쁨을 느끼게 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시 한편 읽고갑니다.

    • 2018-05-29 15:04:42
    한승헌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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